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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Apr 26. 2016

맞벌이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

#48

"수족구야 물러가랏!"

아내는 친구에게 ‘카톡’을 날렸다. “살아 있나?” 몇 분 뒤 답이 왔다. “썅.”


아내의 친구는 요즘 지옥을 겪고 있다. 아이가 수족구에 걸린 탓이다. 수족구는 말 그대로 손·발·입에 발진이 생기는 병이다. 보통 일주일이면 낫는다고 한다. 크게 위험한 병은 아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는 재난과 같다.     


수족구는 전염성이 강하다. 수족구에 걸린 아이는 어린이집에 갈 수 없다. 부모는 아이의 병이 나을 때까지 회사에 가지 못하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 우리처럼,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맞벌이 부부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아내가 일주일가량 쉬는 건 불가능하다. 나 역시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어떻게든 쉴 수는 있겠지만,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나는 아이를 낳은 후 회사에서 여러 차례 배려를 받았다. 하지만 그 배려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아이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으로 찍힐까 두렵다. 나 역시 편견과 한계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다.     


수족구는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힘든 일이다. 아이는 제대로 먹을 수 없다. 먹지 못하니 하루 종일 찡얼댄다. 아내 친구는 “개진상”이라고 했다. 최대한 순화한 표현이다. 우리 부부도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겪었다. 돌 무렵 아이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고열에 시달렸다. 그 시간은 아이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지옥이었다.      


최근 아내는 ‘조심 또 조심 모드’다. 아이 손을 자주 씻기라고, 내게 여러 차례 말했다. 아내는 ‘수족구가 유행’이라는 어린이집 안내문을 보고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친구 아이 중 둘이나 수족구에 걸려 격리상태에 있다. 오늘 아내는 내게 아이 손을 잘 씻겼는지 물었다. 난 어물쩍 넘어가려다 혼쭐이 났다.      


애 손 씻길래요? 일주일 휴가 낼래요?    


지난 주말 아이는 콧물을 많이 흘렸다. 열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크게 긴장했다. 아내는 유산균과 비타민, 물과 과일을 아이 앞에 대령했다. 감기 초기일 때 아내가 내리는 처방이다. 다행히 월요일 아침 아이는 평소 컨디션을 회복했다. 우리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출근길에 올랐다.      




우리 부부에게는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있었다. 아이의 외할머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장모님은 거의 매달 포항과 서울을 오가셨다.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시는 장모님 덕에 우리 부부는 각자의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롯이 우리 부부 둘만의 힘으로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 장인어른의 건강 문제로, 장모님은 더 이상 한달음에 우리 부부에게 달려와 주실 수 없다. 장인어른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편의를 위해 자꾸 장모님의 손을 빌리는 건 잘못하는 일인 것 같다.      


우리 세 가족의 고단한 삶은 시작됐다. 아내는 매일 아침 아이의 저녁 도시락을 싼다. 감기 정도는 거뜬히 이겨내길 바라며 유산균과 비타민을 꼭 먹인다. 오늘 아침 아내는 아이에게 유산균을 먹이며 주문을 외우듯 이렇게 말했다. “수족구야 얼씬도 마라!”     


수족구가 유행하는 요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다. 아이가 혹여나 아플까 조마조마한 부부도,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부부도, 아픈 아이를 집에서 돌봐야 하는 부부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건투를 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주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사고해역에 다녀왔다. 어느덧 참사 2주기가 지났다. 하지만 세월호는 9명의 실종자를 품은 채 여전히 바다 밑에 있고, 유가족들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을 살고 있다. 시집 <엄마. 나야.>(난다, 2015)는 희생당한 아이들의 생일에 시인들이 쓴 시를 묶은 책이다. 고 유예은 양의 생일시는 진은영 시인이 예은 양의 시선으로 썼다. 


그날 이후 - 유예은(2학년 3반)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갈 때 휴대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우리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 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 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그리운 목소리로 예은이가 말하고,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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