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능숙하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과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유연한 삶의 자세로 세련된 모습을 보인다. 모든 것에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지혜와 여유로움은 그런 능숙함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또다른 세계의 권력으로 느껴진다.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이 못되고 오히려 슬픔과 고통속에서 창조성을 찾을 수 있다고 자조하는,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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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태양이 떠오르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동일하지 않음이 깃들어 있음이 신의 전지전능함이라 믿으며, 날마다의 새로운 시작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지만 자꾸 멈칫거리는 내안의 견고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이 된다.
시선이 닿는 저 너머에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까지 송두리째 지배당하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 삶을 살아가며 간절히 원했던 수많은 찰라의 순간. 하지만 어김없이 그 순간은 짙은 그림자만을 남겨두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한여름을 살아가며, 그 계절의 한 순간을 기억하고 뜨거운 태양아래 유난히 추웠던 그 시간을 기념한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만들어내는 계절의 순환은 그저그런것이 아닌, 쌓여 가는 의미가 되어가는 것은 변명하지 못할 나이들어감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혼자만의 삶을 살아갈 수 없고, 다소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원치 않는 것을 참아내며, 주위와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는 깨달음. 그래. 깨달음은 언제나 더디 오는구나.그 깨달음이 늦은 나는 곧잘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 그날을 추억하고, 그 추억은 애가가 되어, 작은 바람에도 부서질 메마른 재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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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사랑에 삶을 더하면 이별이라 말했던가? 그래서 죽음보다 삶을 기록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했는지도 모르지. 시간앞에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 있을까? 시간은 성장과 퇴보, 실망과 권태, 희망과 배신, 착각과 후회를 만든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간은 결코 호의롭지 않다. 무모한 희망만큼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또 있을까. 공중에 흩날려 부서져버린 무수한 기대의 말들과 계획이 나를 조롱하듯 쳐다본다.
커다란 파도앞에서도 당당히 바다를 향하는 가녀린 두발과 모래톱사이 부지런히 부리를 움직이는 그들에게 바다는 삶의 자리. 생명이었다. 모래톱 사이 몸을 숨기는 것과 부리로 그것을 파헤치는 것들과의 부인할 수 없는 생명법칙의 먹이사슬. 작디작은 조가비안에 여린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는 애처로운 껍질. 차라리 부서져버리면 덜 서러울까.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는 나는 작고 소중한 생명을 조용히 바닷물에 쓸려 보낸다. 그 누군가에게도 그랬다. 그냥 그렇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마음. 지켜내지도 잊지도 못하는 그런 마음말이다. 그럼에도 둥근 지구가 이어주는 하늘과 바다를 매냥 쳐다보는 까닭은 누군가 저 하늘 끝에서 나를 문안하는 이가 있다면 "안녕"을 전하기 위함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