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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채 Oct 24. 2017

마음이 대답했습니다.


 사라져 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혼자 너무 힘들어서. 그냥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싶었습니다.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울다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마음이 대답했습니다.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듣자 화가 났습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마음은 협조는커녕 방해만 일삼았습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날뛰며 내 속을 뒤집어 놓는 마음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나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루라도 더 빨리 행복해지려면 정신이 설계한 계획을 빈틈없이 수행해야 했습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말투를 바꾸고 영어 공부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나의 몸과 마음은 술과 라면, 게으름을 갈망했습니다.


 이 지구 상에서 단 한 사람, 오로지 나만을 괴롭히는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세상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고독한 전쟁입니다. 나의 내면은 마이너스 감정의 폭탄을 맞고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불안하고 불행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잔병을 달고 살았고 몸이 아프니 기분이 더 가라앉았습니다. 돌림노래처럼 상호 작용하며 악순환이 고착됐습니다.


 몸, 마음, 정신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지만 또 완전히 달라서 셋을 하나로 보기 어려운 알쏭달쏭한 개념입니다. 정신과 마음은 전혀 닮지 않은 쌍둥이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은 고결한 이상에 가깝고, 마음은 순간적인 감정적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몸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쌍둥이가 사는 집이며 동시에 거울입니다.

 이들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상호 작용합니다. 이 링크가 불안정할 때 정신은 목적을 상실하고 마음은 불안정해지며 몸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정신과 마음, 몸의 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평화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내적 갈등이 시작됩니다.


 사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나와 끝없이 게을러지고 싶어 하는 나는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만 그와 반대로 다이어트를 하기 싫은 마음이 동시에 드는 이유는 그 둘 다 모두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우신가요? 하지만 그것이 마음의 특성입니다. 마음은 정신의 긴장이나 몸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RT 하는 봇에 가깝습니다. 타임라인을 도배하고 있는 마음의 폭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담담함이 필요합니다. 나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되 마음이 협박하는 대로 휘둘리지 않아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신에게 위인전의 주인공이 되려 하지 말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간디도 전 여자 친구한테 '자니?'라고 편지를 썼을 수 있고 이순신도 치질로 고통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적 고뇌는 쏙 빼고 위대함만을 찬양한 위인전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몸은 나의 성전이며 견고한 지지자이지만 우리는 그 성소에 매일같이 알코올과 카페인을 들이붓습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맵고 짠 음식은 뱃속에 불을 지피고 머리를 뜨겁게 합니다. 현대인은 직접 조리한 자연식을 보다 더 많이 섭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시세끼 비건이 될 순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기를 권장합니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이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과 화해하세요. 하루빨리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라고 다그치는 것을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개선시켜야 할 대상, 더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할 기계로 보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오로지 나만 힘든 스스로와의 싸움을 중단하세요. 못난 모습도,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까지도 모두 다 나라는 것을 인정해보세요.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세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남보다 더 나에게 못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세요. 내가 정한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라고 강요했던 것이 뒤틀린 자기애였다는 것을 고백해보세요. 몸, 마음, 정신이 화해할 때에 분열되었던 내가 하나로 합쳐지고 처음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때 깨졌던 연결고리가 복구되고 마음과 몸, 정신의 협업이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욕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내가 생각하는 나'와 '욕구를 통해 표출되는 나'의 간극을 줄일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진짜 내가 가까워질수록 막연했던 나의 본질이 선명해집니다.

 내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훌륭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것,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삶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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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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