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준수 Feb 25. 2021

극장은 사라질까

OTT와 영화 콘텐츠에 관한 단상

일전에 현직에서 활동 중인 영화 유튜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의 주제는 '극장이 사라질까'였다. 


변 : "극장이 사라질까요? 요즘 넷플릭스 보면 그럴 거 같기도 한데 그래도 전 극장에 가는 게 좋아요"

유 : "그래도 점점 줄지 않을까요? 20년, 30년 뒤에는 극장 가는 게 굉장히 고상한 취미가 될 수도 있어요"


이 대화를 한 게 3년 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사태로 비대면 경향이 강해지고 전 세계 극장은 폐업 일보직전에 놓였다. 극장 가는 게 더 좋다고 말하던 나 자신도 영화를 보고 싶을 때면 리모컨을 들고 넷플릭스를 켜고 있다. 영화 보기가 귀찮아진 건 아니지만, '굳이 극장에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나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닌듯하다. 지난해 말, 서울의 한 극장에서 일하던 지인은 사측의 해고 통보를 받았다. 참 좋은 극장이었는데, 경제적 어려움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나 보다. 


이하  출처 '언플래시'



영화 팬이 바라본 한국의 극장


먼저 의문이 든 건 극장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게 단순히 팬데믹의 문제일까 하는 부분이었다. 전문가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칼럼과 신문기사에 실었다. 그들은 코로나가 끝나면 극장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말하곤 했다. 현재 상태는 분명 비정상적인 상황이긴 하다. 코로나의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코로나' 하나 때문이라고 하면 글쎄.... 이미 큰 흐름의 변화가 시작됐고, 우리나라 극장가는 이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변화를 느끼긴 하지만,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는 안되어있고, 돈은 뺏기고 있으니 배가 아프다. 대부분 영화 종사자, 특히 돈을 쥐고 있거나 큰 기획을 하는 이들이 관성에 젖어 있다. 변화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고, 관성적으로 해오던 것만 하고 있다. 


영화 <옥자>가 개봉했을 무렵, 넷플릭스 동시 개봉을 이유로 멀티플렉스들은 상영을 거부했다. '우리가 상영하지 않으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경쟁자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던 멀티플렉스들. 하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영화 자체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보긴 힘들지만, 넷플릭스에게 피해는 없었고, 멀티플렉스 사이에서 신음하던 중소 극장이 이를 바탕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집 근처에 있는 더숲 아트시네마는 사실상 <옥자> 개봉 이후, 지역의 대표 극장이자 문화공간으로 이름을 알렸으니 그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개인적으로 OTT의 역습이 없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우리 극장들이 카운터 펀치를 맞았을 거라고 본다. 우리나라 극장은 큰 약점이 하나 있다. 스테디셀러를 판매하지 않는 점이다. 외국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것은 상영관이 적지만 오랜 기간 상영했다. 특별 기획전이 아니더라도 옛 영화를 틀어주는 경우도 있었고 한번 개봉하면 몇 달씩 상영하면서 관람객에게 '언제나 극장에 가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다'라는 예측가능성을 주었다. 


반면 우리나라 영화팬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면 굉장히 부지런해야 한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작품이 내려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흥행 파워가 상대적으로 적은 작품은 상영시간도 애매하다. 영화사업도 비즈니스인지라 잘 팔아야 한다는 점을 십분 이해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심하다. 반면, 이런 점은 트렌드, 신작 위주의 작품으로 상영관을 꾸려간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OTT가 등장했다.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 극장들이 OTT 시장에 더 많은 점유율을 뺏기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OTT의 괴물이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넷플릭스를 필두로 왓챠, 아마존 프라임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웨이브, 티빙, 시즌과 같은 업체도 있지만, 여러 여건을 봤을 때, 그들이 지금보다 더 성장할 가능성이 적다. 자본은 물론, 콘텐츠의 양과 질, 전략에서 모두 밀리는 실정이라서 현상유지를 한다면 성공하는 정도가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극장이 기존 언론사라면 OTT는 한때 인터넷 신문사, 최근의 여러 동영상 플랫폼을 보는 느낌을 준다. 속도전과 다양한 콘텐츠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완벽하게 밀린 한국의 언론사의 모습과 극장이 오버랩된다. 한국 언론이나 극장가 모두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른다는 면이 비슷하게 보인다. 일부는 형태를 바꿔보기도 하지만, 예전부터 갖고 있는 시장, 특히, 광고시장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기존의 파이는 계속 줄고 있고 광고 영향력도 떨어졌다. 광고주들 입장에서는 '계륵'이 되었다. 외국을 보면 뉴욕 타임스와 같은 기성 언론사들이 강력하고 독특한 고유 콘텐츠(칼럼, 기획기사)를 강화하면서 유료 결재 시스템으로 돌아서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고 있지만, 사실상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극장들도 언론사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보니 더 심각하다.


반면 OTT는 빠르다. OTT 업체들이 세계 각국의 영화 유튜버들과 손을 잡은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기성 영화계와 강한 유대관계로 묶어있는 평론가나 영화시장을 부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인 집단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그 폐쇄성이 다른 나라보다 컸고, 콘텐츠에 관한 일선 회사들의 불합리한 처분이나 갑질도 컸다. OTT 업체들은 자유로운 저작권 사용과 확실한 광고료 보장을 무기로 영화 유튜버들과 손을 잡았고, 두 집단 모두 크게 성장했다. 




새로운 시대의 영화 감상법?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씩 줄어들던 극장가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최대의 적이 등장하면서 개점휴업 상태를 맞이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갈 것이다. 그렇지만 OTT가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는 상황에 제동을 걸긴 힘들 거다. 


좀 더 예술적이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상업적이지도 않은 멀티플렉스와 기존 극장들은 사라질 것이다. 건너 들은 몇 가지 소식에는 우리가 알만한 오래된 극장들이 곧 문을 닫을 거라는 이야기가 포함돼 있었다. 이제 극장을 가는 사람만 가는, '그들만의 고상한' 문화 정도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영화제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영화 <승리호>, 드라마 <킹덤>, <스위트홈> 등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친 건 OTT가 더 성장할 거라는 증거기도 하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에게 OTT는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었다. 


극장에 가서 무조건 봐야 한다는 큰 의지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TV나 핸드폰으로 그 콘텐츠를 소비하면 된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OTT 소개 메일링(구독 링크)을 보며 이러한 경향을 더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시작단계라 아직 구독자는 적지만, 하루에 수명씩 구독을 하고 피드백을 보내고 있다. 원하는 콘텐츠를 정하고 가던 극장과 달리, 넘치는 콘텐츠의 OTT 플랫폼에서는 '좋다', '나쁘다'를 결정해주는, 큐레이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의 영화 감상법이 OTT일지, 개인 영화관 일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나 분명한 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아주 큰 규모의 극장가는 몇 개를 제외하고는 조금씩 자취를 감출 것이다. 얼마 전 문을 연 '라이카 시네마'를 보니 새로 변하는 극장가의 모습을 잘 담은듯하다. 극장을 찾을 충성도 높은 관객을 모집하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을 올려놓고 있다. 


특별한 공간에서 내가 선택한 영화를 보는 행위에는 약간의 자비와 응원이 들어간다. 힘들게 만든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걸 원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조금 이상해도 최대한 몰입해서 보게 된다. 우리가 돈내고 보는 작품보다 시사회를 더 날카롭게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OTT는 좀 다르다. 앞으로 나오는 콘텐츠는 평이하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돈을 벌 수 있을지언정 관객의 선택을 받지는 못할 수도 있다. 원래 누워서 보는 드라마가 더 냉정한 평가를 받디 쉽다. 눈에 불을 켜고 보는 것보다 아무 생각없이 보는 작품이 더 사심없이 보게 되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