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의 발전 가능성
지난해 말부터 OTT에서 볼만한 작품을 골라주는 큐레이팅 메일링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진 않다. 아주 조금씩 수도꼭지에 맺혔다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아주 천천히 한분 한분 구독하고 계신 걸 확인하고 있다. 메일링 구독자가 늘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콘텐츠로 돈을 벌기에 내 이름값이나 인지도는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우선 메일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제작 연습도 해볼 겸 콘텐츠의 최전선에서 어떤 게 유행을 타고 있는지 확인할 목적으로 하게 됐다.
이미 수많은 영화, 드라마 유튜버들이 OTT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과 매체의 콘텐츠들을 골라주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과 유튜버들도 시장이 포화상태라고 지적한다. 물론 새로 시작해서 틈을 비집고 올라올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장을 뚫는 건 쉽지 않다. 반면 글로 큐레이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년 정도는 해볼 생각이다.
꾸준히 OTT를 보다 보니 무언가 흐름이 보였다.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이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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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흔히 떠도는 글 중 하나가 '넷플릭스는 생각보다 볼 게 없고, 왓챠는 숫자는 적은데 볼만한 게 꽤 있다'라는 글이다. 아마도 왓챠나 다른 경쟁 OTT에서 광고의 형식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넷플릭스를 켜면 어마 무시하게 큰 물류창고 같은 느낌이 든다. 상자에 라벨(제목)이 붙어있고 간단한 사용법(줄거리)이 적혀 있긴 한데 내용물이 어떤지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 이건 다른 창고(OTT)도 비슷하다. 다만 여기 넷플릭스 창고는 창고가 너무 넓기도 하고 물건도 많은데 생각보다 물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건을 사용했을 때는 나쁘지 않지만, 엄청 좋다고 말할만한 콘텐츠는 10개 중 하나 정도이다.
원래 넷플릭스는 비디오 가게를 인터넷으로 옮겨온 형태로 시작했다. 대신 한 달 이용료만 내면 개수와 횟수 제한이 없다. 뭐랄까. 21세기 비디오방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다가 이 비디오 가게가 돈을 엄청나게 벌게 됐고 스튜디오를 차렸다. 따로 극장이 필요 없다 보니 번 돈을 활용해 배급사의 역할도 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좋든 싫든 그들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전 세계 방송 시장을 뒤바꿨다.
OTT, 그중에서도 넷플릭스를 자주 뒤지다 보니 좋은 콘텐츠는 엄청 좋지만, 열에 아홉은 별로다. 드라마, 특히, 오리지널 시리즈는 완성도가 높다. 2010년 이후 만들어진 드라마 가운데 무조건 추천하는 걸작은 대부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퀸즈 갬빗>, <마인드 헌터>,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종이의 집> 등이 생각난다.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와 같이 영화에도 많은 투자를 했고 흥행과 작품성 두 가지를 모두 잡았다.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 가운데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다큐멘터리나 다른 장르 영화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물론 영화계 전체로 봤을 때 한 해 개봉되는 작품 가운데 몇 개의 수작과 한 두 개의 걸작, 돈 벌려고 만든 대부분의 작품과 '이게 영화인가' 싶은 작품이 섞여 있다. OTT도 비슷하다. 다만 다큐멘터리의 경우, 인종 차별적이거나 지극히 감독 개인의 마니아적 취향에 맞춰 사실을 왜곡하는 작품이 더러 있어 아쉽다.
그럼에도 넷플릭스는 그 창고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다. 특히 예술영화, 다양성 영화로 불리는 상대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작품들이 선보이는 실험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리시맨>이나 <로마> 같은 작품은 극장과 넷플릭스에 동시 개봉했다. 두 영화 모두 거장들의 작품이라 웬만하면 극장에서 상영될 테지만, 이렇게 실험적이고 상업적인 면모가 덜한 작품을 전면에 광고할 상영관이 많을까 싶다. 나도 두 작품을 TV로 본 후, 극장에서 다시 한번 봤다.
예술성이 높은 영화가 아니더라도 말 그대로 잡다한 모든 형태의 영화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성공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알려진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SF,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넷플릭스에 많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극장 상영에서 손해를 본다면 다음 작품을 기약하기 힘들지만, OTT는 그런 면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더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작품이 이곳에서 구현될 가능성이 크다.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보니 생각보다 가치 있는 물건이 있듯이, 그 넓은 창고에는 적지 않은 확률로 보물이 쌓여가고 있다.
현재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비디오)를 사용하고 있다. 가끔 이용하긴 한데 넷플릭스에 비해 눈에 띄는 작품이 적다. 프라임 오리지널 시리즈도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잘 만든 시리즈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넷플릭스의 아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잘 나가던 대형 마트에서 비디오 가게를 차렸다.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생각보다 이용자가 많다. 옆동네 비디오 가게처럼 자체적으로 만드는 시리즈도 있고 우선 배경 색깔(파란색)이 달라서 뭔가 다른 느낌은 든다. 하지만 그 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큰 매력 어필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모든 동네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점이 큰 장점이다. 그리고 여기는 비디오를 보면서 배우와 그 배역 이름, 감독 등의 정보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처음 보는 배우를 보면서 "쟤 누구지?" 할 때 다른 곳에서는 핸드폰으로 검색해야 하는데 여기는 알아서 보여준다.
OTT 메일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있지만 프라임 비디오의 이용도는 확실히 떨어진다. 물론 나름의 특징을 갖고 넷플릭스에 도전장을 냈지만 경쟁력은 떨어진다. 아마존 이용자만 아니라면 넷플릭스에 뒤질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아마존 프라임은 넷플릭스와 함께 전 세계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시장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넷플릭스처럼 제작과 배급 모두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고 다양한 장르, 특히 다큐멘터리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시장에 진출한 두 곳 외에 가장 기대하는 곳을 꼽으라면 당연히 디즈니 플러스다. 이미 지난해 북미와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 플러스는 기존 디즈니 콘텐츠에 새로 인수한 20세기 폭스사의 콘텐츠, 그리고 요즘 가장 핫한 마블의 드라마까지 시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프라임 비디오나 넷플릭스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육성하기보다 디즈니라는 영상 시장의 거대 공룡이 쌓아왔던 콘텐츠를 푸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이런 느낌이랄까.
잘 나가던 만화가게, 영화관, 놀이공원 프랜차이즈가 비디오 가게를 차린다고 한다. 그동안 엄청나게 팔았던 예전 작품들과 요새 인기 있는 히어로 영화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히어로 영화 시리즈에 이어 드라마까지 낸다고 한다. 영화 끝나고 쿠키영상까지 봐야 해당 시리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던 그 시리즈 내용이 드라마까지 확장된다고 한다. 영화 보려면 그 집에 가서 드라마까지 빌려봐야 하는 걸까? 그나저나 이 가게 창고가 엄청나다. 할머니가 어린 시절 봤다고 말하던 그 작품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디즈니는 확실히 거대한 프랜차이즈다. 한국에 론칭하면 많은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장 진출은 OTT 시장의 규모 확장과 함께 기존 판도를 흔드는 대격변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다른 OTT가 새로운 물건으로 창고를 쌓는 느낌이라면 디즈니 플러스는 수세기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거부했던 거대한 엘도라도를 세상에 공개한 것 같다. 그들의 콘텐츠 중 하나인 <어벤져스>의 와칸다 왕국 같다고 할까. 얼마 전 종영한 <완다비전> 시즌 1의 인기가 어마어마한 걸 보면 이 예측이 틀리진 않은 듯싶다. 디즈니 플러스를 볼 수 없는 국가에서도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유튜브 영상들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평점 어플로 왓챠가 나왔을 때부터 사용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 사용한 플랫폼이다. 2012년에 어플을 냈고 2016년쯤 '왓챠 플레이'라는 이름으로 OTT 서비스를 시작했다. 장단점이 뚜렷하고 외국의 거대 자본에 비해 많은 부분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을 택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보고 평점을 매기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동안 활동했었다. 한동안 활동을 안 하다가 다시 들어갔는데 그 멤버들 중 일부가 투자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외국에서 핫한 온라인 비디오 가게 사업이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 싶었는데 그래도 잘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 작품 수에 있어 확실히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땅값이 비싸서 그런지 창고가 그리 크지 않을 느낌이랄까. 대신 이 창고 주인은 특이한 물건을 모은다. 옆동네 가게들이 안 모으는 물건이나 굉장히 취향을 타는 상품이지만 나중에 잘 팔릴 거 같은 물건을 중심으로 창고에 쌓고 있다. 가끔 예전에 엄청 인기 있었는데 요즘은 찾기 힘든 물건도 볼 수 있다.
왓챠 플레이는 나름의 노선을 정하고 그대로 나가고 있다. 전반적인 작품 가운데서는 여성, 퀴어, 사회고발적 성격을 가진 작품의 판권을 사는 경우가 많았고, 상업적인 면에서는 경쟁 OTT가 확보하지 않은 작품을 선점해 한국 유저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드라마의 경우, 미국의 HBO에서 방영한 작품을 많이 공개하고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체르노빌>이나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과 같은 작품은 유일하게 여기서만 볼 수 있었고 재밌게 감상했다.
좋든 싫든 방송 시장은 줄어들고 그 파이는 온라인 시장이 가져가고 있다. 이미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과 온라인 방송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모든 방송사가 유튜브에 진출해서 돈을 벌고 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는 제 무덤을 파는 꼴이지만 거대한 이익을 놓칠 수 없는 이익집단인 회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OTT는 계속 커지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회사들이 OTT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물론 다 성공을 거두진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소개하지 않은 플랫폼들은 크게 특징도 없고 경쟁력도 없는 곳이 많다. 흥망성쇠가 이어질 이곳에서 시청자들과 제작자 모두에게 기회의 장이 열리고 있다. OTT가 하나의 정규 채널로 편성되는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이미 우리가 쥐고 있는 TV 리모컨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채널 버튼이 따로 설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