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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준수 Mar 27. 2021

30대 걸그룹은 왜 없는 걸까

오늘도 롤린을 듣고 있는 민방위의 걸그룹 이야기

걸그룹 브레이브걸스가 유튜브와 음원 차트의 도움으로 역주행에 성공한 지 3주가량 되었다. 한 2년 전 군대를 다녀온 동생이 좋다고 했을 때 '브레이브 걸스? 이름이 방탄 소년단 같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방시혁이 탄생시킨 보이 그룹'을 뜻하던 '방탄소년단'과 '용감한 형제(Brave Sound)가 만든 걸그룹'은 그룹 이름을 만든 면에서 비슷해 보였다.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그냥 흘러 버렸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집 앞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면 그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 역시 그 노래를 들으며 더 열심히, 더 많이 뛴다. 예비군이나 민방위처럼 보이는 2, 30대 남성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롤린이 나오는 순간 속도를 1.5배 이상 올리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운동을 마치고 내려온다. 


노래를 듣다 보니 '좋다'라는 느낌과 함께 '군생활 때 들었던 노래와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Rollin'을 들을 때면 십여 년 전 군 생활할 때 애프터 스쿨의 'Diva'가 생각난다. 이미지나 뉘앙스나 느낌까지 되게 비슷하다. 작곡가도 용감한 형제로 같은 사람이다. 확실히 그는 여름에 걸맞은 노래를 작곡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듯하다. 애프터 스쿨도 그랬고, 씨스타도 그랬고, 지금 브레이브 걸스도 그렇다.


여름 느낌이 나는 후크송이면서 청량한 느낌과 기운 나게 하는 빠른 템포는 확실히 삶에 지쳐 있는 이들, 기운 내야 하는 일이 많은 군인들에게 확실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애프터 스쿨의 디바 노래를 들으면 전주에 "브레이브 사운드"라는 시그니처 사운드가 나왔다. 주말에 그 소리만 들리면 모든 작업과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오던 선후임들이 생각난다. 


노래 한 곡으로 작업, 운동, 휴식, 이동 중 발걸음을 빠르게 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어서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가수를 진심으로 응원한 게 참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유튜브에서 그들의 음악을 켜놓고 일을 하곤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KBS 간판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진행하는 유튜브 코너 <유희열 없는 스케치북>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30대는 퇴물인가요?


그 영상에서는 팬들의 질문을 받아 그 질문을 가수에게 직접 듣는 구성으로 진행됐다. 실력도 좋지만 멤버들 간의 끈끈한 우정,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끈기, 어디든 공연하러 갔던 그들의 모습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영상을 봤다 그러다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순간이 있었다. 


멤버 유나가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문제였다. "곧 30이신데 본인이 아줌마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받은 멤버는 질문이 짓궂다면서 "아직 샤방샤방한 청춘이다"라고 의연하게 넘어갔지만 굉장히 불쾌한 질문이었다. 아무리 가수, 특히, 걸그룹의 활동 기간이 짧고 활동 연령대가 낮다고 하지만 무례한 질문을 한 팬이나 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보낸 작가 모두 잘못이었다. '업계 사람들 전체가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서 30대 걸그룹이 없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실력이 출중해도 자본의 영향을 넘어 큰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 브레이브 걸스 공식 인스타그램



30대를 아줌마, 아저씨로 볼 수도 있다. 가끔 집에 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옆집 꼬마를 만나곤 한다. 그 아이는 나를 보면서 "아저씨도 5층 살아요?"라고 물었고 "응, 아저씨 옆집에 살아요"라고 답했다. 나 역시 아저씨임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고 내가 늙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운동할 때나 일할 때, 술을 마실 때에 20대 때처럼 날아다닐 듯한 컨디션은 아니지만, 30대와 40대 역시 여전히 젊고 한창 무언가를 할 나이다. 


그런데 위 질문은 대놓고 '30살이 넘었으니 넌 늙었다. 퇴물이다'라는 의도가 담긴 문장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회와 가능성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도전을 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나이 들면 눈 앞에서 사라져라'는 식의 말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고 그 노력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나쁜 말이다.



나이가 많으면 실력이 떨어지는 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한 때 많이 봤었다. 그러다가 그 진부하고 틀에 박힌 심사위원들의 표현이 싫어서 한동안 보지 않았다. 방송사를 막론하고 심사위원들은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나이가 많으면 쿠세(습관)가 심해"

"어린 친구들이 가르치기 편하지"

"너무 오래 노래를 부르면 틀에 박히고 변화 가능성이 없어"


그렇게 따지면 가요계라는 무대에서 몇십 년간 활동했던 심사위원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물갈이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많으면 그만큼 경험이 많을 거고 여러 장르를 섭렵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할 가능성은 적을지언정 자신만의 무기를 갖고 특색 있게 활동해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노래 부른 만큼 깊이도 쌓였을 테고.


요즘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을 보면 거의다 2000년 이후 출생한 멤버들이 주를 이룬다. 어릴 때부터 능력 있는 사람을 연습시키고 가수로 키워내는 현재 소속사들의 시스템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시스템이 나이가 많다고 적용되지 않다고 하는 것도 우습게 보인다. 정작 자신만의 음악적 영역을 구축하고 활동하는 가수들에는 연습생 출신, 라이브 카페 가수 출신, 오디션 출신, 버스킹 하던 밴드 출신 등 굉장히 다양하다. 그리고 일정 활동을 해왔던 이들은 꽤 나이가 있는 편이다. 


최근에 봤던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 씨도 30대이면서 20대 내내 밴드 '알라리깡숑'의 보컬로 활동했다. Top 3에 들었던 이무진 씨는 서울예대 재학생이고, 정홍일 씨도 20년 가까이 밴드 보컬 활동해왔다. 


브레이브 걸스 역시 마찬가지다. 각 멤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그룹에 합류한 사례가 많고 4, 5년간 무명생활을 이어왔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춤, 보컬뿐만 아니라 그 흔한 멤버들 간의 불화와 잡음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조차 잡기 힘들었다.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했던 환불 원정대 / 놀면 뭐하니 공식 홈페이지



노래는 누구나 부른다


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나이트 출신 댄스가수, 싱어송 라이터, 발라드 가수, 락밴드, 트로트 가수 등 다양한 가수들이 나왔다. H.O.T와 젝스키스가 1, 2위를 다투던 1997년 '존재의 이유'를 발표했던 가수 김종환 씨는 그 모든 젊은 가수들을 이기고 가요대상을 차지했다. 이렇듯 노래는 누구나 부르고 또 듣는다.


요즘 차트에 있는 가수들을 보면 모르는 가수가 절반 이상이다. 그리고 노래도 너무 비슷하다. 기획사에서 다년간 연습생 생활을 거쳤다고 하지만 그들의 실력이 예전보다 월등히 좋은지는 모르겠다. 과거 90년대 나이트클럽에서 디스크자키를 하다가 2달 만에 음반 준비해서 나왔던 댄스 가수들이 엄청난 가창력과 댄스로 무대를 휘저었던걸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갈수록 어린 세대를 일찍 가수 데뷔시켜야 한다는 강박은 가요계의 목소리를 점점 어리게 만들고 있다. 오로지 10대의 목소리만 존재할 뿐이다. 30대가 되니 예전부터 활동했던 가수들을 제외하고 비슷한 세대의 새로운 목소리를 듣기 힘들어졌다. 부모님 세대가 지난해 미스터 트롯을 기반으로 한 트로트 열풍에 심취한 이유도 그들의 감성과 목소리를 대변할 이들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취업을 하고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꾸려가기 시작하는 30대, 그즈음까지 꿈만을 보고 달려왔던 브레이브 걸스. 역주행 하루 전날에 대표에게 연락해 해체를 논의했던 그들은 부활했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성공에 더 기뻐하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실력이 되는 사람에게 마지막 기회를 한번 더 주고 그것을 잡는 것. 단순히 가요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이들이 40대, 50대가 되어도 꾸준히 활동하는 가수로 남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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