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직장에서 일했을 때 편집장이나 국장이 기획기사를 내라고 쪼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아니. 돈도 안 주는데 뭐 이리 쓰라고 강요해??? 이럴거면 브런치에 마실 커피 쿠폰이라도 하나 주던가'
브런치에 뿔이 나서였는지 뾰로통하게 반응했다. 살짝 기분도 나빴다. 얼마 전 글 같지도 않은 유명인의 글을 브런치에서 메인에 올려둔 걸 봤기 때문이다. 평소 이 플랫폼을 비난하던 유명인도 여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계정에 곧 1000명의 구독자 분이 모일 예정이라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 때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이 떠올랐다. 그 영상에 나온 분은 영상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유명하신 분들이 쓰신 에세이 옆에는 제 책이 있습니다. 오며 가며 눈길이 가면 함께 구매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글과는 거리가 있는 일을 하는 유명인들이 책을 썼고 그 책과 자신의 책을 함께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책을 다 읽어봤는데 둘 다 나쁘진 않았다. 다만 유명인의 책은 확실히 편집자의 손이 많이 갔음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뭐랄까. 글이 솔직하긴 한데 자기 자신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른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글 전문가가 아니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처럼 아쉬움에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유명세를 이용해서 되지도 않는 콘텐츠를 내며 돈벌이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의견도 일부 공감한다.
유명해지고 똥 싸기
콘텐츠의 좋음과 나쁨을 결정하는 요소는 뭘까. 영화 전문가는 아니지만 영화 관련 글을 3년 넘게 쓰면서 항상 고민하는 부분도 이와 연결된다. 흥행이 잘 된 작품과 작품성으로 불리는 완성도와 독창성 등 예술적 가치가 가득 담긴 작품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한가를 고르는 건 아마추어 에세이스트가 아닌 영화 평론가에게도 힘든 결정이다. 물론 둘 다 담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이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최근 상업영화의 대표 격이 된 히어로 장르 영화에서 예술적인 가치를 듬뿍 담기란 쉽지 않다. 반면 흥행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존재 자체로 훌륭한 작품도 많다. 참 힘들다.
글은 어떨까. 글을 포함한 콘텐츠 전반에도 질과 유명세 부분이 적용되는 걸까.
어릴 적 나는 미국의 예술가 앤디 워홀이 했다고 알려진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라는 말을 혐오했다.
'어디서 고고한 콘텐츠를 말하는데 똥을 들먹이고, 유명세를 등에 엎고 돈을 벌려고 하는 거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자신이 유명해진 것을 이용해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무언가를 쉽게 얻으려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아니다.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게 쉬울 수도 있고 반대로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기존에 했던 일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해도 다른 분야에 도전할 때는 그 진정성과 실력을 의심받기 쉽다. 지인 중 한 명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조금 우스워지기도 했다. 물론 현재 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최고의 입지를 달리고 있는 인물이지만 새로운 도전은 달랐다. 글과 거리가 멀었던 유명인들이 책이나 콘텐츠를 냈을 때 그 평가는 천차만별이었다.
공감을 자아내는 내용이 많다면 글의 유려함이나 솜씨가 떨어져도 쉽게 읽히고 응원을 받는다. 다만 주제, 내용, 문장 등 많은 부분에서 총체적 난국을 겪게 되면 안 하느니 못하다. 실제 그런 책들을 많이 봤다. 물론 책이 잘 팔린다고 해도 콘텐츠로서는 평가 가치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책은 서점 매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다.
글에 있어서는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그가 평소 쓰던 에세이를 출간하지 못했다. 물론 그의 에세이는 훌륭하다. 하지만 유명세가 없을 적에 하루키의 산문은 출판사 입장에선 똥 모양 된장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잘 담근 된장이긴 한데 대중은 똥으로 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똥 싸고 유명해지기
콘텐츠는 하나의 작품인 동시에 제품이다. 유명해지고 똥을 싸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싸지른 것이 책이건 그림이건 음반이건 강연 콘텐츠 건 큰 비난과 맞닥뜨린다. 비난받는 부분이 원래 했던 일, 본캐의 전문성과 명성에 누를 끼칠 정도가 된다면 그 똥은 소화불량으로 화장실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얼굴에 범벅을 한 모양새가 된다.
우리는 TV에서 강연을 하던 수많은 강사들이 자신의 분야 너머를 건드렸다가 왜곡 논란에 휩싸여 자취를 감춘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소제목처럼 망한 콘텐츠를 내놓고 성공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사례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똥을 싸도 그 똥을 잘 포장하면 잘 팔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취를 감춘 이들의 책과 영화, 음악 등 여러 가지 저작물들은 여전히 우리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판매되고 있다.
포장지는 좋다. 제목도 광고도 그럴듯하다. 그런데 똥맛 된장인지 된장 맛 똥인지 알 길이 없다. 사실 된장 맛 똥이면 낫다. 된장의 맛이 난다면 어느 정도 제품으로서의 가치를 발현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사람들은 그 콘텐츠를 똥이 아닌 된장으로 알고 소비할 테니까. 똥을 싸고 유명해지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가능하긴 하다. 정성스럽게 포장하거나 이게 똥이 아니라 된장이라고 말한다면 어느 순간 그건 된장 맛이 나는 똥이 되어 있을 테니까.
똥을 쌌는데 똥이네?
하지만 대부분 경우 그냥 똥을 싸고 나니 누가 봐도 똥인 경우가 많다. 가당치도 않은 내용과 문장, 위선으로 가득한 생각의 글이 묶인 책도 많고 필름과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이게 뭐지' 싶은 영화도 많다.
작년에 일했던 모 일간지 대표가 썼던 책이 생각났다. 딱 그 회사를 계약직으로 다니다가 그만뒀는데 자신이 쓴 책이라며 건네줬다. 제목을 보니 한국과 일본에 관한 내용인데 30쪽을 읽는데 사흘이 걸렸다. 처음엔 내가 문장 이해력이 떨어진 걸까 하고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계속 보니 내용이 개똥 같았다. 가뜩이나 나무가 부족한 시점에 이런 글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한가지 더 안타까운건 누가봐도 똥인데 자신은 그게 똥인지 모르는 창작자의 모습이다. 된장맛 똥이라면 냄새만 없애면 된다. 포장지로 잘 감싸도 되고. 그런데 그냥 똥은....그 똥같은 창작물은 답이 없다. 아무리 잘 처리해도 썩기 때문이다. 그런데 똥주인은 그것도 모르고 똥을 나르고 있다.
그래서 너는?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너는? 똥이라도 만들어봤니?'
흠.... 그렇게 질문을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여기저기 노상방뇨를 한 것 같긴 한데 눈에 띄지 않아서 사람들이 잘 모르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편이다. 다만 뭔가 크게 한방하려고 준비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변비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