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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하게 Jun 17. 2021

오늘도 '실패'한 프로 탈락러의 정신승리 법

실패해도 괜찮아 ;)

오늘 아침 조주기능사 시험을 보고 왔다. 레시피도 완벽했고, 7분 동안 칵테일 3개를 만들어야 해서 시간 부족으로 많이 떨어지는 시험인데, 나는 3개를 다 만들고도 무려 2분이 남아서 기쁘고 뿌듯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시험이 끝나고 감독관이 나의 번호를 불렀다.

12번님, 지거 용량이 혹시 어떻게 되죠?


"1.5온스랑 1온....아......"


(지거는 술을 계량하는 도구로, 보통 작은 부분이 1온스, 큰 부분이 1.5온스다!)

이렇게 작은 쪽이 위로 들고 사용했어야 하는데, 반대로 들고 사용했다 ㅠㅠ


그제야 내가 지거를 계속 반대로 잡고 술을 계량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술이 다 1.5배로 들어가서 특히 마지막에 콜라를 부으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칵테일 같은 경우 콜라 들어갈 자리가 부족해서 칵테일 색이 많이 연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뭐 실수할 수도 있고, 나는 워낙 덤벙대는 성격이니깐 사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더 어이없는 사실은, 불과 바로 어제 시험 후기 찾아보면서, 지거를 반대로 잡아서 감독관한테 혼났다는 분의 후기를 내가 봤다는 거다...ㅎㅎㅎㅎㅎㅎ


7월 9일 합격자 발표인데, 과연 나는 합격할 수 있을까? ^_ㅠ




이렇게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다는 것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하지만 '살면서 나는 어떤 실패를 했을까?'라고 자문했을 때, 나는 솔직히 실패의 경험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경험은 많지만,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처럼, 성공하지 못한 경험도 결국에는 또 다른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는 걸 믿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그 어떤 경험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과연 '실패'가 뭘까?


조금 식상하지만, 가장 정확한 정의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실패'의 국어사전적 정의를 살펴본다.

실패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무언가를 그르치는(어떤 일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다) 일은 내 기준으로 남에게 심한 피해를 주거나, 몸을 다치거나, 패가망신하는 등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패'의 경험은 대부분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거 같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경우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는' 상황을 우리가 흔히 실패라고 부른다는 것인데, '뜻'은 내가 정하는 거니, 실패의 판단 기준은 주관적이고 얼마든지 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정신승리‘만 잘하면 세상엔 실패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승리는 어떻게 할까? 내 뜻대로 무언가 되지 않았을 때도 기분 좋게 넘길 수 있는 정신승리 법을 내 나름대로 2단계로 정리해본다.


1.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자!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고,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회고록에 반드시 실패의 경험이 들어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머리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면 받아들이기 힘들어지고, 멘탈이 나가는 게 문제다. 이럴 땐 '쌩'으로 정신승리를 하려고 하면 당연히 힘들다.


이때 나의 감정에 집중해보자.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사실 잘 활용하면 스트레스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다. 등따숩고 배부를 때는 게을러지고 늘어지기 마련인데, 위기의 상황에서는 사람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패의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냉철해질 수 있다. 이런 나의 감정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나의 실패를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나는 고백에 실패한 경험이 여러번 있다. 작심 3일의 표본인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운동을 꾸준히 한 적이 없었는데, 가장 최근 (그래도 벌써 7년...?은 된 거 같지만ㅎㅎ) 고백에 실패한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의 1년 동안 매일 스쿼트를 100개씩 했다. 한번 자리 잡은 근육은 빠졌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시 붙는다. 그리고 스스로 꾸준함, 홈트에 자신감이 생긴 건 덤. 그때 생긴 허벅지 근육으로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


오늘 역시 멋지게 자격증을 따서 인스타그램에 자랑도 하고 싶었고, 7월에 내 공간에서 지인들을 초대해서 칵테일 팝업스토어도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나의 실수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걸 수도 있는 오늘의 시험은 어떻게 보면 '실패'의 경험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칵테일 팝업 스토어는 뭐 자격증 있어야 하나? 합격 축하 파티 대신 파티 테마를 '실패해도 괜찮아'로 잡자! 술 용량을 1.5배 넣어서 시험을 망쳤다는 걸 마케팅으로 활용해도 좋겠다:

국가에서는 금지했지만, 제 가게는 제 마음이니깐 알콜 정량 대비 1.5배 넣어드려요! 오셔서 저와 함께 기분 좋게 취해요 ㅎㅎㅎㅎ


2. 아무리 생각해도 활용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공개적으로 글을 써보자!


성공한 사람들의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물론 사람들은 성공담을 보면서 희망도 얻고, 어떻게 하면 이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동화가 아니니,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아무리 성공기를 많이 읽어도 우리는 그들처럼 되기는 힘들다는 것을.


그러니 나의 '실패'담을 자유롭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공개해보자!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아가 내가 실패한 경험을 공유함으로 누군가는 좌절을 덜 겪게 된다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그리고 사실 성공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지만, 실패에는 많은 이들이 진심 어린 위로를 보낸다! 사회는 성공한 이들을 향한 시기도 넘쳐나지만, 동시에 실패한 이들을 향한 동정과 연민도 충만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경험을 제공하는 좋은 일도 하고, 나에게 오는 위로들을 통해 따뜻해지자!


오늘 나의 ‘실패’담을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올렸는데, 거의 역대급으로 답장을 많이 받아 기분이 좋다! :)


오늘 시험 끝나고 올린 스토리!


마무리는 오늘 받은 답장 중에 가장 멋있었던 말로:

Everything is an experience and experience is everything!
(모든 건 다 경험이고, 경험은 모든 것이다!)
- Dee


그러니 우리,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



부록. 조주기능사 시험 현장에 대해 궁금하신 분만 읽으세요! 시험 끝나자마자 적은 오늘 시험 복기!


오늘 아침 조주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보고 왔다. 40개 칵테일의 레시피를 완벽하게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대기실에 들어가니 살짝 떨렸다.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계속 공부를 하는 것보다 머리는 비우는 게 좋기 때문에, 레시피를 들여다보는 대신 심호흡과 스트레칭을 하다가 12번을 뽑아 4번째 조로 시험장에 들어갔다.


3명이 조를 이루어 보는 시험이고, 3명 중 한 명이 공을 뽑으면 그 공에 해당하는 칵테일 3잔이 오늘의 시험 문제다. 아무도 공을 뽑으려 하지 않아서 내가 공을 뽑았다. (누가 나서면 가만히 있지만, 아무도 안나서면 나서는 걸 좋아하는 나의 성격! ㅋㅋ 혹시라도 어려운 문제 걸려도 남 탓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그래서 뽑은 3번!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느낌이 좋았다.


가장 먼저 주어진 2분 동안 술 및 기물의 위치를 파악했다. 보드카, 진, 테킬라 모두 생소한 브랜드라 라벨을 열심히 봤다. 기타 주류, 리큐르, 주스 등의 위치는 블로그로 미리 파악하고 간 그대로라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2분이 끝나갈 무렵 감독관 중 한 분이 칠판에 오늘의 칵테일 3잔을 적어주셨다:


1. Healing

2. Long Island Ice Tea

3. Pousse Cafe


앞 타임 3타임 모두 블렌더 돌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이 정도면 무난한 난이도라고 생각돼서 조금 기뻤다. 그리고 먼저 1번 힐링을 만들었는데, 쉐이커에서 잔으로 따를 때 생각보다 쉐이커에 술이 많이 남아서 살짝 '응?' 했는데 넘기고 가니쉬로 트위스트 레몬필까지 장식해서 올렸다. (레몬필이 너무 짧아서 트위스트 하다가 중간에 끊어졌다 ㅠ 흑)


2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 롱티! 들어가는 재료는 많지만(진, 보드카, 라이트럼, 데킬라, 트리플섹, 스윗앤샤워 믹스, 콜라) 빌드 기법이라 쉐이커나 믹싱글래스에 만들 필요 없이, 바로 서빙 잔에 술을 넣으면 돼서 나쁘지 않다. 이것도 역시 술을 다 넣고, 스윗&샤워 믹스도 넣었는데, 마지막 하이라이트 콜라를 넣을 자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또 한 번 '음...?'하고 역시 넘어갔다.


마지막은 푸스카페!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3개의 층을 내는 칵테일이라, 조심조심 천천히 만들었다! 나는 분명 연습한대로 계량을 잘해서 넣었는데, 처음 넣는 빨간색 석류시럽이 1/3 지점이 아니라 1/2 정도까지 훅 올라와서 '흠....' 했는데, 이 정도는 큰 감점 요인은 아니니 바로 다음 초록색 민트 리큐르를 조금만 넣었고, 마지막 노란색 브랜디까지 비율이 예쁜 1:1:1은 아니었지만 층은 보이게 잘 넣었다.


모범답안. 내가 만든 건 위에서부터 1:2:3의 이상한 비율이었다ㅠ ㅋㅋ


이때 2분 남았다고 알려줬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선 7분 안에 다 만들어서 내는 게 1차 목표였는데, 3개 다 만들었는데 2분이나 남았다니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푸스카페를 다시 만들까 말까 하고 있었는데, 감독관님이 다 만들었으면 정리하라고 해서 어차피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니 그냥 내자!라는 생각에 여유롭게 내가 사용한 쉐이커 설거지도 하고, 도려낸 레몬 과육도 버리고 평소에는 그렇게 안 하는 정리를 아주 깔끔하게 하고 뿌듯해했다.


7분이 끝나고 심사평을 듣는데, 아주 충격적인 평가를 들었는데...! 바로.....


“12번님, 지거 용량이 혹시 어떻게 되죠?”


하하하핳. 지거를 반대로 들어서 모든 술을 1.5배 넣었다.

망했지만, 즐거웠으니 그걸로 됐다!


+ 는... 결과적으로 80점에 합격해서 엄살쟁이가 되어 버렸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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