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간'의 로망, 실현부터 폐업까지의 기록 -1
"작업실이 갖고 싶다."
새벽 수영 후 합정에서 8시 통근버스를 타고 파주의 출판사로 출근하던 시절, 나에겐 로망이 있었으니 - 수영을 마치고 회사가 아닌 내 공간으로 가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거였다.
여름의 절정을 달리던 7월, 온통 푸릇한 파주도, 고개만 돌리면 초록 나무가 가득 보이던 넓은 사무실도, 하는 일도 나름 만족스러웠지만, '직장인' 세 글자가 주는 답답함 자체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직 코로나가 없던 당시, 직장인 부업으로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는 게 유행이기도 했고 (실제로 지인 중에서도 집의 빈 방 한 개를 에어비앤비에 내놓고 슈퍼 호스트가 된 사람도 있었다!), 사회 전반에 퇴사하고 카페, 독립서점 등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또 부업으로 주말마다 원데이 꽃 수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간 대여를 많이 알아보기도 했고, 실제로 여러 공간을 대여하며 운영하는 사장님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로망'이었던 나의 생각은 점점 '해볼 만하겠는데?'로 바뀌었고, 그다음 해에 회사가 파주에서 홍대로 이사 가면서 직장을 다니며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 접근성을 확보했으니 '일단 구경이나 해볼까?'라는 심정으로 상가 중개 어플을 다운 받아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지역을 정하고, 보증금, 월세 등 조건을 입력하면 거기에 맞는 공간이 쭉 나오는데, 세상엔 어쩜 이렇게 예쁜 공간들이 많은지 한동안 하루 종일 상가 구경한다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 같은 경우는 내가 가진 예산에 따라서 구할 수 있는 매물의 편차가 크다. 반면 상가는 보통 월세로 계약하고, 보증금도 1000~2000만 원 사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당장 보증금만 있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공간을 계약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상당히 위험한데, 나는 계획은 1도 모르는 극 P로써 (MBTIㅋㅋ), 보증금은 수중에 있으니 월세는 '낼 때 되면 다 방법이 있겠지~'라는 마인드로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매물을 열심히 구경했다.
그리고 점심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실제 매물을 보러 가게 되었는데, 부동안 아저씨의 차를 타고 한여름 홍대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생각보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운이 좋게도 처음 연락드린 중개사 분이랑 성격이 너무 잘 맞아서 재밌게 매물을 보러 다녔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신 차리고 보니 계약을 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래도 월세 100만 원 이내로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확고한 계획이 없으니 '여기는 이게 좋으니 10만 원 정도는 초과돼도 괜찮지 않을까..?' 하다가 결국 테라스가 있는 공간에 꽂혀서 월세 135만 원짜리 매물을 계약하게 되었다.
여기서 내가 또 몰랐던 사실은, 상가는 부가세가 있기 때문에, 월세에 10%를 추가하고, 보통 관리비까지 더해야 사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매달 내는 '월세'였다. 따라서 135X110%+10만 원=159만 5천 원이 최종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매달 내고 있는 돈이다. 여기에 전기세와 수도료, 인터넷까지 내면...ㅎㅎㅎㅎㅎㅎ 속 쓰려서 더 이상의 계산은 생략하겠다.
이렇게 해서 나는 얼떨결에, 직장인 신분으로, 사무실에서 도보 5분 거리에 또 하나의 사무실이 생겨버렸다.
이제 꽃 수업도 안 하고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데, 160만 원씩 매달 내는 게 너무 아까워서, 문 닫기 전 기록이라도 남기려고 이번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귀찮아서 계속 미루다가 오늘 드디어 상가 어플에 매물도 등록했어요!) 혹시 공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앞으로 예상 목차:
1. 발품 팔기, 계약
2. 물건, 식물 채우기
3. 사진 찍고 홍보하기, 지도 등록, 네이버 플레이스, 스페이스 클라우드
4. 파티룸 운영하기 1
5. 파티룸 운영하기 2
6. 청소, 청소, 청소
7. 나의 공간이 있다는 것 1 (꽃 수업 용도)
8. 나의 공간이 있다는 것 2 (개인 용도)
9. 진행했던 이벤트 들 (생일 카페, 강아지 모임, 와인 모임)
10. 폐업
번외) 홍대에서 애정 하던 공간과 이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