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일하는 일기 그리고 네 번째 퇴사
20220103-20220107
지난주 정산과 사업평가를 대략 마무리하고, 2021년 사업을 행정적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계획 보고서 분류에 맞춰 단위별 결과보고서를 쓰는데 추진배경, 추진 목적, 성과 등 양식에 나온 구분을 최대한 이해하면서 단어를 이렇게 쓰면 되는지, 반복해서 쓰는 건 아닌지 확인하면서 썼다. 근거로 시작한 사업을 결과로 남기는 거니 책임감을 갖고 쓰게 되었다. 주니어 때는 통합 결과보고서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냐, 쓸데없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단위별로 필요한 기록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네. 익숙해진 건지, 꼼꼼해진 건지 헷갈리지만 뭐, 일단 열심히 썼고 그렇게 팀에게도 공유했다.
그리고 이번 주 시무식 겸 12월에 못한 전체회의를 했다. 돌아가며 올해의 다짐 계획을 얘기하기로 했는데, 다음 달이면 나가게 되는 나로서 올해 여기서 일하는 마음가짐이나 계획을 얘기하기보다는 최근에 본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에서 홍진경이 얘기한 말을 캡쳐하여 공유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한 내용이었는데,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은 계속 오기 마련이고 그건 나이가 든다고 항상 현명한 결정을 하게 되는 게 아니기에 그 선택에 있어 도움이 되는 것이 책이라고, 사고를 깊게 하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니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정말 공감. 정말 매일, 매 순간 선택을 해야 된다. 피할 수는 없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이 정립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전체 공유용이었는데 결국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였구나 싶다.
20220110-20220114
팀원이 쓴 결과보고서를 검토하며 다듬었던 한 주. 내가 쓴 것을 내가 보는 것도, 남이 쓴 것을 내가 보는 건 또 다른 일이다. 어떤 태도로 썼는지 보일 때 보고서가 잘 읽히기도 안 읽히기도 한다.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조금씩 타협하면서 검토를 했다. 과연 이래도 되나 싶지만... 일단 최선이라고 여기며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수정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과연 이래도 되나... 흠흠
그리고 초과근무 이슈가 있었는데 팀원이 올린 초과근무 기안을 왜 결재해줬냐고 상사한테 혼났다. 초과근무를 극도로 싫어하는 그 가치관을 존중하지만 이번 꾸지람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 번째 적게 되는데) 과연 이래도 되나.. 흠흠흠
20220117-20220121
3월부터 다닐 대학원 등록금을 냈다. 처음 학자금 대출을 받아 냈는데 마음이 복잡 미묘하다. 학과 과정을 시작하는, 좋아하는 도서관을 매일 같이 가겠다 하는 설렘도 있고, 6학점 수업받는 등록금이 '뭐 이렇게 비싸!' 하는 속상함도 있고,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지!' 하는 굳은 다짐도 있는 그런 마냥 좋지만도, 싫지만도 않은 그런 감정이랄까. 아무튼 등록금을 내고 나니 지금 직장을 퇴사하는 게 실감이 난다.
사업 평가를 위한 전체 회의를 하고, 조직 문화, 비전 관련 워크숍을 하면서 리더십은 경력이 많다고 느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할 때 모드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리더가 될 수 있겠다 싶다. 결국, 본인 마음에 들면 옳은 거고, 아니면 틀린 게 되지 않게 하는 선을 민감하게 알아야 할 텐데, 참 어렵겠지. 받아들이는 이도 겨우 두, 세 번의 경험이 고정값이 될 테니 변화를 알아차리는 데 노력이 들테고 타이밍 맞기가 더 어려울 터, 어렵고 힘드니 그냥 그런 거다 하며 확증편향적 생각을 하게 마련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말자, 제발!
20220124-20220128
다채로운 이슈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아주 씬나게(!) 보낸 한 주가 갔네. 연봉계약, 월급, 조직개편, 연차 산정, 사업계획 전체 회의 등 어느 것 하나 정리를 못한 체 설 연휴를 맞이하였다. 나 원 참... 이렇게도 한 달을 보낼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일하는 방식의 습관과 태도는 바꾸기 어렵구나 백 한 번째 확인하게 되었다. 자신을 채근하면서도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변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집부리지 않아야 한다는, 내 주장이 고집인가 아닌가를 계속 봐야 하는구나, 어른 되기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백 두 번째 생각하는 한 주를 보낸다.
20220203-20220204
설 연휴 마지막 날 집에서 전 직원들께 줄 책 포장을 하였다. 나름 퇴사 선물인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이 책이 어울릴까, 마음에 들까 고민을 하다가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겠지, 주는 것까지만 내 몫이다 생각하고 이름을 확인하며 포장을 하였다. 일찍 출근해서 각 직원들 자리에 책을 놓으니 산타가 된 기분, 역시나 주는 행위는 기쁘다! :) 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것 자체의 기쁨이 내 안에서 줄지 않아 다행이다. 책을 받은 직원들이 오며 가며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하고, 장문의 메시지로도 받으니 다행이다 싶고 참 고맙다. 내게 선물을 준 직원들도 있고, 편지도 받았는데 뭔가 뭉클했다. 또 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히 지내기를, 자연스레 마음이 그리 빌어지는 마음이다.
마지막 팀장회의를 하고, 결과보고 문서를 수정하고, 메일, 컴퓨터 파일, 공유 문서, 짐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 여기서의 출근이 하루 남았구나.
20220207
네 번째 퇴사일이다. (남은 연차가 이틀 있어 서류상으로는 다른 날짜겠지만) 결과보고서, 인수인계 자료를 정리하고, 동료들과 즐겁게 점심을 먹고, 인수인계 내용을 팀에게 공유하고, 정리 안 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버릴 것들은 과감히 버렸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은 정리해서 갖다 놓고 말이다. 그렇게 정리하는 가운데, 팀원이 송별회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본인의 시간을 쪼개어 나를 보내주는 고마운 메시지와 사진을 담은 영상까지 만들어주었다. 함께 보는데 남의 시선에 담긴 내 모습이 낯설기도 우습기도, 애잔하기도 하였다. '굿바이'로 시작하는 영상 속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하고 싶은 동료들의 메시지가 천천히 뜨고 졌다.
유쾌하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
피지컬리, 멘탈리 존재감 뿜뿜 양말성애자 동료
회의 중에 길을 잃고 있거나, 분위기가 이상하게 심각해지거나, 돌파구가 안 보일 때마다 등장하여 시원~하게 환기를 시켜주던 공기청정기 같은 동료였지요!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동료를 잘 챙겨주고, 동료에게 기회를 많이 주는 사람!
함께 일해보고 싶은 동료였어요! 같은 팀으로 일해보지 못해 아쉽지만 다음에 더 좋은 기회로 뵙길 바라겠습니다.
긴 대화를 해보지 않아도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게 저한텐 OO였던 것 같아요. 짧은 시간이지만 오며 가며 좋은 자극과 힘을 얻었습니다. 감사했어요, 멋지고 따뜻한 OO!
항상 자기만의 이야기와 철학이 확실하고, 중심이 단단한 동료였어요. 거기에 유머까지 담겨있는! 한 번쯤 제 팀장님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답니다.
늘 균형적으로 사고하고 타협점을 찾아 팀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현자였어요. 그 훌륭한 모습으로 늘 OO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OO는 참 현명한 동료였습니다.
나가는 나를 위해 좋은 글을 써준 동료들에게 고마웠고, 무엇보다 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한테 메시지와 사진을 요청해서 수집하고 편집한 나의 팀원에게 감개무량한 마음이다. 내가 이런 말을 들어도 될까 싶을 만큼 찬사를 들은 것 같아서...
제가 여기에 입사하자마자 OO의 팀원으로 일하게 된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됐어요... 작년 2021년만큼은 OO한테 제 인복을 다 썼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작은 일이라도 제 커리어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많이 이끌어주어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아부 같아서 꼭 참고 있었는데 OO는 배울 점이 많은 존경할 수 있는 리더라고 생각해요... 밖에서는 편하게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영상 마지막, 나에게 보낸 그녀의 메시지는 두고두고 기억해야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퇴사하는 날, 나도 꼭 와서 잘 보내줘야겠다. 이 날의 송별회는 정말 잊기 힘들 것 같다. 고마웠던 동료들, 앞으로 인생이 궁금한 동료들과는 이후에도 가끔 만나야지, 못다 한 회포(!)도 꼭 풀어야지 싶고.
이번 직장에 들어온 첫날의 책상과 마지막 날의 이 책상이 눈 위에 잔상으로 겹친다. 일과 일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보낸 내 자리는, 누군가의 자리가 되어 이어질 것이다. 조직의 일이 싫어서 나가는 건 아니니, 앞으로도 이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사회에서 필요한 일의 의미를 갖고 있으니까. 과연, 나는 여기서 어떤 일을 하였고, 내게 어떻게 남았을까는 아마도 다음 일을 하면서 분명히 보일 것 같다. 적어도 3년은 다녀야지 하고 다짐했던 때도 있었지만, 2년 10개월에 마침표를 찍는다. 나무에 작게 튀어나온 잔가지 같은 후회는 있지만 개운한 마음이 더 크다. 열심히 일했고, 즐겁게 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지금까지 나는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을 못하지만 새로이 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 내일 하루 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 그리고 공부 근육도 뇌와 엉덩이(!)에 붙여놓아야겠다. 다음 달부터는 알바와 공부 일기를 적어봐야지.
아무튼, 나여! 참으로 수고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