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에 비친 영화와 문학
누구보다 까칠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남자 이야기는 오래된 클리셰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통하는 이유는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의 개연성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양한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 이야기 중에서도 최고봉은 영화 '오베라는 남자'가 아닐까.
2016년 개봉한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스웨덴 영화답게 사브, 볼보 이야기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오베’는 일평생 사브만 타는데 그의 절친 ‘루네’가 볼보를 탄다는 이유로 점점 멀어진다. 루네가 신형 볼보를 사면 오베는 사브의 신형 9000 CS를 사는 식이다. 그리고 한참 지나 사브 93을 사고 난 뒤에 다시 친구가 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오베. 루네는 화해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새 차를 소개하는데 BMW다. “언제까지 볼보만 탈 수 없잖아…” 루네의 변명에 오베는 아무 대꾸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다.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사실 오베가 사브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 어머니를 일찍 여읜 오베는 아버지가 모는 사브 92 옆좌석에 앉아 “사브만큼 좋은 차는 절대 없어”라는 아버지 말을 금과옥조처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소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곧 그 뒤를 따라가겠다고 다짐한 오베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때마다 성가신 이웃의 방해를 받는다. 그 첫 번째 방해꾼으로 등장하는 차가 바로 현대 i30 왜건이다. 이웃집으로 이사 온 가족이 i30 왜건 뒤꽁무니에 트레일러에 매달고 나타난 것. 후진을 잘 못해 오베의 우체통을 부서뜨린다. 역정을 내면서도 오베는 운전이 서툰 차 주인 대신 직접 후진 주차를 해주기도 한다.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오베. 이번의 방해꾼은 임신 중인 이웃집 이란인 파르바네. 그녀는 남편이 사고를 당했다며 병원까지 태워달라고 한다. 운전면허가 없는 파르바네는 오베에게 운전을 가르쳐달라 하고. 처음엔 거절하지만 결국 운전을 가르쳐주고 있는 오베. 어느 날은 파르바네와 함께 길고양이를 구출하고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는 오베. 아내 소냐의 묘지를 찾은 오베는 "죽기가 살기보다 힘들어. 이젠 고양이까지 빌붙었어"라고 투덜댄다. 겉으로는 퉁명하고, 제멋대로인 이웃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오베이지만 마음은 그렇게 따뜻한 남자인 것이다.
영화는 자동차 에피소드만 따라가도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뭉클해진다. 어쩌면 오베에게 인생은 누구보다 잔인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옆자리에 이웃집 아이를 태우고 운전하면서 “이런 게 사람 사는 거지”라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가 자신을 옆에 태우고 그와 똑같은 말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오베가 아내 다음으로 사랑했던 사브 오토모빌은 볼보와 함께 스웨덴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로 1945년 설립되었다. 모회사인 사브 ab가 항공우주 및 방위회사여서 자동차에 항공기 기술이 많이 반영되었다. 어린 오베를 태우고 다닌 아버지의 사브 92는 사브가 첫 번째 생산한 모델이다. 국내 시장에도 사브 900, 9000 모델 등이 판매되어 나름 지지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사브는 2000년대 들어 GM 자회사로 편입되었다가 나중에 인수자를 찾지 못해(중국 회사의 인수 제안을 기술 유출 우려에 대한 GM의 반대로) 파산하게 되고, 결국 사라진 브랜드가 되었다. 오베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아마 굳이 자살 시도를 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볼보는 현재 중국 지리 산하에서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아이러니는 인생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