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노트
인도네시아 발리는 신들의 섬이라고 불린다. 2억8000만 명이 넘는 인도네시아 인구의 90% 가까이가 무슬림이지만 400만 명 남짓 발리 사람 대부분은 토착 신앙과 혼합된 힌두교를 믿는다. 해발 3142m 활화산 아궁산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으로 신성시된다. 섬 곳곳에서 각종 신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꽃과 음식을 신들에게 바친다. 일상 속에서 신과 함께 사는 것이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극장국가, 느가라』라는 책에서 19세기 발리의 독특한 정치 문화적 현상을 해석한다. ‘느가라’(Negara)는 작은 도시라는 의미로 극장국가라는 틀을 통해 이루어지는 발리의 상징적 의식, 의례 행위를 밝힌다. 발리인들에게 우주(신)와 인간은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의 삶과 문화는 그 관계를 재현하는 수단이자 목표가 된다. 신의 의지를 알면 인간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되고, 인간 존재 또한 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의식, 의례의 대상은 신뿐만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것까지 포함된다. 그중 ‘금속의 날’이란 게 있다. 인간 생활의 향상을 가져온 금속의 고마움을 기리는 날이다. 대상은 생활 주변에서 금속으로 만든 모든 것이다. 부엌에 있는 칼도 예외는 아니다. ‘칼’에게 예를 올리며 “칼은 벨 수 있으나 베일 수도 있으니 제가 조심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이로운 것은 해로울 수도 있다. ‘금속의 날’은 그 양면을 들여다보고 경계하는 날이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에도 꽃과 음식 바구니를 올려놓고 예를 올린다. 이들 운송 수단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반대로 사고 위험성도 안고 있다. 의식은, 당연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잊고 있던 것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런 의미를 알고 보면 모든 금속에게 예를 올리는 행위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새 차를 사면 고사를 지내는 의식이 있다. 예전에는 아파트 주차장 한쪽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다. 머플러에 마른 북어를 매달고 다니는 차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자동차 고사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화된 액막이의 한 형태로서 이루어진다. 제물로 북어를 쓰는 이유는, 북어가 항상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잘 살펴 사고를 막아달라는 염원이다. 타이어 바퀴에 술을 붓기도 한다. 자동차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일수록 제물의 규모나 비는 마음도 커진다.
액운을 막아달라고 비는 의식은 우주와 자연을 두려워하고 경외감을 갖는 것에서 비롯된다. 인류의 오랜 문화 양식이며 이를 통해 경각심을 깨우는 효과도 있다. 요즈음 도로 위 풍경이 거칠고 예의 없어지는 것이 이러한 보편적인 양식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기도 하지만 발리의 ‘금속의 날’ 의식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우리에게 자동차 고사가 새 차를 샀을 때 단 한 번 이루어진다면, 발리에서는 매년 그것을 반복하며 그 마음을 이어간다는 얘기다. 금속이라는 그 대상도 광범위하다. 예를 올린다는 것은 그 대상을 소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그 주체인 나를 돌아보게 한다.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이 있다면 바로 잡는 것.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만큼 사회가 건강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놓치고 가는 우리는 과연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