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통 전 보령 해저터널에 가서
반팔에서 패딩으로.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 한 요사이 분위기를 표현한 말이다. 나도 반팔을 입다가 재채기를 하면서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계절은 때로 변덕을 부리지만 그 순환의 원리에 크게 어긋난 적은 없다. 이상하다, 이상기온이다 하지만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자연의 힘이다. 그 자연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야 할 인간의 몫이다.
우연한 기회로 보령 해저터널에 다녀왔다. 다음 달 개통을 앞두고 사전 탐사 성격의 방문. 아직 일반의 출입이 제한되는 탓에 한 발 앞서 가본다는 설렘이 있었다. 현장에 가보니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라 어수선했다. 해저터널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흥은 없었다. 단지 터널을 달리는 차내 내비게이션만이 지금 위치가 지도에 없는 바다 한가운데라고 알려줄 뿐이었다. 터널 내부 자욱한 먼지 속에서 사다리차를 타고 조명이며 각종 시설물을 설치하는 작업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령 해저터널은 육지와 닿는 구간 말고 완전 바다 밑으로는 7km 남짓 거리. 전형적인 발파 굴착 공법으로 공사를 시작한 지 11년 만에 완공되었다.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갔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양쪽에서 굴착해 중간 지점에서 만나 관통하도록 정확히 중심선을 맞췄다니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그런 과정에서 인명사고가 없었다는 게 무엇보다 다행이다.
정식 개통되어 말끔한 해저터널을 차를 타고 씽 지나 갈 때면 발파에서부터 공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잊혀질 것이다. 전국의 무수한 터널과 교량을 지나면서 해보지 못했던 생각이다.
보령 해저터널은 해수면으로부터 80m 아래에 위치한다. 바다 밑에 땅이 있고 그 땅을 관통해 터널을 만드는 것. 이게 자연에 부합하는 것일지는 내 판단 밖의 영역이다. 문득 통영 해저터널이 떠올랐다. 통영 시가지와 미륵도 사이를 연결하는 그리 길지 않은 거리로 만조 기준으로 해저 13m에 자리한다. 일제가 만든 것인데 지금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시인 백석이 ‘자다가도 바다로 나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던 통영 풍경이 그립다.
보령 대천항 부근에서 원산도까지 해저터널을 뚫고 가닿는 원산도에서 태안 안면도까지 대교를 놓았다. 지도에서 보면 가운데 섬 하나를 놓고 육지에서 육지로 도로를 이은 것이다. 이 길이 바로 국도 77호선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부산에서 출발해 동해 해안도로를 따라 지금은 고성까지 이어지는 길이 국도 7호선이다. 국도 77호선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출발해 남해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다가 다시 서해 바닷길을 타고 북상한다. 그 끝이 이곳 서울에서도 가까운 파주다. 바다로 끊어진 길을 마침내 이은 것이 이번 해저터널의 또 다른 의미라고 한다.
지금은 풍경이 퇴색했지만 마음속 길 하나는 언제든 시푸른 바다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국도 7호선이다. 그 7이 두 개가 겹쳐서일까, 남해와 서해를 잇는 77호선은 누가 그었는지 흥미롭다. 이제 그 길을 온전히 달려봐야지 하는 욕심이 생긴다.
*11월호 에디터스 노트 중에서. 보령 해저터널은 12월 1일 정식 개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