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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식 Dec 21. 2021

드라이브 마이 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차창에 비친 영화와 문학

    


우연히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영화 포스터를 봤다. 차에 기대어 표정 없이 서 있는 한 남자와 운전석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한 여자. 그 뒤로 잔잔한 바다와 나지막한 산, 구름, 하늘이 펼쳐지는 장면이 권태로워 보인다. 이 포스터에 눈길이 간 건 먼저 빨간색 사브였고, 그다음 제목,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이라는 문구였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의 이 소설,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나서 책장을 뒤져보니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이다.      



“지금까지 여자가 운전하는 차를 적잖이 타보았지만, 가후쿠가 보기에 여자들의 운전습관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난폭하거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중하거나. 후자가 전자보다 –우리는 그 점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훨씬 많았다. 일반론을 말하자면, 여자 운전자는 남자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직업이 배우인 가후쿠는 음주운전 사고로 면허가 정지되어 갑자기 전속 운전기사가 필요해졌다. 단골 카센터 사장이 20대의 젊은 여성 와타리를 추천한다. “약간 삐딱하지만 운전실력 하나는 확실하다”는 이유로. 수동 기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녀는 홋카이도 산속에서 운전을 배웠다.       

 


카세트테이프, 8트랙이란 단어가 나오면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그리고 음악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은 역시 하루키답다. 재즈 마니아로 알려진 하루키는 한때 직접 피터-캣이라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 음악적 장치가 많은 배경이다. 사실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제목도 비틀스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국내에서 하루키의 명성을 높인 것은  ‘상실의 시대’인데 그 원제도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비틀스 노래 제목이다. 이쯤 되면 하루키는 비틀스에 어느 정도 빚을 지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하루키는 카 마니아이기도 했을까. 소설에서 차와 관련된 묘사가 비교적 자세하게 나온다. 아무튼 하루키 세대 남자들은 특히 자동차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많았다. <이니셜 D>라는 자동차 만화 시리즈는 일본에서만 누적 5천 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극장판 영화와 게임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기후쿠와 와타리의 동행이 주요 흐름이지만 내용은 가후쿠가 죽은 아내를 기억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기후쿠와 아내는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둘 사이는 깊은 균열이 생긴다. 상처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할 즈음, 하루키는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지 불과 몇 주일 만이었다.    



“사브를 새차로 구입했을 때 아내는 아직 살아있었다. 노란 보디컬러는 그녀가 고른 것이었다."


"그는 이 차에 개인적인 애착을 갖고 있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차 지붕을 열고 운전하는 게 좋았다. 겨울에는 두툼한 코트에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여름에는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핸들을 잡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차는 노란색 사브 900. 그것도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빨간색 쿠페로 나온다. 영화가 소설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컨버터블이 여러 가지 심리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쓰인다. 술은 못 마시지만 담배를 많이 태우는 와타리를 위해서도.     

           

차의 형식은 다르지만 영화는 소설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라간다.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를 묻는다.  영화 속 인물들의 표정처럼 그 질문은 공허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왜 컨버터블을 쓰지 않은 것이지를 계속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전 원작 소설을 읽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어쨌든. 영화는 74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이 극찬했다는  ‘아사코’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작품으로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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