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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 중독자 Jun 03. 2020

02. 휴직, 시작하니 즐겁지만은 않다?

백수는 아닌데 백수가 된 것 같은 반백수의 백수 간접 체험

휴직,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1년간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해외 출장에서 복귀한 지 이틀 만에 짐 정리를 모두 마치고 3월 15일 금요일 출근을 마지막으로 회사와는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출장에서의 피로를 회복하느라 전과 다름없는 쉬는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함께 나서던 출근길을 이제 남편 혼자 나선다. 조금은 어색하게 출근길을 배웅하는 와이프가 되었다. 그렇게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휴직하면 주중에 늦잠도 푹 잘 거야', '휴직하면 미드 정주행 하면서 밤샐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침대에 다시 누워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잠들거나, 심심하면 유튜브에서 정주행 하기 좋은 미드 추천 영상을 보고 넷플릭스로 바로 넘어가는 오전을 보낼 줄 알았다. 내가 그리워하던 대학시절의 철없던 그 방학 시절처럼, 허송세월을 보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 꿈꿨다. 그러나, 막상 휴직하고 나니 그렇게 쉴 수만은 없었다. 이 1년이란 방학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마냥 놀기만을 좋아하는 용감무쌍함은 9년이라는 사회생활 기간 동안 나도 모르게 점차 벗겨져 사라지고 있었다. 대학생 티를 벗기 시작하며 점차 내가 버는 월급 안에서 소비를 하고, 내게 주어진 휴일 동안에 내 주중을 보상할 수 있는 일들을 시간을 쪼개어가며 차곡차곡 해오던 지난 시간들이 이젠 습관이 되어 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휴직한 내게는 휴일이란 개념도 무의미하게 되었다. 분명,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무한정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함부로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왜? 나에겐 이제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월급이 없다. 백수가 된 것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했다. 결혼 전이기 때문에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었지만, 공짜로 얹혀 살진 않겠다는 자존심에 얼마 되지 않는 용돈 겸 생활비로 쓰시라고 꼬박꼬박 월세 개념으로 드리고 살았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에도 맞벌이 부부의 삶을 쭉 살아온 나였다. 나를 위한 소비가 우리를 위한 소비가 되기는 하였지만, 구매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할 때에는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당당함이 있었다. 왜? 나도 열심히 일 하면서 돈을 버니까. 그렇게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내게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과장해서 말하면 내 자아가 당당할 수 있게 해주는 지지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지지대가 이제 없다. 재테크랑은 담을 쌓고 순수 100% 월급쟁이로만 살아온 나다. 월세나, 이자나, 그런 부가적인 수입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다. 


초조한 마음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내 계좌를 부부의 공동 계좌처럼 사용하고도 있었기 때문에, 순수 내 돈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지만 4천만 원 정도의 잔고가 남아있다. 이 중에서 내가 마음껏 사용해도 되는 돈은 어느 정도일까? 1년, 12개월 동안 나의 굳건한 자아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나는 어느 정도의 소비가 가능한가? 삼시세끼 밥 챙겨주던 회사에서 제 발로 나왔으니, 이제는 밥도 내가 챙겨 먹어야 한다. 식비는 어느 정도 들까? 매일 쓰는 화장품은 이제 가격이 저렴한 걸로 바꿔야겠지. 옷은 되도록이면 사지 말아야겠다. 처녀시절 입었던 옷들을 다시 입을 수 있으려면 살부터 빼야겠네. 그럼 운동을 해야 하는데, 헬스장은 얼마지? PT는 받을 수 있을까? 예전처럼 이태원이나 한남동의 핫플레이스에서 친구들이랑 맘껏 와인 마실 수 있을까? 그럼 앞으로 어디서 만나야 하지, 아니 친구들을 바깥에서 만나도 될까?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시작한 휴직인데, 생활비 걱정을 하고 있는 백수가 된 것과 다름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모아둔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내 몸에 배어있는 생활습관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다니. 그렇게 아끼며 살았던 것도 아니면서! 하고 싶은 걸 생각하기도 전에 돈에 얽매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내 은행 잔고를 보면서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앞으로 1년 동안 버틸 수 있을까?  


이렇게 나란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는지를 다시 증명하게 된다. 난 회사에서 주는 월급으로 나 자신을 지탱해오던 사람이었다. 용감하게 제 발로 걸어 나와보니 난 벌거숭이였다. 내가 속했던 대기업은 꽤나 큰 우산으로 나를 세상의 빗물로부터 보호해주고 있었다. 직장 이름과 직함에서 벗어나니 나를 나타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직장인 서지은. 그 외에 나에겐 명성도 없고 디자이너, 셰프, 건축가 등 내 이름 앞에 붙일만한 당당한 전문성도 없었다. 생활비 걱정을 하던 내 뒤통수를 누군가가 가격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현재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넌 지금 아무것도 아냐! 백지상태라고! 


절망하고 있던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참담한 심정으로 살기 위해 한 휴직이 아니다. 난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을 갖기 위해 휴직을 한 것이다. 백지인 상태의 나를 발견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선택한 시간이다. 이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반려자도 있다. 좌절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에 대한 배려가 아니리라. 이 시간을 값지게 보내려면, 지금 내가 발견한 나의 백지상태부터 정리해야겠다. 이것이 나의 휴직 중 이뤄내야 할 첫 번째이자 마지막 과제 이리라.  


 내가 휴직해서 찾아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우선순위. 그것은 바로 내 이름 앞을 정의하는 무언가를 찾는 일이다. 


ㅇㅇㅇㅇ 서지은

______  서지은

(            ) 서지은


그래, 나 자신을 정의해보자. 그러려면, 우선 이 생활비 걱정부터 하지 말아야겠다. 신랑을 출근시키고 멍 때리며 휴직한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린 결론을 조심스럽게 신랑에게 전했다.


'나 천만 원 정도는 맘껏 써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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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라면, 

무엇보다 휴직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점검해보시는 걸 권장합니다.

다른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우선 아래의 내용이 충족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1. 휴직 자금으로 최소 2-3천만 원 정도는 확보할 것

- 해외여행을 제외하고서, 국내 여행 및 하고 싶은 취미를 마음껏 할 수 있으려면 개인에 따른 편차는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2-3천만 원 정도는 통장에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처음엔 천만 원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택도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2-3천만 원은 빈번한 외식과 같은 줄일 수 있는 소비는 줄이되, 회사 다니는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를 줄이라고 해서 직장생활을 하며 즐겼던 것들을 모두 포기하는 것은 자칫 자괴감에 빠질 수 있으니 자기 품위 유지비는 소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해외여행이 더해진다면, 그 횟수만큼의 돈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여 준비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쉬기 위해 휴직했는데, 돈이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 물론 이 이야기는 맞벌이 부부, 혹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외벌이로 살고 있는 상황이라면, 가족 구성원들의 평균 생활비 x 12개월을 합산해야 할 것입니다. 


2. 가족들에게 휴직 동의를 먼저 받을 것

-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휴직에 대한 동의를 먼저 얻어야 합니다. 휴직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그 영향을 나에게만 오지 않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배우자 혹은 가족들의 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 엄마는 당신을 다시 고등학생, 대학생 때처럼 뒷바라지하고 싶지 않아 할 것입니다. 휴직을 하고 난 후에도 밥은 내가 해 먹고, 내 방은 내가 치우고, 가끔은 가족들의 식사 및 집안 청소도 도맡아 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맞벌이 부부였다면, 2인 3각을 하고 있던 경제 공동체의 배우자가 이제 혼자 달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가정 내 재정상황을 꼼꼼히 점검한 이후에 조심스럽게 배우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나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는 배우자의 자세 또한 필요합니다. 자발적인 휴직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배우자로부터 백수 취급을 받게 되거나 경제적인 압박을 당하게 된다면, 휴직 생활은 물론이고 부부 생활도 유지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3.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가지겠다는 각오

- 휴직 기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분에게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냥 마냥 잠자고 게임하고 영화 보고 싶은 분들은 마음대로 지내시면 됩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분이라면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가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더 이상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자칫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규율과 강제성이 있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가 있습니다. 아주 빠듯한 생활 패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이불 정리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차려먹고, 일정한 시간에 잠들겠다는 다짐은 필요합니다. 그 사이에 하고 싶은 일이야 차곡차곡 서두르지 않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하루 패턴이 일정하지 않다면 '언제 이걸 하지'라는 고민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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