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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 중독자 Jun 03. 2020

03.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기

휴직 전, 2019년 1월 경. 몇 년 만에 고3 시절 친구에게 연락해서 만나게 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무슨 용기에서인지 내 맘 속 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평생 일하고 싶지만은 않다, 새로운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 등등. 아마도 이 친구가 내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회사 다니는 친구였다면, 돌아오는 말은 '그렇게 휴직할 수도 있고 좋은 회사 다니네~ 그래, 휴직은 해봐~ 그래도 돌아가게 될 거야~'라는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친구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내 친구들의 평균점에서 벗어난 친구였다. 어떻게 보면 팔자 좋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충무로에 위치한 아버지의 사업체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본업(?) 외에도 여러 일에 도전해보는 걸 주저하지 않는 친구였다. 그전까지는 고등학교 학창 시절 이야기, 연애 이야기에만 머물렀던 우리의 대화 주제가 나의 하소연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다른 차원에 들어온 것처럼 급변하였다. 


"그럼 너, 나랑 충무로에서 뭐 해보지 않을래?"


고3 때 친구이니 알고 지낸지는 족히 15년이 넘었는데, 난 이 친구의 아버님이 무슨 사업을 하시는지, 어느 규모였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이 친구의 아버지는 충무로에 건물을 2개나 보유하고 계셨고, 그중 하나는 창고로 쓰던 건물인데 현재는 비워져 있는 상태라고 했다. 나는 이 친구가 충무로라는 지역에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에 놀랐던 것보다, 말로만 듣던 서울에 건물을 보유한 건물주의 딸이라는 사실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15년이나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의 사이니 가깝지 않다고 할 수 없는데, 난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구나란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편견 속에 있던 '건물주의 자녀'라는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간 충격에 빠져있는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열정과 '질러 보자'라는 자신감에 더더욱 놀라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열정에 나는 갈증 난 마라톤 선수가 단물이라도 축인 듯 다시금 심장이 뛰고 달리고 싶어 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나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올 것 같은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주저하지 않고, 곧장 충무로의 그 창고를 직접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삼성동에서 충무로까지, 지하철로도 갈 수 있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당장이라도 가서 그곳을 보고 싶었다. 택시를 타고 20분쯤 이동하니 그 친구가 일하고 있는 본 건물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뒷골목으로 이어진 끝에 창고가 있다며 함께 걸어갔다. 갑작스러운 단비에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 창고의 상태는 생각보다 열악했다. 설명만 들었을 때는 브루클린이나 베를린의 창고 건물을 개조한 클럽이나 카페, 플리마켓 이벤트 같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활용하기에는 솔직히 창고 건물이 썩 멋진 외관은 아니었다. 진입하는 뒷골목도 필동 메인 거리와 같은 고스넉한 분위기가 아닌 주택가 사이에 구비구비 진 경사로였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이 풍경(?)을 지나서 이 창고에 오는 길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굽이진 거리는 얼마든지 멋진 곳을 보기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다. 회현동에 생긴 '피크닉'이라는 건물도 진입로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잖아? 다시 나의 긍정 에너지를 발산시키며 창고를 둘러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찬찬히 다시 둘러봐도, 이 창고를 활용하기에는 당장의 이벤트 준비보다 보수 공사 준비 기간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메리트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 한복판에서 공짜로 이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데?


겉과 속이 투명한지라 내 표정에서 실망한 모습을 그 친구는 바로 포착했다. 그 친구는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자 라고 하면서,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하며 본 건물로 나를 데려갔다. 5층짜리 건물에 1, 2층은 촬영 스튜디오로 쓸 수 있는 공간이 100평 정도는 되고, 옥상에서는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목이 좋은 곳이었다. 광고 촬영이나 드라마 촬영 등에 활용되는 스튜디오로 활용되고, 그 운영에 관련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건물 앞에 도로는 자기 아버지가 중구청과 오랜 설전 끝에 깨끗하게 정비되어 남산을 보며 산책하기에도 좋은 길이 되었다고 했다. 서울의 북촌, 서촌 등 옛 서울 토박이 마을에 사람들의 발길이 오고 있는 것처럼, 이 친구는 이 지역이 남촌으로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산책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골목 입구는 대한극장이 위치하고 있는 영화 거리의 시작점이고, 그 골목에 들어서면 오래된 인쇄소들이 즐비해서 지금도 분주하게 오토바이들이 인쇄물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골목 사이사이에는 그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식당들의 간판들. 그 친구의 얘기를 듣고 돌아보니, 새로 가지런히 난 도보 사이사이로 이 마을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그 동네에 대한 이 친구의 강렬한 애착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 내가 휴직하면 이 곳에서 뭐라도 한번 해보자."


이 날, 그 친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내 마음속 잔잔한 호숫가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회사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던 동안에도, 뜨문뜨문 그곳에서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보니 덜그럭 거리던 내 엔진에 불스원샷이라도 들어간 느낌이었다. 휴직을 해도 바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음에 안도할 수 있었고,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나름 그 바닥에서 경험 있는 친구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든든했다.


본격적으로 휴직이 시작된 이후, 그 친구와 이벤트 콘셉트를 잡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인스타 계정을 홍보하는 등 약 2달 간의 준비를 통해 나름 소소하게 이벤트 하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만난 분들과의 인연 또한 감사하고, 그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그 전시회는 내 인생의 디딤돌과 같은 경험이 되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가능하게 해 준 용기의 초석이 되었다. 그렇게 거대한 초석으로 남은 그 경험의 시작이 이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을 하고 만나서 나눈 그 대화에서부터였다. 이야기 서재 가장 구석에 있었던 내 인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용기 내어 꺼내어 보았고, 운이 좋게도 그걸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도 꺼내어주는 친구를 만났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각자의 인생 서재에 새로운 경험 한 권씩 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빛나는 자리, 앞으로 쌓아갈 경험들의 밑바탕이 되는 곳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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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을 통해 얻은 보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단순히 제게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시계열 순으로 정리하는 것은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의 글은 어느 정도 시계열 순이긴 했지만, 앞으로의 글들은 휴직 기간 동안에 제 인생에 영향을 준 인물들을 위주로 서술할까 합니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일 겁니다. 츠타야의 창업가 마츠다 무네아키 씨가 츠타야를 책/비디오 대여점으로 정의하지 않고, Life Convenience Store로 명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소설과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살아간 이야기를 참고로 하여 내 인생의 방향성을 잡아보는 것. 어떻게 보면 한정된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좌우되는 인생의 순간들을 결정하는 데 참고로 하기에 가장 좋은 자료가 책과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 속 인생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경우도 많고, 내용에 따라선 감상이 끝난 후 금방 잊힐 수도 있죠. 역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실의 세계에서 나와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일 겁니다. 물론 효과적인만큼 비효율적이기도 하지만요. 


앞으로의 이야기는 제가 직접 만난 사람들(그중에서는 직접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도 있고 관찰만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혹은 자신의 삶을 에세이로 담은 책을 읽은 것에 대한 감상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분들로부터 받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영감을 토대로 마음먹은 일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면서 깨달은 것들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펼치기 전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 공유해보도록 할까요?


1. 자주 연락 안 하던 친구에게 연락해보기

어쩌면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이죠? 하지만, 바쁜 직장 생활에 휩쓸려 살다 보면 연락하고 싶어도 못하고 못 만나던 친구들이 한 두 명쯤은 있을 겁니다. 그중에는 '쟤는 어떻게 저렇게 살고 있지?' 싶은 친구도 있을 겁니다.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인스타나 페이스북으로만 눈팅만 하고 있었다면 용기 내어 메시지를 한번 보내봐요. 아무리 팔로워가 많아도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있을 현대인들에게는 그들의 Like보다 옛 친구로부터의 메시지 한 줄이 더욱 값질 것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2. 문화 소모임에 가입하기

단순 친목도모의 소모임은 연령 제한이나, 싱글들만을 받는 등 그 목적성이 확실하기 때문에 가입조차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이 친목도모보다도 더 숭고하다면, 문화적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소모임에 가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요즘에는 Muunto, 트레바리, 남의집 등 참여할 수 있는 살롱 문화소들이 많으니까요. 그 모임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과 잘 맞을 수는 없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면 투자하는 돈과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것입니다.


3. 여행지에서 낯선이 와 교류하기

매일 가는 카페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누게 되는 건 우리나라에서 매우 어색한 광경일 것입니다. (아니, 요즘 20대 초반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요?) 하지만, 여행지에 있는 카페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그것보단 조금 더 쉬울 수도 있을 거예요. 그게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라면 더 쉬울 수도 있고요. 혹은 그 여행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 가이드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인연이란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1회 성일 수도 계속 지속될 수도 있으니까요. 


4.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쓴 자서전 읽기

다른 세상이란 것을 정의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직업일 것입니다. 나와 다른 직업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을 쓰면서 그 업에 대한 간접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시 고3 시절로 돌아가면 어떤 전공을 선택했을 것인가 상상해볼 수도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 지금에라도 그 직업을 갖기 위해 새로이 공부를 할 수도 있죠. 그 업계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이 '직업'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죠. 삶의 방식에서도 많은 차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직업은 직업일 뿐이고, 내 하루 시간의 가치를 '직업'을 통한 경제활동이 아닌 다른 '일'에 두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다양한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도 서점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죠. 스펙만을 중시하는 시대를 반영하여 자기 계발서만으로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가 채워진 모습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주옥같은 많은 책들 중 제게 좋은 영감을 준 책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간략히 4가지로 정리했지만, 이 중 하나라도 해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우선 질러보고자 하는 용기와 바로 스마트폰에서 검색해보고자 하는 실천력일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할 수 있으니, 두려움보다는 내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작은 움직임을 실천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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