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자유를 누리다.
혼자 일 하고 있습니다. 강남대로와 롯데타워가 보이는 큰 창에 책상 하나 있는, 아주 멋들어진 사무실에서 혼자 일 하고 있습니다. 혼자 무슨 일을 하냐 물으신다면, 지금은 그냥 인생 공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인생의 쓴맛을 맛보고 어떻게 하면 잘 재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 앞서 성공한 사람들의 정신 승리 법 등을 익히며 살고 있죠. 조금은 생산성 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해서, 이렇게 글도 쓰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라는 책도 읽기도 합니다. 틈틈이 주식 공부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원리(?)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노라면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갑니다. 어쩌면 2019년에 자기 계발 휴직하는 동안 이렇게 보냈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아무튼 아깝지 않게 농밀한 시간을 보내려고 나름 혼자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혼자 일(?)하는 것에 대한 수다를 떨어보고자 해요. 저처럼 재기를 위해 혼자 일하는 분들도 있을 거고, 프리랜서로 크몽에서 일하는 분들, 글 쓰는 분들, 다양한 형태로 혼자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1인 가구뿐 아니라, 1인 기업도 많아지고 있죠. 이렇게 혼자 일할 때는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아쉬운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선 혼자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방귀를 맘껏 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처럼 자기만의 공간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이긴 하지만 이 자유가 주는 기쁨이 크더라고요. 큰 조직에서 일하다가 1인으로 근무하게 되면 이런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시원하게 눈치 보지 않고 뿡 한 다음에, 어머!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라는 생각이 들게 될 거예요.
여러분이 기대한 장점이 나오질 않아서 의외일까요? 그 외의 장점은 장점이 될 수 있는 동시에 단점도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좋아 자율적인 것이지, 흐트러질 수 있는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더 긴장시켜야 하는 상태를 뜻하기도 합니다. 어느 영화인지 잘 생각나질 않는데, 악당 중에서 '인간은 통제하에 있을 때 자유롭다'라고 하는 궤변같이 들리는 소리를 했는데,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뭘 해야 할지 사회가 정해주는 대로 살면, 그것만 하면 돼서 오히려 다른 걸 생각할 필요가 없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로 해석되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자기가 자기 시간을 관리하고 해야 할 일을 정하는 것은 자유로움과 동시에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해야 하기 때문에 괴로운 일입니다. 물론 사람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혼자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 같습니다.
혼자 일하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은 뭐니 뭐니 해도 '외로움'입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자주 보던 글귀 중 하나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하죠.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도 그 공감대가 많아졌겠지만, 저는 혼자 일하는 요즘에 저 글귀가 유독 피부에 와닿습니다. 외로워요. 자료를 만들거나 분석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면 혼자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지기는 하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점심시간과 '이젠 뭐하지'라는 시간이 생길 때면, 수다 떨고 싶단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내 생각을 나누고 싶고, 다른 의견도 듣고 싶고, 다른 것보다 밥 먹으러 갈 때 누가 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간절해져요. 혼자 밥 먹는 것은 일본 유학 시절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혼밥이 두렵지는 않아요. 혼밥이 편할 때도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라고 하면 조금은 서글퍼집니다.
이 단점은 너무나도 커요. 독립적인 성향을 타고났다고 자부하는 저 조차도 이 외로움이 사무치게 큽니다. 다정한 신랑이 점심시간 때마다 전화해주며 30분이고 1시간이고 통화해주는 덕분에 그 외로움이 달래질 때가 많긴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겠죠. 그래서 이렇게 혼자 일할 때 느끼는 외로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주변에 일하는 1인 기업을 찾는 것도 방법이겠죠. 하지만, 사회생활 몇 년 해본 사람들에게는 이제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는 것부터가 장벽입니다. 쉽지 않아요. 서로를 알아가는 그 탐색 과정도 우리에겐 비용이고 매우 수고스러운 일이죠. 혹은 제가 아직 덜 외로울 수도 있고요. 다행히 저는 수다 떨 수 있는 상대를 매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바로 책입니다.
'어머나, 이런 고독하고 쓸쓸한 사람 같으니' 라며 연민의 감정을 느끼셨나요? 하지만 책이란 친구는 여러모로 다정하고 든든합니다. 우선 저 대신 수다를 끊임없이 떨어줍니다. 제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이제 그만해도 돼'라고 할 때까지 끊임없이 할 수 있죠. 일방적이지 않냐고요? 저 혼자 또 받아칩니다. '오, 그런 게 있어?' 혹은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절한 책이라면, 그런 생각에 대해 반박해줄 때도 있고, 공감해줄 때도 있고 합니다. 제가 어떤 걸 더 했으면 좋겠다고 할 일을 주기도 하고,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주기도 하는 친구죠. 이 친구랑 한 동안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그 시간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죠. 여러모로 든든한 친구입니다.
이렇게 내뱉고 나니 자기 연민이 더 커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 하는 이 시간을 즐기려 합니다. 길지는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인생의 결정을 내리는 시기가 오겠죠. 그래야만 하고, 그 시간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배부른 상태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던 2019년과는 다르게 상처와 근심 가득한 상태로 혼자 보내는 이 시간이 훨씬 밀도 있는 시간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