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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원 Sep 10. 2019

유학자의 선택

아직도 살아있는 공자와 맹자들이라면

중국 고대 전설시대의 임금인 순은 아버지를 지극하게 받들어 모신 것으로 유명한 효의 아이콘이다. 텍스트에 기록된 순과 그의 아버지 고수의 일화들은, 전설이겠지만, 중국에서 그리고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효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순의 효성이 지극했던 것과는 반대로, 고수는 순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아버지였다. 새장가를 가서 아들을 따로 두고 그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내면서 순을 괄시하였고, 고수의 새 가족들은 모의하여 순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 맹자의 제자들은 아버지가 그렇게 뚜렷하게 죽을 것을 바라는데, 아버지의 뜻을 받들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 것은 불효가 아닐까 하고 의문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러니 순의 효도는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자신의 지극한 마음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이해할 문제가 아니다. 순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즉 효성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against all odds!",  하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순이 제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 그리고 고요가 재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에, 만약 아버지인 고수가 살인을 하였다면 순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도응이란 제자가 스승인 맹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고요는 법을 공정하고 엄정하집행하기로 유명한 정의로운 법질서의 아이콘으로, 순은 통치하는 동안 내내 이 현명한 재상과 함께 하였다. 도응의 질문은 자식으로서 가져야 할 아버지에 대한 신의와 사회 정의를 수호해야 할 공적인 의무가 갈등을 빚는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인자인 하지만 아버지인 아버지와 당연히 아버지를 잡아들여 처벌하려 할, 제왕이라도 그가 가는  정의로운 길을 막지 말아야 할, 엄정한 고요 사이에서,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대중의 눈 앞에 훤히 내 놓인 처지에서, 천명을 받들어 도덕이 완성되어 있는 성왕 순의 솔루션은 무엇일까?


맹자는 이렇게 추측하였다.  


"순은 천자의 자리를 내던지기를 헌신짝 내다 버리듯 여길 것이다. 남몰래 아버지를 둘러업고 도망가서 바닷가 같은 곳에 가서 살 것이다. 삶이 다하도록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태도로, 기꺼이 천자의 자리를 아예 잊어버릴 것이다."


순에게 주어진 천자의 자리는 순의 높은 덕을 칭송하며 자신의 덕성을 부족하다고 여긴 또 다른 성왕 요가 양보한 자리였다. 요가 스스로 포기한 자리를 넘겨받은 순은 성왕의 정치를 베풀어야 하는 온천하의 기대를 안고 그 자리에 취임한 것이며 그러한 의무감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요의 기대도 온천하 대중의 기대도 못난 아버지를 돌보아야 하는 자식의 의무를 앞서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맹자의 판단이다. 제자 도응과 대화의 주제는 고수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가정이라 사실은 아니므로, 맹자가 말한 순의 솔루션은 온전히 맹자의 판단이지만 마땅히 순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 오늘의 공맹의 제자들도 수긍이 간다.     


그것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이다. 수신하고 제가 하여 치국하고 평천하 하는 것을 소망이자 의무로 삼고, 그 순서를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유교의 학자들은 그러므로 자신의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직분을 사회적 직분에 비해 우선시한다. 자기 아버지가 죄를 지어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자신의 공직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마찬가지의 관념을 가진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소신을 펼 방법이 있겠는가? 맹자뿐만 아니라 후대의 모든 공자의 제자들은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이렇게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기소되었는데 며칠도 쉬지 않고 다시 텔레비전에 복귀하여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계속하는 어느 예능인을 보고 우리 사회가 유교적 관념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을 하였다. 동시에 그 광경이 나는 참 불편하였다.





공자에게 있어서 법이란 죄를 깨닫는 장치가 아니라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포장하는 자신의 죄를 교묘히 피하는 장치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공자는 법을 사회의 규칙으로 삼아 엄한 형벌로 사회를 운영할 경우에,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교묘히 죄가 아닌 것으로 주장하여 형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사회는 파렴치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반대로 규칙과 형벌로 질서를 세우지 않고 인간의 가치를 들어 그것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면 사람들이 형벌을 받지 않아도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널리 부끄러움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갖는 것이 인간성의 최상의 품격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핵심어는 형벌이 아닌 부끄러움이다.  


도리상 죄를 지었어도 법을 어기지 않았으면 죄가 아니라는 것은 법치주의의 자연스러운 규칙이다. 이른바 죄형 법정주의이다. 그래서 판사가 선고한 무죄는 '결백'이 아니라 검사가 범죄 성립을 주장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가 부족'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형벌을 받지 않는다면 죄가 아니었다는 증거이므로 떳떳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심리이다.  대신 그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즉 파렴치한 사람이 된다. 면죄받거나 형벌을 교묘히 피했거나 형벌을 받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위정자가, 그러니까 요즘 같은 민주사회에서는 민주적 대중이 범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하는 합의된 공감에 따라 대중들이 인간성의 정수인 부끄러움을 가지거나 파렴치한이 되거나 하는 구조이다. 이것은 공자의 주장이 아니라 공자가 파악한 사회의 역학 법칙일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신사적인 사람은 형벌을 받기를 바라고, 염치없는 사람은 이해받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정확하게 얘기하면, 부끄러움에 대한 늘 살아있는 경계심이 없다면 신사일 확률이 낮다. 다행히 남에게 자신의 파렴치를 들키지 않을 수는 있겠만, 스스로는 결과적으로 불행한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공맹의 가르침이 부와 권력을 쥐고 파렴치하게 살기보다 가난하고 소외당하면서도 신사로 살 것을 권하는 것은 부끄러움과 기초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파렴치에 비할 수 없는 행복한 삶의 기초적 조건이다. 공자의 제자 안연은 한 덩어리의 밥과 한 병의 물을 들고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행복해하였다고 한다. 공맹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우리 시대에 아직도 살아있는 공자와 맹자들은 이 말에 감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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