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서비스 제공자..?
미국 헬스케어의 아리송한 개념들
간호학과 학생이던 시절, 영문 자료를 보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표현들이 있었다. 한국말로 옮길 수는 있는데 한국에 똑같은 개념은 없는 단어들, 바로 healthcare provider(헬스케어 프로바이더)가 그랬다. 참고 서적과 저널에 수시로 등장하는 healthcare provider를 '의료서비스 제공자'로 옮겨 놓고, 의사면 의사고 간호사면 간호사지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궁금했다.
이미지. 미국에서 공공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운영하는 CMS(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가 관리하는 미국 연방정부 웹사이트인 HealthCare.gov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당신에게 맞는 provider를 찾는 4단계' 글의 이미지 (4 steps to find the provider that’s right for you)'
얼마 전, 눈 검사와 시력 측정을 위해 진료를 예약했다. 내게 배정된 의료진은 안과 의사(Opthalmologist)가 아닌 검안 의사(Optometrist)였다. 뒷머리가 비대칭이었던 6개월 아기의 사두증 진단을 위해 방문한 시애틀 어린이병원 클리닉에서 아기를 진단하고 전문 치료 클리닉에 의뢰한 사람은 전문간호사(Nurse Practitioner)인 박사님(Doctor)이었다. 그리고 아기의 헬멧 치료를 위해 다녔던 행어 클리닉(Hanger Clinic)에서 아이를 담당한 분은 보장구 전문가(Orthotist)였다.
클리닉이라 이름 붙은 곳들에서 의사가 아닌 분들에게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며, provider를 만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익숙해져 갔다. "Talk to your doctor(당신의 의사와 상의하세요)"라는 말 못지않게 자주 보이는 "Talk to your healthcare provider(당신의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상의하세요)"라는 표현이 이해가 갔다.
미국에서 healthcare provider는 헬스케어의 진단과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면허를 보유한 헬스케어 전문가 개인이나 기관을 의미한다. 일차의료 의사(Primary Care Physician)와 전문의(Specialists) 뿐만 아니라, 전문 간호사(NP, Nurse Practitioner), 심리상담사(Psychologist), 카이로프랙터(Chiropractor), 언어 치료사 (Speech Therapist) 등도 provider(제공자)이다. 병원, 어전트 케어(Urgent Care), 약국, 진단검사 시설도 provider(제공자)로 분류된다. 건강보험회사나 건강보험 상품은 provider(제공자)가 아니라 payer(지불자)에 해당된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Talk to your healthcare provider(당신의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상의하세요)"나 "Call your healthcare provider(당신의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전화하세요)"의 provider는 Primary Care Provider(PCP, 일차의료 제공자)일 가능성이 높다. 가정의학과/소아과/내과/산부인과/노인의학 전공의 일차의료 의사(Primary Care Physician, 이 역시 PCP) 뿐만 아니라 NP(Nurse Practitioner, 전문 간호사)와 Physician Assistant(PA)도 Primary Care Provider(일차의료 제공자)로 활동한다. Healthcare provider라는 보다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개인적인 건강 상태에 따라 진료나 치료를 받고 있는 특정 분야의 전문의나 전문가를 의미할 수도 있다. (참고. MedlinePlus - Choosing a primary care provider)
이미지. 코로나 유행 중에도 아이들의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이어가기 위해 your healthcare provider에게 연락하기를 당부하는 캔자스주 보건환경부의 트위터 게시물
미국 내에서 자신과 잘 맞는 healthcare provider를 찾는 일은 중요하다. 자신의 건강보험 네트워크에 속하는 provider를 만나야 건강보험의 커버를 받아 보다 낮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Primary Care Provider는 매년 정기 검진(건강보험에서 무료로 제공하며 annual physical, wellness exam, well-care visit과 같은 이름으로 불림)과 건강 관리를 위한 상담을 맡고 일반적인 급만성 질환을 진단해 치료하고 필요시 건강보험사를 설득하면서 검사를 진행하고 또 다른 provider에게 환자를 의뢰하는 역할을 맡는다. 건강보험 형태에 따라 PCP의 의뢰 없이 전문의를 바로 만날 수 있는 건강보험 상품들(PPO와 EPO)이 있으나, 심장내과/내분비내과/정형외과와 같은 다수의 전문과들이 새로운 환자 예약 시 PCP의 의뢰와 이전 의료기록 공유를 요구한다. 그래서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자신과 잘 맞는 Primary Care Provider가 필요하다.
CMS(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가 사람들이 건강보험 보장 내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일차 의료와 예방적 서비스를 잘 이용하도록 돕기 위해 시작한 이니셔티브인 Coverage to Care는 '건강보험 보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5단계' 중 세 번째로 '적절한 Provider 찾기(Find a provider)'를 꼽는다. 1) 건강보험 가입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한 후 보험료를 지불하고 2) 자신의 건강보험이 어떤 서비스를 커버하고 비용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한 후, 4) 진료를 예약해 상담을 받고 5) 약을 처방받는 사이에, 3)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의 네트워크에 속한 provider들 중 자신에게 맞는 한 명을 골라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지. CMS Coverage to Care 이니셔티브에서 소개하는, 건강보험 보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5단계(5 Ways to Make the Most of Your Coverage)
건강보험사들의 홈페이지에서 이용자들이 자주 사용하게 되는 화면 중 하나도 provider를 검색하는 기능이다. 자신의 건강보험 상품을 입력한 후 이 네트워크에 속한 provider들 중 전문 분야, 이동 거리, 새로운 환자를 받는지 여부 등을 고려해 가능한 provider의 목록을 확인하는 단계는 새로운 provider를 찾는 과정의 첫 번째 단계라 할 수 있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쇼핑 단지에 괜찮아 보이는 클리닉이 있고 구글 리뷰(Google reviews)의 평점이 최고점 5.0에 경험자들이 극찬을 한다 해도, 내 건강보험으로 이용할 수 있는 provider 검색 결과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다.
화면. KP 웹사이트의 provider 검색 화면
화면. 대면 진료 및 화상 진료 예약 서비스인 Zocdoc에서 진료 예약을 위해 provider를 찾는 검색 조건에는 전문 분야, 지역 및 이동 거리, 원하는 일정과 함께 이용자의 건강보험 종류가 포함된다. 이용자는 자신의 건강보험을 받는 provider 중에 원하는 일정에 진료가 가능한 사람들 중 이전 환자들의 평가를 참고해 진료를 예약하게 된다.
Coverage to Care 이니셔티브가 제작한 '한눈에 보는 내 건강 보장 내역 (My Health Coverage at–a-Glance)'은 진료 예약 시 알려줘야 하는 자신의 건강보험 정보와 이 건강보험으로 서비스 이용 시의 비용 발생 원칙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 보험을 가진 상태에서 언제 어느 provider를 이용해야 하는지를 미리 확인해두는 데 사용할 수 있는 2페이지짜리 서식지이다. 이 가이드는 특히 대부분의 건강 문제에 대해 진료를 받을 main provider인 Primary Care Provider를 정해 예방적 서비스와 처방 및 다른 상담을 위해 우선적으로 만나도록 조언하고 있다.
이미지. Coverage to Care 이니셔티브에서 제공하는 '한눈에 보는 내 건강 보장 내역 (My Health Coverage at–a-Glance)' pdf 서식
(이 글은 미국 간호사 15년 경력의 전문 간호사(Nurse Practitioner)인 Sarah An 님의 감수를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