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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Nov 08. 2021

미국에서 건강검진,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미국에도 과연 건강검진이 있을까?


미국 사람들은 왠지 건강검진이 너무 비싸 못 받을 것 같고, 병도 많이 악화된 상태에서 발견한 후 높은 비용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못 받을 것 같다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도 건강검진이 있다.


한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국가 건강검진 외에 자비 혹은 직장의 혜택으로 각종 검사들이 패키지로 구성된 건강검진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도 직장에 다니면서 특별한 이상 증상이 없는 30대지만 위 내시경, 유방 초음파, 심장 초음파에 골반 초음파 검사가 포함된 검진을 받았었다. 같은 건강검진센터의 프로그램에는 보다 높은 가격에 저선량 폐 MDCT, 뇌 MRI, PET-CT까지 포함된 상품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검진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미국에는 예방의학 및 일차의료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USPSTF (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미국질병예방특별위원회)라는 공신력 있는 팀이 있다. 198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USPSTF는 예방 서비스 관련 연구들을 검토해 건강 검진(screenings),  행동 상담(behavioral counseling), 예방 목적의 약품 사용(preventive medications)에 대한 근거 기반 권고안을 발표하고 각 권고안에 A, B, C, D 또는 I라는 등급을 매긴다. A와 B는 순이익이 매우 높아 서비스 제공을 권하는 등급, C는 환자의 상황에 따라 선택적인 서비스 제공을 권하는 등급, D는 이익이 없거나 유해성이 이익보다 높아 서비스 제공을 반대하는 등급이다. I 등급은 서비스의 혜택과 유해성을 평가하기 위한 근거가 현재로서는 부족함을 뜻한다. (참고. USPSTF - Grade Definitions)


영상. 임상적 예방 서비스에 대한 근거 기반의 권고 사항을 결정하는 미국질병예방특별위원회 USPSTF에 대한 소개 영상

2010년부터 실행된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의 요구에 따라, 건강보험사들은 근거 기반의 검진 및 상담과 예방접종 자문위원회(ACIP, Advisory Committee on Immunization Practices)의 권장 예방접종을 환자의 비용 부담 없이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영유아 검진(Well-child visits)을 받을 수 있다. 성인들은  USPSTF가 권고하는 A, B 등급의 검사들을 비용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고, 일 년에 한 번 주치의 또는 PCP(Primary Care Provider, 일차의료 제공자)를 무료로 만나 개인의 건강 병력과 가족력을 검토하고 그동안의 검사 결과와 검진 계획에 대해 상담할 수 있다. Annual Wellness Visit, Annaul Wellness Exam, Annual Well-care Visit 등으로 불리는 PCP와의 이 진료는 줄여서 Annual(애뉴얼, '1년에 한 번'을 의미 )로도 불린다. 그래서 각종 검진의 계획과 상담과 관리의 중심에 PCP가 있다. (참고. Preventive Services Covered by Private Health Plans under the Affordable Care Act (KFF, 2015/8/4))


이미지. 메디케어(Medicare)가 가입자들에게 제공하는 Annaul Wellness Visit의 기본 요소 (출처. Nebraska Health Network)

검진을 위해 정해진 검사들을 받을 수는 있는 길은 이렇게 열려 있으나, USPSTF 권고사항 A, B 등급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검사들을 검진을 위해 개인이 임의로 선택해서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PCP가 권하지 않고 건강보험이 커버하지 않는 검사를 개인의 선택으로 받은 후 결과를 가지고 상담을 받는 일은 비용 때문에라도 미국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물론 건강 검진이 아니라 몸에 이상이 있어 추가 검사나 전문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 PCP의 의뢰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 한편, 건강 보험이 없는 사람들도 원한다면 각종 검진과 Annual 진료를 받을 수는 있으나 건강보험의 커버 없이 모든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하므로 시도할 가능성이 낮다.


현재 내가 이용하는 KP(Kaiser Permanente, 카이저 퍼머넌트)의 경우, 22~49세 여성에게 예방적 서비스로 자궁경부암 검사, 클라미디아 검사, HIV 검사, 맘모그램, 콜레스테롤 검사, 혈압 검사, C형 간염 검사와 함께 Well-care visit이라는 이름의 Annual을 1년에 한 차례 제공한다. 나 역시 그동안 자궁경부암 검사와 맘모그램을 별도 비용 부담 없이 받았다. PCP를 중심으로 제공되는 미국식 건강검진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 주치의와의 Well-care visit을 예약했다.


화면. KP 건강보험이 22~49세 성인 여성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예방적 서비스의 구체적 내용 (참고. KP - Adult Well-Care Visits, Screenings, and Immunizations)

화면. KP의 환자 포털에서 PCP와의 진료를 예약하는 화면. 장소와 날짜를 선택하기 전 선택해야 하는 진료의 종류는 전화 진료(Phone Visit), 화상 진료(Video Visit), 대면 진료(Office Visit), 그리고 Annual 진료(Well-Care)이다. 예약 화면 하단에 Well-care visit은 예방적 검진(preventive screening), 예방접종 및 건강한 행동을 위한 상담을 제공하며, 그 외 다른 염려나 새로운 증상, 기존 질환에 대한 질문을 상담하면 개인 부담금이 청구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이 나온다.

예약한 Annual 1주일 전 주치의의 이름으로 메일을 받았다. 진료 전에 내 건강상태를 평가하는 설문을 먼저 작성해야 한다며 설문 작성에 약 20분쯤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존 병력이나 영양, 운동, 음주 상태부터 우울증, 스트레스 관리, 예방접종 상태는 물론 취미에 가족력까지 모든 질문에 답을 하는 데 약 1시간이 걸렸다. Sexual Health나 Family History와 같이 민감한 주제에서는 질문의 목적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답변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 신체와 정신을 넘어 생활과 가족까지 포함하는 긴 설문을 작성하며 나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답을 한 기분이 들었다. 설문을 마치자 곧바로 내가 답한 분야 별로 리스크 정도와 변화의 필요성 정도를 보여주는 결과지가 나타났다.


화면. Annual 진료에 앞서 건강과 생활에 걸친 광범위한 설문지를 작성했다. Sexual History 카테고리의 첫 번째 질문은 파트너의 성에 대해 질문이다. 이러한 행동이 당신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것이며, 답변에 따라 검사와 당신을 도울 방법들을 제안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성별의 옵션에는 남자(Men), 여자(Women), 트랜스 남성(Transmen), 트랜스 여성(Transwomen), 남녀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벗어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Non-binary people), 기타(None of the above)가 포함된다.


화면. 설문의 마지막 카테고리인 Family History. 이를 통해 건강의 위험과 검진 일정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한다. 원하는 경우에만 답해도 되며, 답변은 직장과 공유되지 않고, 건강보험의 혜택이나 직장에서 제공할 수 있는 인센티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50% 이상의 사람들이 직장을 통해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나라에서 가족력을 직장의 건강보험과 공유하는 것은 편치 않은 일일 것 같다.

화면. 설문 후 바로 제공되는 결과 보고서. 각 항목의 리스크 정도와 변화의 필요 정도를 보여준다.

진료 전날, 미국 사람들은 Annual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검색해보았다. Annual은 환자 입장에서는 건강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기회이고 Provider 입장에서는 진료의 질을 개선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로 권해졌다. (참고. Leverage the Annual Wellness Visit (Medical Economics Journal, 2020/1/3)) 2011년부터 2014년까지의 이용자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부유한 지역에 사는 백인 도시 거주자가 상대적으로 Annual을 이용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참고. Does Medicare's free annual wellness visit do any good? (STAT, 2017/6/7)) 그리고 Annual이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상담하는 무료 서비스이기는 하나, 기준을 벗어나는 추가적인 건강 이슈에 대해 말하게 되면 일반 진료로 간주되어 비용이 청구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 있었다. 건강 상담에서 건강 문제를 이야기하면 안 되는,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주의가 필요했다. (참고.  Obamacare covers free annual physicals, right? Wrong (Los Angeles Times, 2016/8/2))


Annual에 대한 사람들의 조언을 참고해, 진료에서 상담할 내용들을 정리하고 복용하고 있는 영양제들을 모두 챙겼다. (참고. Primary Care Doctors Share 9 Ways to Get the Most Out of Your Annual Checkup (SELF, 2018/5/31)) 진료 당일 클리닉에 도착해 키오스크에서 체크인 후 기다리니 주치의의 담당 Medical Assistant인 T가 나와 나를 불렀다. 들어가는 길의 복도에서 키와 몸무게를 먼저 측정하고 일반적인 진료실로 안내되어 자리에 앉았다. T는 내 혈압을 측정해 입력한 후 추가로 작성할 설문지와 함께 가운을 건네줬다. 설명들은 대로 겉옷을 모두 벗고 속옷 위에 가운만을 입고 기다리자 주치의가 들어왔다.   


사진. Annual에서 입었던 가운과 설문지들. 일반 진료가 아닌 Annual 진료 때는 속옷 위에 제공된 가운을 입게 된다.

1년 만에 만난 주치의는 그동안 받은 검사 목록과 결과 및 예방 접종 기록을 리뷰하며 나의 가족력을 확인했다. 영양제들을 가져왔다고 하나하나 확인한 후 계속 먹어도 좋을 영양제와 필요 없는 영양제를 구분해줬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심음과 폐음을 청진 후 누운 상태에서 유방과 겨드랑이를 촉진했다.


화면. Annaul 중 복용 중인 영양제 약병들을 모두 꺼내놓고 리뷰를 받았다. 복용 중인 유산균은 좋고 비타민 D도 좋고 비타민 C는 필요 없다, 칼슘제가 먹을 때마다 속을 불편하게 한다면 브랜드를 바꿔라, 마그네슘은 변비가 없다면 빼도 무방하다, 콜라겐은 근거가 없다는 조언을 들었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했으면 각종 검사를 더 했을 텐데 아쉬움이 있어, 그동안 받은 자궁경부암 검사와 맘모그램에 더해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암 검진 검사가 무엇이 더 있는지를 질문했다. 주치의는 자궁경부암, 유방암, 대장암 검사만 KP에서 커버하며 대장암 검사는 45세부터 가능하고, 그 외의 검진은 근거가 없어 제공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진을 마무리하며 가끔 염려되는 콜레스테롤, 갑상선과 빈혈 수치도 이번 기회에 확인할 수 있는지 넌지시 물었다. 주치의는 추가 검사 오더의 경우 보험에 따라 검사 비용을 커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으나, 내 보험은 진단 검사를 커버하기에 검사의 오더를 요청했다. 금식이 필요한 검사가 있어 다른 날 검사실을 방문해 채혈/채뇨를 하기로 했다. 결과가 정상이라면 결과만 통보받고 결과에 이상이 있다면 케어팀이 연락을 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Medical Assistant에게 독감 예방접종을 받은 후 오늘의 '진료후 요약지(AVS)'를 받아 진료실을 나섰다. 오늘 진료의 이슈 목록에 일반 정기 검진(Routine general medical examination) 외에 내가 검사를 요청한 이슈들이 모두 나열되어 있었다.


화면. 진료 후 받은 오늘의 '진료후 요약지(AVS, After Visit Summary)'. 오른쪽 상단 Today's Visit 아래 상담 이슈에 정기 검진과 예방접종(파란색) 외에, 혈액/소변검사를 요청하며 말한 어지러움, 피곤 등의 이슈들(빨간색)이 들어있다.

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 KP의 검사실을 방문해 채혈과 채뇨를 했다. 검사를 마치고 몇 분 후 건물 앞에서 자동차를 기다리는데 KP 앱으로 일반혈액검사와 소변검사의 결과가 통보됐다. 예상치 못한 속도에 깜짝 놀랐다. 검사를 받은 토요일부터 이틀 후 월요일까지 시간 차를 두고 검사 결과가 계속 통보됐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높게 나와 의사와 메일로 상의해 6개월 후 검사만 다시 받도록 미리 오더를 받았다. 비록 주치의를 만난 이후에 검사를 받았지만, 이메일로 검사 결과에 대해 상담하고 다음 검사를 위한 오더를 받아 추가 진료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화면. 채혈 후 건물을 나설 때 바로 통보되어 앱에서 확인한 혈액검사 결과

진료 일주일 후 환자 포털에서 진료비 정산 내역인 EOB(Explanation of Benefits)를 확인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건강 상담을 간 김에 혈액/소변검사도 요청했던 내 진료는 건강 상담이면서 동시에 일반 진료로 청구되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20의 부담금이 청구되었고, 내 보험사는 건강 상담과 일반 진료 각각의 비용을 배로 부담했다. 아무리 나의 주치의라 해도 건강에 대한 상담을 하러 가서 건강 관리 외의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해서는 안 되는 냉정함에 헛헛함을 느꼈다.  


화면. Annaul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사의 정산 내역인 EOB(Explanation of Benefits). 무료인 Annual 진료에 가서 콜레스테롤, 갑상선과 빈혈 수치 검사를 받고 싶다고 슬쩍 요청한 내게 일반 진료 비용의 copay(환자 부담금)가 $20이 부과되었다. PCP로 일하는 친구에 따르면, 내 주치의는 내게 혈액/소변 검사를 오더하며 '복잡성이 낮은 의료 의사 결정'에 위한 의료 행위 코드인 CPT(Common Procedural Technology) 코드 99213이 아닌 '복잡성이 높은 의사 결정'에 대한 CPT 코드 99214를 적용했다. 그러나 내 건강보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99213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했다. 단순해 보이는 EOB 표 안에 더 받고 덜 주려는 소리 없는 전쟁이 숨어있다.

설마 했던 $20의 청구서에 씁쓸했지만, 처음으로 Annual을 받으며 검사 중심이 아니라 주치의(PCP)와의 상담을 중심에 두는 미국식 건강검진의 전체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혜택과 유해성을 고려해 사람들에게 더 이상 갈 수 없는 선을 정해놓는 미국식 합리주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참고. USPSTF and Cost Considerations - USPSTF는 비용효과는 배제하고 혜택과 유해성을 고려해 권고사항을 결정한다.)


위암 발병률이 높은 한국에서 당연한 위내시경과 아시아 여성에게 많은 치밀 유방 때문에 한국에서 맘모그램과 함께 필수적으로 권해지는 유방 초음파가 미국의 건강검진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허락된 검진들을 최대한 챙기고 검진 목적으로 유방 초음파는 불가하다는 주치의를 통해 보험의 승인을 받아 유방 MRI 검진을 무료로 예약하고 접종 시기가 된 독감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으며, 이곳에서 이곳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글은 미국 간호사 15년 경력의 전문 간호사(Nurse Practitioner)인 Sarah An 님의 감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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