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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Dec 12. 2021

미국에서 치과검진,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치과에 갔다. 치과보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비 부담 없이 치과검진과 클리닝을 받을 수 있지만, 코로나의 유행으로 검진을 미뤄오다가 용기를 냈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건강보험(Health insurance), 치과보험(Dental insurance), 그리고 눈 검진과 안경 처방에 관한 시력보험(Vision insurance)으로 나뉜다. 각각의 보험을 가입할지 말지 개별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실직 등을 이유로 비용이 문제가 될 때 치과보험은 건강보험 가입보다 더 고민할 문제가 된다. 2019년, 미국에서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비율은 12.1%였던데 비해, 치과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비율은 약 25%였다. (참고. Trends in the U.S. uninsured population,2010-2020 (ASPE Office of Health Policy Issue Brief, 2021/2/11),  A quick look at people without dental insurance (Insider Update, 2021/3/1))


사진. 내가 지갑 속에 항상 넣고 다니는 의료보험 카드들. 남편의 회사를 통해 보험에 가입하면서, 회사가 제공하는 보험 옵션들 중 건강보험으로는 HMO 형태인 KP를 선택했고, 치과보험으로는 PPO 형태인 Premera Blue Cross만 선택할 수 있었다. KP의 건강보험이 시력보험 혜택을 포함하기 때문에 지갑에 가지고 다니는 의료보험 카드는 총 2장이다.

미국에서 치과보험이 있다고 해서 치과 비용의 부담을 완전히 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과보험 상품에는 한 해 동안 보험이 지불하는 금액의 상한선(Annual benefit maximum)이 정해져 있고, 그 금액을 초과하는 비용은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 가장 일반적인 PPO 형태의 치과보험 중 약 절반의 연간 최대 보장액은 $1,500(한화로 약 180만 원) 미만이다. 대부분의 치과보험은 예방진료 비용의 100%, 충치충전치료/신경치료와 같은 기본치료 비용의 80%, 크라운/브릿지/틀니와 같은 주요치료 비용의 50%를 보장한다. 치과 비용이 한국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에, 필요한 치료 비용이 그 해의 보험 혜택 상한선을 초과하는 경우 그 상한선을 고려해 올해에 급한 치료를 먼저 받고 이듬해에 나머지 치료를 받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참고. Dental Insurance Plans: What’s Covered, What’s Not (WebMD, 2020/6/16))


화면. 치과보험 홈페이지에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보험 상품의 혜택을 확인할 수 있다. 치과 보험은 일반적으로 1년에 2회의 예방진료를 제공한다. 아래 그림은 이번 치과 검진 후 내 치과보험의 예방진료 혜택이 1회 남았음을 보여준다.

치과검진을 위해, 치과보험 홈페이지에서 집에서 5마일(8km) 안에 위치하고 새로운 환자를 받는 치과들을 검색했다. 그중, 집에서 차로 6분 거리에 구글 평점이 5점 만점에 4.9점이면서, 초진 90분  모든 검사를 진행하고 상담하며 필요한 치료는 다음 예약  진행하고, 코로나 감염 예방에 모든 직원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를 홈페이지에서 영상으로 보여주는 치과에 전화를 했다. 


화면. 치과보험 홈페이지의 검색 화면. 내 보험 상품을 받는 치과의사들을 내가 원하는 전문 분야, 거리, 성별, 환자평가 등의 조건을 입력해 검색할 수 있다. 

전화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 내 치과보험의 이름을 묻는 직원에게 보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가장 빨리 예약 가능한 날짜를 문의했다. 때 마침 아이가 옆에서 큰 소리를 내면서 대화가 매끄럽지 않았다. 잠시 후 직원은 올해의 예약은 끝났고 1월에나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을 했다. 8월의 일이었다.


치과 진료를 앞두고 읽은 책, '아 해보세요 - 치아에 새겨진 불평등의 이력들 (후마니타스, 2021) (원제: Teeth: The Story of Beauty, Inequality, and the Struggle for Oral Health in America (2017))에 따르면, 미국은 치과 진료에 대한 불평등이 심한 나라다. 가난으로 치과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통증 때문에 응급실을 찾고 때로는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2007년에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12세 소년 데몬테 드라이버(Deamonte Driver)는 충치를 치료할 기회를 찾지 못해 감염이 뇌까지 퍼져 사망했다. 데몬테 드라이버의 사망은 미국의 메디케이드 치과 체계를 개혁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오바마케어의 실행은 어린이들의 치과 진료 보장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했지만, 성인을 위한 제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한다. 직장을 통해 치과보험에 가입해온 사람이라도 은퇴를 하며 치과보험을 잃는 경우가 많다.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Medicare는 일상적인 치과 진료를 보장하지 않는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Medicaid는 어린이의 치과검진, 진료 및 치료를 보장하나 성인의 보장 여부는 주 정부에 달려있다. 대부분의 주들이 Medicaid 성인에 대한 치과 응급 치료는 제공하나, 전반적인 진료와 치료를 보장하는 주들은 절반 이하이다. (참고. Medicaid.gov - Dental Care) 또한 미국 내 치과 의사들 중 Medicaid에 참여하는 치과의사는 절반이 안되고, Medicaid를 받아주는 치과를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 Medicaid가 지급하는 치과 진료비가 민간 의료보험 회사가 지급하는 진료비의 절반에 해당될 정도로 낮은 것이 그 이유이다. (참고. 아 해보세요 - 치아에 새겨진 불평등의 이력들 (후마니타스, 2021))


그림. 50,077명이 응답한 2014 National Health Interview Survey 결과에서 지난 1년 간 비용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한 헬스케어 분야의 1위가 전 연령대에서 모두 치과였다. (출처. Dental Care Presents The Highest Level Of Financial Barriers, Compared To Other Types Of Health Care Services, Health Affairs December 2016)

치과 예약에 실패하고 전화를 끊은 후,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인기가 많은 치과이거나 아니면 예약을 거부당한 것 같았다. 보험을 먼저 밝히지 않은 나는 어쩌면 저소득층의 Medicaid 가입자로 보였을까. 진료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면 보험을 제일 먼저 확인하는 직원의 질문을 피하면 안 되겠다는 배움을 얻었다.


다시 한번 치과 검색에 나섰다. 또다시 치과보험 홈페이지에서 검색한 치과의 구글 평점을 확인하며 치과 홈페이지들을 둘러보다 한 치과가 눈에 들어왔다. 인도계 Dentist(일반 치과의사)와 Endodontist(보존과 전문의), 한국계 Oral Surgeon(구강외과 전문의)과 Periodontist(치주과 전문의)가 같이 근무하며, 응급 환자까지 받는다는 곳.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빈 시간을 확인해 예약을 하고 환자 포털(Patient Portal)을 제공해 진료 기록을 확인하고 의료진과 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동네 치과임에도 동네 치과 같지 않은 포스가 있었다.


화면. 내가 선택한 치과 홈페이지의 예약 화면. 응급(Emergency), 원격 치과상담(Teledentistry), 치과검진 및 클리닝(Dental Checkup/Cleaning), 그 외 치료(Other Treatment) 옵션 중 예약 이유를 선택하면 그에 따라 담당 치과 의사가 자동으로 배정된다. 해당 의사 앞으로 예약 가능한 시간이 보이며, 각 진료는 90분 길이로 예약된다. DDS는 Doctor of Dental Surgery의 줄임말이다.

화면. 환자 정보 입력 후 치과 보험 정보를 입력해야 예약이 완료된다. 치과 보험 목록에는 몇십 개의 구체적인 치과 보험 상품 명과 함께 Not listed(목록에 없음), No insurance(보험 없음) 옵션도 들어 있다. 

화면. 소규모 치과 오피스에서 보다 일반적인 예약 방식은 전화로 예약을 하거나 자체 홈페이지에서 입력창을 통해 예약을 요청(Appointment request)하는 방식이다. 아래 화면은 동네 또 다른 치과 홈페이지의 예약 요청 화면이다. 

2주 후 금요일 오후, 안내받은 대로 예약 시간보다 일찍 치과에 도착했다. 


사진. 처음 가는 치과에 예약을 하려면 먼저 새로운 환자를 받고 있는지 확인하고 진료를 예약해야 한다. 기존에 등록된 환자 외에 새로운 환자들을 받는 치과들은 보통 홈페이지나 오피스에 'Accepting New Patients'를 표시해둔다. 이 치과는 대기실 벽에 "우리는 여러분들의 친구와 가족을 위한 자리를 항상 만들 수 있으니 친구를 추천해달라(We will always make room for your friends and family. Thank you for your referrals!)"는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환자를 모집하기 위해, 새로운 환자를 추천하는 기존 환자에게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곳들도 있다. 

리셉션에서 예약을 확인한 후 아이패드를 건네받았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아이패드를 들고 의료정보시스템 Epic의 환자포털인 My Chart에 가입한 후 내 치과보험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내 건강 상태에 대한 설문에 답을 하고, 미국의 의료정보보호법 HIPPA의 동의서와 검사에 대한 동의서에 서명했다.


사진. 아이패드를 통해 건강보험 정보를 입력하고 설문에 답하고 동의서에 서명하는 체크인 화면

잠시 후, Dental Assistant인 S가 나와 나를 X-ray 촬영실로 데리고 갔다. 납가운을 입고 파노라마 사진과 치근단 사진을 찍고 모든 치아를 실사 이미지로 촬영한 후 진료실로 이동했다.  


사진. Dental Assistant가 진행하는 X-ray 및 치아 실사 이미지 촬영

진료실은 치과용 유닛체어가 하나만 놓인 1인실이었다. 유닛체어의 왼쪽에는 Epic EMR이 띄어진 모니터가 놓여있고, 오른쪽에는 석션기와 함께 사인 패드가 놓여있었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양치컵과 배수구는 보이지 않았다. S는 모니터에 내 이미지들을 띄워놓고 의자에 앉은 내게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건네줬다.


사진. 치과의사가 착용하는 헤드라이트에 대비해 환자에게 선글라스를 씌어주고, 새로운 처치에 앞서 환자 의자에 앉은 상태로 비용 확인과 서명을 먼저 하고, 의사의 처치 중 컵으로 물을 마시고 뱉어내는 양치 대신 입 안 구석구석 물을 뿌려준 후 다문 입 안을 완전히 석션해버리는 미국의 치과 진료실

사진. 치과에서 제공한 선글라스. 의사가 머리에 착용한 헤드라이트에 눈이 부시지 않을 만큼 아주 새까만 선글라스라서 의사는 진료 중 내 눈이 안보였을 것 같다. 내가 진행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 의사 표현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눈을 가리는 것보다 훨씬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곧이어 Dr. P가 들어와 인사를 하고 검진을 시작했다. 의사는 헤드라이트를 킨 상태로 진료를 했다. 나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덕분에 진행 상황을 볼 수 있었고 의사의 얼굴을 보며 반응할 수 있었다. 내 얼굴과 눈을 가리는 일은 없었다. Dr. P는 내게 충치가 없고 상태가 깨끗하니 별도의 치료 없이 클리닝(cleaning)만 하면 된다는 의견을 주었다.


의사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리셉션 직원이 들어왔다. 내 치과보험에 따른 오늘의 비용을 확인하고 내가 부담할 추가 비용은 없음을 알려준 후 유닛체어에 오른쪽에 달려있는 서명 패드에 치료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도록 했다. 같은 날 같은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던 남편은 치료가 필요하자 치료 전과 클리닝 전 2번에 걸쳐 리셉션 직원이 들어와 치과보험에 따른 비용을 확인한 후 2번 각각 서명을 한 후 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료를 마친 후 리셉션 직원을 따라 리셉션에 가서 미리 고지했던 본인 부담 비용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내가 서명을 마치자, Dr. P가 다시 들어와 클리닝을 시작했다. 처치 중 내가 양치를 원할 때마다 입안 구석구석 물을 뿌려준 후 입을 다물도록 한 후 입안의 물을 완전히 석션해주었다. 공중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 것을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미국식 양치 같았다. (참고.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사람에 대한 미국인 반응 (오마이뉴스, 2021/1/3)) Dental Assistant인 S가 와서 클리닝을 마무리하고 불소를 도포한 후 치실 사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S와 6개월 후로 다음 검진을 예약한 후, 리셉션 직원이 와서 나를 진료실 밖으로 에스코트했다. 직원은 나에게 칫솔/치약/치실이 담긴 휴대용 세트를 건네며 인사를 했다.


사진. 치과에서 환자에게 제공하는 선물세트. 치과 의사들의 이름과 치과 연락처가 새겨져 있다. 

며칠 후 치과보험 홈페이지에서 정산 내역인 EOB(Explanation of Benefits)를 확인했다. 당혹스럽게도, 검진, 클리닝, 불소 도포 외, X-ray와 사진 촬영 등에 대한 비용 $627을 보험이 커버하지 않는다고 나와있었다. 보험이 커버를 거부해 환자에게 예상치 못하게 청구되는 이른바 Balance bill 또는 Surprise bill을 받을 수 있는 정산이었다. 당혹스러웠다. 검진과 클리닝은 치과보험이 커버하는 부분이라 너무나 당연하게 시키는 대로 X-ray 촬영을 했고, 클리닝에 대한 나의 비용 부담은 없다는 설명을 믿고 치료에 동의하는 서명을 했었는데, 배신감이 몰려왔다.


화면. 내가 받은 치과 검진과 클리닝에 대해 치과가 치과보험에 청구한 비용에 대한 치과보험의 정산 내역. Full mouth X-ray와 치아 실사 사진과 예방적 처치는 보험이 커버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판단해, 이에 대한 비용 $627이 환자 부담금으로 결정되었다.

며칠간 청구서를 기다리다 소식이 없어 치과에 전화를 했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가능하면 협상을 통해 할인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전화를 받은 직원은 내 정산 내역을 확인한 후 치과에서 내게 비용을 청구할 계획은 없다고, 내 잔금은 0원(zero balance)라고 답을 했다. $627을 받을 생각이 없다는 치과의 답변에 날 선 마음이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치과는 보험사로부터 최대한을 받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환자와 치과와의 정산은 보험사는 모르는 또 다른 일이라는 것을. 미국 보험을 가지고 미국 치과에서 받는 미국식 치과검진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치료 전 서명 패드에 사인하고 석션으로 양치하는 미국 문화와 함께 미국식 정산이 함께 한다는 것을.


(이 글은 미국 간호사 15년 경력의 전문 간호사(Nurse Practitioner)인 Sarah An 님의 감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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