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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 석 Jan 22. 2024

살이 찌는 것은 진화하는 것이다.

고로 다이어트는 진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바디프로필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 주변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몸을 만드는 것은 인류 역사의 흐름으로 볼 때 진화에 역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당시 달라진 사회의 현상을 내 나름의 분석으로 바라봤는데 이 주장을 할 때마다 경멸스럽게 나를 쳐다보던 이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현대인들의 비만에 관련해서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관련 법안까지 만들어서 이 문제를 다룰 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갈수록 서구화되는 식단과 생활환경의 변화, 코로나19의 여파로 높아진 한국의 비만율도 향후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될 것이다.


최재천 교수가 늘 주장하는 것을 인용하자면, 생물은 ‘종의 번식’과 ‘생존’에 맞게 진화하며 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안전이 보장된 현대사회에서 음식이 풍부하고 움직일 시간이 줄어드니 살이 찌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 ‘ET’를 만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모습을 상상하여 ET의 이미지 모델링을 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더 편리한 세상이 오면, 인간이 근육을 사용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며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머리를 굴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팔다리가 얇아지고 배가 나오고 머리가 커지며, 손가락이 길어질 것이라는 근거에서다. 따라서 나는 술자리에서 우스개 소리로 배나오고 머리 큰 중년의 남성들이야 말로 인류 진화의 흐름에서 선봉에 서신 분들이라고 말하곤 했다.


살이 찌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단, 우리는 ‘건강’이라는 필수요소를 생각해야하기에 건강을 위한 체중조절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현대사회에 필요한 처방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인데 어느샌가부터 ‘몸이 좋아야한다’는 인식이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를 현대사회에서는(특히 한국은 더) 외모가 곧 경쟁력이고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라도 가꿔야할 필수 요소로 자리잡아왔고, 의학의 발달로 외모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 되자 이 시선이 몸으로 향한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런 사회적 시선의 변화가 향후 ‘퇴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기에 이 또한 인간의 생존과 종의 번식에 따른 ‘새로운 진화’의 개념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인류의 진화가 참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무섭기도 하다. 살 빼려고 고구마를 뜯으면서 써재끼는 이런 글도 몇 개의 키워드만 넣으면 몇초만에 AI가 대신 써주는 세상인데다, 생존과 종의 유지를 위해 능력, 외모, 몸까지 가꿔야하는 세상이라니. 경쟁의 경쟁을 요구하는 이런 사회적 변화는 넋놓고 받아들여야하는 하나의 자연재해로 느껴진다.


다이어트 포기하고 치킨이나 뜯고 싶다는 헛소리를 정성스럽게 하려고 이렇게 머리를 굴리다가는 ET가 될거 같으니 고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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