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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 석 Jan 22. 2024

영화 '영웅' 리뷰.

소문난 잔치였다.


뮤지컬 영웅이 영화로 개봉한다고 했을 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잘 알려진 넘버들, 안중근 역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배우 정성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극장으로 향할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고, 과연 조선의 후예들인 우리는 이러한 항일 작품에 대해 너그러울 수 밖에 없다.


영화의 시작은 좋았다. 

꽤 많은 돈을 내더라도 티켓팅에 실패하면 들을 수 없는 뮤지컬 영웅의 넘버들을 큰 화면과 빵빵한 사운드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티켓값이 아깝지 않았다. 또한 흔히 말하는 ‘뮤덕’이자 매번 반일 감성이 가득한 작품을 만들어온 나 같은 방구석 애국지사에게 이 작품의 시작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가 보낸 편지 장면이나 형장에 홀로 선 안중근 의사의 엔딩은 가히 극장을 찾은 모든 이를 압도할 만큼 강렬했다. 영화가 끝나갈 때, 많은 사람들의 훌쩍거림이 들렸다. 이것은 슬픔일까 분노일까. 우리가 문화와 예술을 접하는 이유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이 영화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많은 감정을 느끼기에 더없이 괜찮은 영화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은 많이 없었다.

이 영화는 정확히 ‘뮤지컬 영화’다. 안중근 의사라는 역사적인 소재로 만든 ‘뮤지컬 영화’다. 이 작품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의 보수적인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우려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그 우려들이 여과 없이 스크린에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윤제균 감독이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역사 영화랑 뮤지컬 영화는 엄연히 다른 장르이다. 역사 영화를 우리에게 익숙한 떡볶이에 비유한다면, 뮤지컬 영화는 여러 다양성이 합쳐져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이태리 파스타와 비슷하다. 이 영화는 역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다. 매콤한 떡볶이 소스를 활용해서 만드는 한국식 이태리 파스타, 젊은이부터 어른들까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그런 로제 파스타를 상상했다면 이 영화는 CG라는 양념을 잔뜩 입힌 떡볶이 파스타? 파스타 떡볶이? 같은 느낌이다. 이게 무슨 요리냐고? 내가 극장을 나와서 느낀 감정이다. 

 

역사는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우리가 역사를 잊는다면 우리가 아는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다. 영화의 일부 장면을 보며 상당한 불편함을 느꼈다. 혹여나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이가 단순히 애국심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역사적 사실과 달리 미화된 우리의 역사를 그 자손들에게 물려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내 생각이 주관적임은 틀림없다. 어떤 장면인지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내 기준으로 역사를 해석했을 때, 이 영화가 표현한 방식은 틀림없이 불편했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적 해석이 담긴 작품들이 개봉한다. 우리가 역사를 잊는다면 우리가 아는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다.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마음으로 만들어야한다.

사실 자본주의는 무시할 수 없다. 어떠한 일이든 자본의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 영화는 개인적으로 ‘돈 벌자 하면 못 벌것이고, 못 벌어도 된다 하면 잘 벌것이다’는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마음으로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전과는 달리 관객들이 콘텐츠에 만족하는 기준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는 숭고하다. 그리스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고 마블에는 어벤져스가 있듯, 우리에겐 500년 전통의 조선왕조와 안중근, 윤봉길, 안창호, 홍범도 등 한국판 어벤져스가 활동하던 격변의 근현대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숨결에서 우리 역사를 느낄 수 있기에, 역사적 사실을 작품으로 만든다면 이를 볼 관객들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예상했어야 했다. 어설픈 B급 유머, 결이 다른 넘버들, 억지 감동 장면 등 CG에 부은 돈 때문인지 예산 절감을 위한 노력들과 '처음엔 웃기고 나중엔 슬퍼야 한다'는 의도가 영화에서 곳곳에서 보였다. 나는 이런 걸 보려고 이 영화를 찾은 것이 아니다. 영화는 그 영화 각자가 관객에게 행해야할 의무가 있다. CG는 판도라의 나비족이 책임지고 있으니 이 영화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그의 동료들, 이토를 처단했던 거사와 그 이후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했어야 했다. 여담이지만 OOO이 OOO의 품에 안겨 죽을 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관객의 기준이 높은 만큼 이런 영화는 그 기준을 충족해줘야할 의무가 있고, 수익은 그 의무를 지켰을 때 따르는 보상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 역사는 숭고하기 때문이다.


1월 1일인 오늘, 새해를 맞이하여 해돋이를 보고 왔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가 원하는 곳을 가고 원하는 것을 먹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이 그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현재를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영화를 보던 중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처럼, 다소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뮤지컬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에 100년 전 그들의 숨결을 잠시나마 느꼈다. 나는 뮤지컬과 영화, 뮤지컬 영화를 사랑한다. 따라서 100년 전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의 미래를 얻었듯, 지금의 노력이 대한민국 뮤지컬 영화의 미래를 얻는데 많은 기여를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지만 나름의 맛은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잔치가 열렸으면 한다. 물론 먹을 것이 많은. 

지금껏 모델이었던 배정남이 이 작품을 통해 드디어 배우가 된 것 같다. 


공연이든 영화던 시작 전에 휴대폰은 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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