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삶을 운명으로 내려 받아, 잠깐의 행복을 위안 삼으며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로 포장한 공포영화다.
시작은 의문의 거대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이다. 늘 그렇듯 재난영화의 형식은 어떠한 재난이 벌어지게 된 경위, 재난을 피하기 위한 인간의 생존투쟁과 이기적인 사람들의 죗값, 재난이 해결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웅장함을 비추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재난 영화가 아니기에 전사에 따른 경위를 삭제하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군상에만 집중한다. 군더더기를 빼고 인간의 군상에만 집중하니 공포가 따로 없었다.
이 영화는 줄곧 인간들의 ‘무지’와 ‘생존’에 대해서 말한다. 가장 먼저 돋보인 ‘무지’의 표현으로 인간은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 ‘사이비’가 생각났다. 영화 ‘사이비’에서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하려는 주인공을 신분이 주정뱅이라는 이유로 믿지 않지만 자신들의 피눈물을 빨아먹는 목사의 말은 철썩 같이 믿는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도 감독은 이를 상기시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시지의 옳고 그름보다 메신저의 신뢰성을 중요시 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두 번째로는 인간은 자신의 부도덕함에는 관대하면서 타인의 부도덕함에는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지만 인간은 무지하기에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화살을 날린다. (이 부분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기에 더 언급하지 않겠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등장인물들은 그들만의 시스템을 만든다. 우리 또한 그렇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모든 자본주의적 프로세스는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다. 하지만 만물은 영원하지 않다. 따라서 누군가가 생존한다면 누군가는 소멸해야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며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영화에서 재밌는 부분이 있었다. 아파트 밖, 즉 야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퀴벌레’로 칭하는데 이 바퀴벌레로 불리는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다 보니 오랜기간 살아 남는다. 참 징그러우면서도 아이러니 하고, 또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이렇듯 감독은 무지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너네도 똑같지?’ 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무지 속에서 당하고 뺏기고 빼앗고 할퀴며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우리도 해가 뜨면 집을 나와 무지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와 다음 생존 투쟁을 준비한다. 즉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유토피아는 존재 할 수 없지만 우리는 콘크리트 속에서 늘 유토피아를 꿈꾼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역시나 가장 무서운건 사람이다. 겁나 인정하기 싫은데 공감돼서 짜증났고, 재밌으면서도 참 찝찝한 영화다. 엄태구 배우가 상당히 귀엽게 나오고 갓병헌님의 연기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단순히 상업영화라 치부하기에는 담긴 것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