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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 석 May 31. 2024

'청년들이여 꿈을 가지라'는 말을 믿지 않는 이유

    고등학교 2학년쯤이었다. 채플 시간이 되자 우리는 모두 강당으로 이동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었기에 매주 한 교시는 채플 시간으로 배정 돼 있었다. 보통 찬송가를 부르고 학교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후 기도하고 끝나는 형식인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강당에 들어섰는데 찬송가를 부르고 있어야할 학생들이 그러지 않고 단상 중앙에 교탁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오늘은 찬송가를 부르지 않는 건가. 미션스쿨을 다닌다고 해서 학생 모두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만약 미션스쿨에 다니는 학생 모두가 절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일찌감치 국정원의 수사 대상이 됐을 것이다. 우리에게 채플은 단순한 놀이였다. 수업 시간에 마음 놓고 노래 부르고 떠들고 놀 수 있는 합법적인 놀이. 당시 내가 다닌 학교는 지역에서 서울대를 많이 보내기로 유명했던 사립 남자고등학교였는데, 선생님들의 교육열이 얼마나 악독(?)한 지 점심시간과 체육 시간 외의 운동은 처벌의 대상이었다. 다행히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날은 우리에게 캐러멜을 뿌리던 학교 목사님이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평소 채플에 관심이 없던 선생님들이 강당에서 우리에게 ‘앞자리부터 채워 앉으라.’며 지도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학교에서 꽤 높은 직책을 가지고 계시던 선생님이 단상 위로 올라와서 오늘의 채플은 어느 특별하신 분의 강의로 대체한다고 알렸다. 잠시 뒤 선생님의 억지 호응 유도에 맞춰 우리들이 쏟아낸 박수와 함께 얼마 전 임기가 끝나 퇴임한 시의원 한 분께서 단상 위로 올라왔다.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 세련된 회색 정장에 어울리는 다부진 체격, 얼마나 인생을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머리 중앙이 고속도로 마냥 시원하게 비어있는 모습이 그가 살아온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단상에 서서 그 채플 시간이 끝나기 5분 전까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쉴 틈 없이 쏟아냈다. 따로 자료를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정치인이 틀림없었다. 채플 시간이 끝나기까지 5분이 남자 그제야 그는 화제를 바꾸어 우리에게 ‘꿈을 가져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합법적인 놀이시간을 강탈당한 피 끓는 10대 남학생들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당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길을 걷거나 TV를 보거나 어느 행사에 가거나 혹은 밥상머리에서도 꿈을 가지라는 말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의례 선생님이 강요했던 것은 꿈, 장래 희망 같은 것들이었다. 실제로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때 장래 희망을 종이에 써서 학교 화단에 묻고, 이를 30년 뒤에 꺼내보자는 매우 잔인한 짓도 했었다(당시 교장 선생님이 손수 삽으로 화단을 떠서 종이 뭉치들을 묻었다) 그 당시 곱셈과 나눗셈을 인생 최대의 난제로 생각하던 아이들이 장래 희망으로 써낸 것은 검사와 판사, 변호사, 의사가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 나도 장래 희망에 검사라고 적었었는데 ‘그 검사’가 되고 싶었다기 보다는 만화 ‘원피스’에서 칼을 휘둘러 적을 무찌르는 ‘조로’를 좋아해서 그와 비슷한 직업인줄 알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와 같이 장래 희망을 적어 냈던 아이 중에 과연 자신이 써낸 직업이 정말 꿈이었던 아이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좋은 대학이 가야한다 같은 꿈을 강요받아 왔다. 학생들이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서 꿈은 좋은 미끼였다. 그렇게 학교 화단에 검사라는 꿈을 적어 냈던 초등학생이 채플 시간에 나타난 정치인의 연설을 들을 때까지도 그 꿈 강요는 지속됐다. 고등학교 2학년쯤이면 그 많은 아이 모두가 검사나 변호사, 판사 의사가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꿈을 포기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꿈은 문제가 없는데 거기에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문제라며 보충수업에 야간자율학습에 학원까지 더해져 학생들을 사지로 내몬다. 그렇게 쫓기고 쫓기다가 수능이 끝나면 대학의 등급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으니 일찌감치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그런 분위기 함께 오랫동안 지속되던 꿈 강요에서 벗어난다. 길고 긴 강요를 못 이겨낸 아이들은 ‘12년 의무 교육의 실패작’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사회에 나온다. 그때 나이가 20살이다.


    성인이 되고 모든 억압과 굴레에서 벗어나니 자유를 느꼈다. 범죄시 되던 술과 담배를 입에 댈 수 있으니 눈치 보던 습관들이 사라졌다. 강요에서 벗어나니 세상은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달랐다. 우리에게 그렇게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소리치던 담임 선생님이 지방의 이름 모를 대학 출신이라는 것과 대학을 가지 않은 고졸 출신 선배가 고깃집을 차려 포르쉐를 탄다는 것처럼 세상은 정해진 것 하나 없는 혼돈의 도가니였고, 그걸 깨달은 나는 배신감을 느껴 세상에 반항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이 뭘까.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누구를 만나던 내게 하지 말라고 하던 것.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이걸 한다고 하면 혼났던 것. 그래 그걸 해보자. 지금껏 나를 괴롭힌 세상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해서 세상에 복수하는 거야. 그렇게 나는 이십 대 중반에 예술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다. 재밌는 것은 이 글을 쓰는 내가 어릴 적 장래 희망인 검사에 필적할 만큼 예술로서 성공했다면 ‘거봐 세상은 잘못됐었고 내가 옳았어. 남들이 모두 예를 외칠 때 혼자서 아니오를 외쳤던 내가 우둔한 대중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친히 시간을 내서 이런 글을 쓴다’라는 분위기로 이 글을 써내려 갔겠지만, 다행히 나는 예술을 한 지 10년이 되는 지금도 인터넷에 이름 한 글자 나오지 않는 방구석 자칭 예술인으로 살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나는 ‘꿈을 가지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도, 성공하지 못해서 남아있는 그 공허함과 패배자라는 딱지를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범죄시 되던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다가 의사에게 강력한 제재를 받을 정도가 되니 꿈을 가지라는 말이 마치 ‘힘내!’와 같은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힘내.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마치 ‘네가 힘든 것은 아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도와줄 수는 없을 거 같아. 그래도 내 양심적 가책이 해소되지 않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와 같다. 그렇다. 검사가 뭐 하는 직업인지도 모르는 초등학생에게 장래 희망을 묻는 선생도, 채플 시간에 단상에 서서 연설했던 그 정치인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꿈을 가지라고 말하던 모든 이들도 그저 우리에게 그저그런 미지근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었다.


    보이는 것만 믿고, 믿는 것만 보는 세상이다. 학창 시절을 쥐어짜서 대학에 입학하고, 그나마 청춘이라는 시간에 꿈을 꾸고 나면 현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청년들이여 꿈을 가지라고? 독이 든 사과는 색이 곱다. 그래도 나는 아직 예술을 하고 있다. 앞서 말한 암울한 세상 속의 한 청년으로서. 지금껏 좁은 문틈을 통과하려고 피 튀기는 전쟁터를 돌았고, 지금도 꿈을 위해 경쟁 상대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지만 그 좁은 문틈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 멈추지 않은 것이 잘하는 짓인지 미련한 짓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바꿀 수 없는 내가 꿈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 망할 노력을 끝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꿈 강요'를 멈춰야 한다. 강요하는 자들이 원하는 그런 거창한 꿈을 이루진 못했어도, 내일 아침 나 자신을 위해 계란말이를 예쁘게 만들 수 있고 점심 식사 후 마시는 커피향에 오후를 버틸 수 있다. 우리는 젊으니 여전히 미숙하고 버티기 힘든 시기에 세상에 나온 것도 맞다.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그러니 무너지지 마라. 사회에 굴복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무기로 사회에 맞서라. 떠나가는 파도를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다가오는 다음 파도를 기다려라. 채플이 끝나고 청소시간에 마주친 학교 목사님께 물었다.

   “공부를 잘 해야만 사람인가요?”

   목사님이 내게 캐러멜을 주며 말했다. 공부를 잘하든 잘하지 못하든 우리는 다 같은 귀여운 학생이라고. 나는 그때 받은 그 캐러멜의 맛을 잊지 못 한다. 그때 느꼈던 캐러멜의 달콤함을 떠올리며 말한다. 꿈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우리는 우리 자체로 젊고 찬란하고 아름답고 멋진 청년이라고.


  ‘청년들이여 지금 세상은 먹고살기도 힘드니, 만약 이루기 힘든 꿈이 있다면 멈춰도 된다. 그게 싫다면 정말이지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노력하라. 이딴 글을 읽은 시간도 아까워하면서'


   만약 내가 꿈을 이뤄 책을 낸다면 위 문구를 머리말에 써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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