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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유닛, 새시대의 코어유닛

대전환은 코어유닛으로 출발해야 한다.

by 전하진

1980년대 메인프레임만으로는 인류의 컴퓨팅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듯, 오늘날 대도시만으로는 인류의 삶을 지속할 수 없다. PC라는 코어유닛이 등장해 디지털 세계가 폭발적으로 확장된 것처럼, 이제는 살림유닛(Salim Unit)이라는 사회적 코어유닛이 필요하다.


살림유닛은 공동체가 생존 기반(Zero Basic)을 함께 해결하고, 도시 기능(Urban Basic)을 내재화하며, 문화적 가치(Culture Basic)를 창조하는 새로운 삶의 기본단위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정책이나 현금 지원이 아닌, 생존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혁신이다.


도시와 살림유닛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한다. 도시는 문화와 기술의 허브로 남고, 살림유닛은 생존과 창작의 기지가 된다. 둘이 네트워크로 연결될 때, 사회 전체의 회복력과 창조력은 이전보다 훨씬 커진다.

살림유닛은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양극화·기술위협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의 코어유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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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을 위한 코어유닛

1980년대, IBM의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단언했다. "개인이 컴퓨터를 가질 이유가 없다. 중앙의 거대한 컴퓨터로 모든 계산을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다른 미래를 보았다. PC가 등장했고, 세상은 바뀌었다.


그렇다고 PC가 메인프레임을 없앤 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클라우드와 개인 기기를 동시에 사용하지만, 클라우드 뒤 편에서 메인프레임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PC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컴퓨팅 파워를 메인프레임이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PC라는 코어유닛이 개발되고, 통신망이 발달하면 디지털 세계는 천문학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여기에 AI까지 접목되면서 엣지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구조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의 엔비디아의 등극도 PC안의 CPU의 중요한 프로세스를 병렬로 분산처리하면서 새로운 코어유닛을 개발한 것이 폭발적인 AI 시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처럼 생태계 진화는 성장과 분산 그리고 고도화를 반복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도 똑같다. 대도시라는 메인프레임에 모든 것을 집중시킨 결과, 시스템 전체가 과부하에 걸렸다. 지역은 텅 비어가고, 도시는 포화 상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코어유닛이다.


도시 문제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기술위협 등에 동시에 대처할 수 있는 코어유닛을 설계하고 이를 실증하고 확산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문제다.



일자리 정책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중 절반 이상이 소멸위험지역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수십 년간 "일자리를 만들면 사람들이 온다"는 믿음으로 기업 유치에 매달렸다. 하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떠나고 있다.


도시는 어떤가. 수도권 청년실업률은 9%를 넘었다. 일자리는 있지만 그 일로는 도시에서 살 수 없다.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일해도 다음 달 월세가 불안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일자리의 14%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AI와 자동화가 확산되는 시대에 "일자리 창출"은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일자리 중심 정책은 구조적 한계에 도달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자리는 아마도 기계들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의미를 창조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시 말해 지구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돈을 벌기위해 수 많은 기업이 만들어 낸 것들이 과연 인류에게 또한 지구 생태계에 어떤 의미였던가. 쏟아지는 의류의 대부분은 우리 손에 오기도 전에 폐기된다. 우리한테 온 옷들도 잠깐 머물고 폐기된다. 그 폐기물은 산더미처럼 쌓여 결국 기후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노력이 과연 무슨 의미일지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생존 불안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6명 중 1명이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것이 시간당 약 100명의 사망과 연관되어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고립은 사망률을 29% 증가시키고, 심장질환 발병 위험을 29%, 뇌졸중 위험을 32% 높인다.


이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생존 불안 속에서 인간은 고립되고, 고립은 질병이 되며, 질병은 다시 생존을 위협한다. 악순환이다.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도 같다. 내일이 불안한데 누구와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겠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시위와 사회 불안도 마찬가지다. 일할 곳은 있는데 살기 힘든 상황, 그리고 아예 일할 곳 조차 찾기 힘든 절망감, 이것이 분노의 본질이다. 과거에 안정된 일자리로 여겼던, 변호사, 회계사, IT전문가 등 소위 말하는 고급인력들 조차 이런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기후위기가 우리의 삶터 자체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닐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물이 부족하고 강력한 허리케인이 출몰하고, 온도변화로 있는 농작물의 변화가 심해지고 있다. 세계 농작물의 25%가 물 부족 지역에서 재배되고, 담수 수요가 10년 내 공급을 40% 이상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현재 인구의 44%가 안전한 위생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20억 명 이상이 식수를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세계 식량의 절반이 물 부족 지역에서 생산되어 식량안보와 경제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5년 11월 발표한 Emissions Gap Report 2025: Off Target에서 “지구는 2035년 전후 1.5℃를 초과할 것”이라며, 기존의 ‘기후위기’ 단계를 넘어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2100년까지 2.8℃ 상승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한민족의 살림문화와 우리의식(We-nees)

한국 고유어 ‘살림(Salim)’은 한국의 오랜 생활철학이자 생명문명의 근원적 언어로, 인간과 자연, 공동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살림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살리고 순환시키는 삶의 태도이며, 하늘·땅·사람의 조화를 중시한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타자를 살리고 공동체를 살려야 비로소 나도 살 수 있다‘관계적 존재의식’이 담겨 있는 한국인의 생활양식 깊은 곳에 뿌리내린 핵심 가치다.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Weness)'라는 말, 심지어 '우리 남편', '우리 아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타인을 남이 아닌 ‘확장된 나’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살림 문화와 우리 의식은 한민족이 수천 년간 겪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농업화에서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에 이르기까지, 세계가 놀란 한국의 대전환과 성공의 이면에는 바로 이 힘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국가적 위기였던 IMF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은 나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살림 정신의 결정적 발현이었다. 전 세계 유례없는 한민족의 회복력(Resilience)과 성공 신화는 결국 살림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우리 의식’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살림문화는 소유보다 순환을, 경쟁보다 돌봄을, 효율보다 관계를 중시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이미 구현해왔다. 특히 우리 어머님들의 살림은 생명을 조율하고 공동체를 돌보는 생명력의 원형으로 작동했으며, 농사와 의례, 음식과 주거, 두레와 품앗이 같은 전통은 모두 생명을 이어주는 기술이자 관계를 살리는 실천이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는 생태적 감수성과 공동체적 윤리를 동시에 발전시켰다. 따라서 ‘살림’은 과거의 생활양식이 아니라, 생명을 중심으로 문명을 재정립하는 철학적 선언이며, 오늘날 살림로직과 살림자본주의의 뿌리가 되는 한국적 지속가능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류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위한 키워드로서 손색이 없으며 이러한 살림문화가 최근의 K-문화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바로 오늘날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철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류에게 닥친 복합위기를 해결하려면

인류에게 닥친 기후위기, 양극화, 기술위협 등은 인류문명의 대전환을 위한 문명적 산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대전환의 핵심 키워드로서 ‘살림’을 ‘지구와 생명을 살리는 생존 행위’로 재정의하고, 이를 ESGG(Ethical Sustainable Global Good)라는 프레임워크로 활용하여, 보편적 지구 윤리 기준(Global Ethics)으로 격상시키고,


전 세계 어디에나 이식 가능한 ‘살림유닛(Salim Unit)’을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 살림유닛은 탄소 감축과 돌봄, 그리고 자원 순환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지구 회복 센터’이자, 파편화된 개인들을 ‘새로운 우리(New Weness)’로 묶어내는 실천적 공간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러한 살림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확장은 ‘살림자본주의’ 시스템을 통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적 가치(ESGG), 물리적 거점(살림유닛), 그리고 경제적 유인(살림자본주의)이 결합된 살림로직으로

머니로직을 뛰어넘는 대전환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살림유닛, 생존 레이어를 재설계하다

살림유닛(Salim Unit)은 공동체가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상호 부조하여 해결하고, 개인이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지속가능한 삶의 코어유닛을 의미한다. 에너지·식량·자원을 자급하고,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일·문화·자본이 선순환하는 자급·자율·자생형 생태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마을, 선박, 지자체, 기업, 산업단지, 학교 등도 이제는 새로운 구조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즉, 인간과 자연, 기술과 문화가 하나의 생명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삶의 코어유닛을 다시 구축하자는 것이다.


핵심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먹거리, 에너지, 주거, 돌봄 같은 기본 생존을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면, 개인은 생존 불안에서 벗어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은 Universal Basic Income(UBI)의 현물 버전이다. 현금을 주는 대신, 공동체가 생존 기반을 함께 만든다. UBI보다 인플레이션에 강하고, 공동체 회복이라는 부가 효과까지 있다.


살림유닛은 세 개의 요소로 구성된다.


Zero Basic(지속가능한 인프라 ; 생존 자급) — 태양광 패널과 소형 풍력으로 에너지를 자급한다. 스마트팜과 공동 텃밭으로 기본 먹거리를 생산한다. 공동 주거와 리모델링으로 주거비를 획기적으로 낮춘다. 육아와 노인 돌봄을 품앗이로 해결한다. 이것이 생존의 기반이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최소 조건을 해결한다.


Urban Basic(도시 기능 내재화) — 통신망과 교통수단을 통해 도시 기능을 내재화한다. 원격 의료 및 교육 그리고 비즈니스도 가능해 질 수 있다. 물리적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디지털로 연결된다. 살림유닛의 네트워크화로 분산고도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Culture Basic(의미창조 인프라;새로운 가치 창조) — 생존이 안정되면 인간은 창조한다. 경쟁이 아닌 협력, 소비가 아닌 순환, 성장이 아닌 공존의 문화를 실천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창작물, 실천 기록, 생태적 성과가 새로운 경제 가치가 된다. 이것이 문화의 전환이다. 살림유닛에서 창조되는 가치는 우리가 상상하기 조차 힘든 것들일지도 모른다.


지역과 공존하는 기업을 만드는 데 열중하는 청년 기업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매우 희망적인 일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투자자가 유니콘을 키우겠다고 혈안이 되었는데 반해, 얼룩말 기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추구한다.


얼룩말 기업은 환상 속의 유니콘처럼 비현실적인 '독점과 급성장(머니로직)'을 좇는 대신, 흑과 백의 무늬처럼 '수익 창출'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며 공생하는 기업을 뜻한다.


살림로직(순환·공존·자율)을 바탕으로, 나 홀로 1등이 되기보다 무리 지어 서로를 지키며 끝까지 살아남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존하고 건강한 기업 모델이다.


이들의 자본은 지역에 머물도록 설계되면 지역 기업들이 무리를 이뤄 서로 도움을 주고 받도록 구성된다. 이를 위해 벤처스튜디오(VS)지역관리기업(AMC)라는 독특한 지원 기업도 함께 구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매년 로컬브랜드페어 를 통해 공동의 아젠다를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다.



살림유닛은 다양한 단위로 가능하다.

살림유닛은 다양한 단위로 실증될 수 있다. 도시내의 아파트단지, 인구소멸지역, 위기의 대학, 산업단지 등 가장 상징적인 실증 대상으로 크루즈선박도 가능하다. 기술적으로는 우주선이 이미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아파트단지라면 옥상과 공용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공동 텃밭을 만든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로컬푸드를 공동 구매한다. 육아와 노인 돌봄을 이웃끼리 품앗이로 나눈다. 공유 공간에서 문화 활동을 함께한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를 자급 자족에 투자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아실현에 투자하는 삶을 상상해 보라. 대도시의 문화와 인프라는 그대로 누리면서, 생존 불안만 해소하는 것이다.


지방 살림마을은 더 많은 자급이 가능하다. 땅이 넓으니 식량 자급률이 높고, 에너지 생산도 여유롭다. 하지만 고립되지 않는다. 고속 인터넷으로 세계 최고 대학의 강의를 듣고, 원격 의료로 서울 대학병원 전문의에게 진료받는다. 주말엔 KTX로 서울 공연을 보러 간다.


크루즈가 살림유닛으로 전환된다면 어떨까. 크루즈는 단순한 여행 수단이 아니라, 바다 위에서 이동하는 작은 도시이자 공동체적 생활 단위로 기능할 수 있다. 선내에서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하고, 의료·교육·안전망을 갖춘다면 Zero Basic을 충족할 수 있다. 상점·행정·통신망을 통해 Urban Basic을 제공하고, 공연·도서관·공동체 활동을 통해 Culture Basic을 실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크루즈는 단순한 관광 산업을 넘어, 지속 가능한 생활 구조의 실험실이 된다.


살림대학을 상상해보자. 캠퍼스에 태양광 패널과 스마트팜이 있다. 학생들은 주당 10시간 공동 노동으로 기본 생활을 해결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들이 이러한 공동체 삶을 통해 연대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지금 대학생들은 4년간 수천만 원을 쓰며 빚을 진다. 졸업 후엔 그 빚을 갚기 위해 원치 않는 일자리에 매달린다. 배움은 사치가 되고, 청춘은 생존 게임이 된다. 만약 생존걱정이 사라진다면 학생들은 배움에 더 집중한다. 취업 걱정 없이 순수 학문을 탐구하고, 예술을 실험하고, 사회 문제를 고민한다. 공동체 안에서 협력하고 토론하며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19세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칼리지 시스템과 비슷하다. 학문 공동체가 기본 생활을 함께 해결하며 지적 탐구에 집중했던 그 모델. 21세기 기술로 이것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살림유닛은 도시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도시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생존은 유닛에서, 문화는 도시에서. PC와 클라우드가 협력하듯, 살림유닛과 대도시가 협력한다.


또한 살림유닛은 살림마을 뿐만 아니라 살림기업, 살림선박, 살림대학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지구촌 어디에서도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한 살림유닛으로의 전환은 인류의 다음 문명의 코어유닛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살림유닛은 산업전환의 추동력 될 수 있다

살림유닛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인 분산형 인프라 구조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단위 플랫폼이다.


에너지·데이터·식량·주거가 중앙집중 방식에서 단위별 자급·자율 구조로 전환되면서, 기존 시스템이 가진 비효율·고비용·취약성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는 곧 4차 산업혁명의 전제 조건인 안정적 전력 공급, 저비용 인구 기반, 지역 데이터 확보, 생활 인프라의 탄력성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AI 데이터센터의 폭증하는 전력 수요,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소비 기반 붕괴, 글로벌 공급망 불안 같은 구조적 리스크를 분산 단위에서 완화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 전체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살림유닛은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인 개인 단위 생산성·혁신 역량 강화에 직접 기여한다.


주거·에너지·식량·이동비 같은 생존비를 대폭 낮춰 개인이 기술 학습·창업·재교육·AI 활용에 투자할 여력을 만들고, 분산형 AI·IoT·스마트팜·로봇 기술을 실제 생활 공간에서 운영함으로써 지역 단위의 실험·혁신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는 PC가 개인 단위 혁신을 폭발시켜 디지털 산업혁명을 만들었던 것처럼, 살림유닛이 생활·생산·에너지의 ‘PC’ 역할을 하여 4차 산업혁명 전체를 가속하는 효과를 낳는다.



살림자본주의,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그러면 어떻게 돈을 벌지?"라는 질문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낡은 질문이다.


살림유닛은 삶의 의미를 재설정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미래의 삶은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충만한 일상의 반복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로서 명예나 부가 따라온다면 그것은 부가적인 것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이 목적이 아니라 덤이 되면, 일상의 매 순간이 삶 그 자체가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거대한 관성을 갑작스럽게 멈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은 바로 이 거역할 수 없는 관성에 있다. 결국 자본주의는 공황이나 전쟁과 같은 파괴적 상황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전환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살림유닛은 이러한 파괴적인 전환이 아닌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하는 중요한 촉진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살림유닛을 촉진하기 위해 살림유닛 그 자체를 상품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살림유닛의 탄소감축량, 자급률 등의 정량적 평가 기반과 살림서사 등을 포함한 살림명품을 만들어 유통시키자는 것이다.


어떻게 자급 기반을 만들었는지, 공동체가 어떻게 갈등을 해결했는지, 어떤 문화를 창조했는지. 이러한 살림유닛의 서사는 앞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ESG처럼 살림유닛의 프레임워크로서 ESGG (Ethical Sustainable Global Good)를 활용하여 이와 같은 서사를 정량적으로 평가하여 훌륭한 살림유닛가치를 상품화하여 트로피 자산(Trophy Asset)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ESG를 실천하려는 기업, 새로운 가치를 찾는 슈퍼리치,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원하려는 지자체. 이들이 살림명품을 구매하면 그 수익의 일부는 해당 살림유닛에 제공한다. 살림유닛은 이 돈으로 자급 인프라를 더 단단히 한다. 선순환이다.


살림유닛 브랜드 자체도 프리미엄이다. "이 쌀은 탄소 배출 제로 마을에서 공동체가 유기농으로 재배했습니다"라는 스토리는 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을 받는다. 윤리적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존재한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더 절실하다

살림유닛 모델이 진짜 빛을 발하는 곳은 개발도상국이다.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국가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전통적인 산업화 경로(석탄화력 → 제조업 → 도시화)는 기후협약 때문에 막혔다. 거대한 발전소와 송전망을 건설할 자본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청년들이 도시로 몰려들지만 도시도 일자리가 없다. 그런데 소수의 기득권자들은 호화로운 삶을 사는 것을 목격한다. 전 세계에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난 후에 이 격차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네팔, 필리핀, 멕시코, 마다가스카르 등 각국으로 양극화 등에 의한 시위 사태가 격화되고 네팔이나 마다가스카르는 정부가 전복되었다.


잔 세계 상위 1%가 45%의 자산을 가진데 반해, 하위 50%가 단 2%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다. 슈퍼리치나 각 국가들의 지배, 성장, 경쟁의 머니로직에서 벗어나 살림, 풍요, 윤리의 살림로직으로의 전환이 없이는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살림유닛은 혁명이 아닌 혁신으로 새로운 경로를 제공한다. 마을 단위로 태양광 패널과 소형 풍력을 설치하면 된다. 거대한 송전망 없이도 전기가 들어온다. 스마트폰으로 5G에 연결되면 교육과 의료에 접근할 수 있다.


초기 투자는 적고, 탄소는 배출하지 않으며, 외부 의존도는 낮다. 각 마을이 자급 기반을 갖추면 국가 전체의 회복력이 높아진다. 기후 재난이 와도, 경제 위기가 와도, 각 마을은 생존할 수 있다.


한국이 살림유닛을 실증하고 체계화하면, 이것은 글로벌 사우스에 수출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 패키지가 된다. 단순히 원조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자립 모델을 공유하는 것이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살림유닛은 먼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현실적 프로젝트다.


완주군의 로컬푸드 운동, 전주의 에너지 전환 시도, 태백의 탄탄마을, 수원행궁동, 서울 성미산마을의 공동육아 실험 등 이미 살림경제의 싹은 자라고 있다. 이것들을 하나의 통합 모델로 체계화하고,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첫 단계는 파일럿 프로젝트다. 혁신적인 지자체 한 곳, 실험적인 대학 한 곳, 도시 아파트 단지 한 곳에서 3년간 실증한다. 생활비 절감률, 공동체 만족도, 탄소 감축량, 살림NFT 시장 반응을 측정한다.


성공 사례가 나오면 확산은 빠르다. 청년들이 "여기서는 생존 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 모여든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살림마을 인프라를 구축한다. 기업들이 ESG 실천을 위해 투자한다.


10년 후, 전국에 수백 개의 살림마을이 네트워크를 이루게 된다면. 지역은 다시 활력을 찾고, 도시는 생존 경쟁의 압력에서 벗어난다.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살며 창작과 혁신에 몰두한다.



문명의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자

인류는 여러 번 운영체제를 바꿔왔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농경에서 산업으로. 지금 우리는 다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화와 도시 집중의 시대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기후위기, 양극화, 고립과 불안, 지역소멸. 이것들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시스템의 서로 다른 증상이다.


살림유닛은 새로운 운영체제의 기본 단위다.

살림유닛 없이는 지속가능한 미래도 불가능하다.

지역소멸과 도시 불안을 해결하려면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생존 구조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돈을 벌어 생존하는 구조에서, 공동체가 생존을 함께 책임지는 구조로. 경쟁과 소비의 문화에서, 협력과 순환의 문화로.


한국이 이 전환을 먼저 실증하고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 우리는 압축 성장의 경험도 있고, 동시에 그 부작용도 뼈저리게 겪었다. 농촌과 도시의 위기를 동시에 겪은 나라는 많지 않다. 이것이 오히려 기회다.


살림유닛은 도시를 없애지 않는다. 도시와 함께 진화한다. 대도시는 문화와 기술의 허브로 남고, 살림유닛은 생존과 창작의 기지가 된다. 둘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이전보다 훨씬 큰 사회적 컴퓨팅 파워를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첫걸음이다. 한 마을, 한 대학, 한 기업, 한 선박에서 시작하자. 3년 후, 세계는 우리가 만든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될 것이다.



살림유닛은 다양한 이익을 제공한다.

우선 구성원들의 삶을 안정화될 것이다. 돈을 벌어 모든 것을 해결하는 현재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초생할을 공동체가 함께 해결함으로써,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투자하고 싶은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AI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만약 살림유닛이 크게 확산되면 분산발전의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기존의 발전전력을 AI 용으로 대체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국가적인 에너지 자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에너지 뿐만 아니라 식량도 상당 부분 자급이 가능하게 되면 국가적 회복력이 강화되어 기후위기 대응력이 좋아질 것이다.


지역이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젊은이들도 터전을 옮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대응력을 높이고, 수 많은 기후테크 기업들의 기술 혁신을 유도하여 대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공동체를 회복하고 사회적 연결을 확장하여 새로운 사회 문화를 촉진하다. 이것은 비단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 국가 등 전 세계 시민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돈을 버는 머니로직에 의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확산하는 살림, 풍요. 윤리의 살림로직을 위한 기술 혁신이 활성화 될 수 있다.


이 처럼 복합적인 기대효과를 가진 살림유닛의 실증과 보급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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