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 두발자유화를 외쳐야만 하는 이유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는 긴 머리가 정말 안 어울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려서 머리를 잘라본 적이 없기 때문에 벌써 3번째 장발을 시도 하고 있다.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서 장발이 얼마나 힘든지 그 저항일지를 써보고자 한다.
첫 시도는 19살 때였다. 0교시는 폐지되었지만 아직 야간자율학습과 두발제한은 있던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여러 이유가 맞물렸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기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야간“자율”학습인데 왜 강제적으로 하냐고 대들었다가 담임한테 핏물이 터지도록 맞았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그 후로 수능을 준비하면서 머리를 열심히 길렀다. 하지만 이젠 집에서 문제였다. 아직까지 여드름이 났던 시기였는데 가족들은 머리카락의 더러운 것이 피부에 닿아서 여드름이 나는 것이니까 머리를 자르면 여드름이 없어진다며 노래를 불렀다. 김병지처럼 울프컷으로 선회했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다 잘랐다.
대학에 와서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머리를 기르지 못했다. 장발을 해보고 싶었지만 장발을 하면서 못 생긴 얼굴이 더 못 생겨지니까 소원 성취 vs 솔로를 고민해야 했다.
“남자는 깔끔해야 해. 한영이 넌 깔끔해서 좋아.”
이 말을 들으며 연애를 했는데 어떻게 감히 장발을 시도 할 수 있겠는가. 아, 20대 때 한 번 해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여자 친구는 그걸 사랑으로 걸고 넘어졌다.
“머리 기르고 나랑 헤어질래?, 머리 자르고 나랑 사귈래?”
그러다 두 번째 시도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였다. 역시나 많은 물음이 뒤따랐다. 의외로 물어보지 않는 세대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들은 청년시절 장발의 낭만이 있던 사람들이라 나의 장발시도를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를 포함한 20대가 더 참견이었다.
“나는 원래 뭐 공부할 때 머리 길러. 수능 때도 그랬어.”
“하... 그러면 논문 내고 나면 자르는 거지?”
결국 논문을 내자마자 약속대로 머리를 잘랐다. 오직 여자친구를 위해서.
생각해보니까 어떤 사람은 내 장발을 보고 이런 말도 했다. 논문준비 당시 나는 181cm에 몸무게가 97kg까지 나갔는데 그 사람은 진심어린 충고라며 술을 핑계 삼아 이런 말을 했다.
“돼지는 머리 기르면 안 돼. 턱이 더 도드라진다. 살을 빼던가, 머리를 자르던가 해. 진짜 지금 쒯이야.”
그래서 논문을 낸 후 머리도 잘랐고 몸무게도 78kg까지 뺐다.
올해 나는 다시 장발을 시도하고 있다. 얼마 전에 얘기했던 곧 결혼한다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가 되니 굳이 머리 잘라야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논문 썼을 때 길러보지 않았느냐 물어볼 수 있다. 핑계를 대자면 투블럭에서 기른 머리라 옆머리가 없어서 진정한 장발이 아니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왜 이걸 또 변명하고 있어야 할까? 내 머리 내가 기르고 싶어서 기르는 건데....
얼마 전, 팀 회식이 있었다. 장발 8개월 차. 옆머리가 턱까지 내려왔다. 여초직장을 다니고 있기에 우리 팀은 팀장, 과장, 나 이렇게 3명만 남자였고 6명은 여자였다. 한 여직원이 모두가 궁금해 하는 그 말을 물었다.
“한영 쌤, 근데 머리 왜 길러요?”
어찌 올해는 이 말을 왜 안 듣나 했다. 마치 모두가 개비스콘을 한 사발 들이킨 것처럼 물고가 터졌다. 나는 거기서 열심히 이유를 만들어내야 했다. 여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장발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남자인 팀장과 과장이 정리하려 했지만 그 주제는 끝나지 않았다.
“왜? 김지석도 머리 길렀잖아. 잘 어울리던데,”
“김지석은 잘 생겼잖아요. 잘 생긴 애들은 머리 길러도 돼요.”
“한영이도 못 생기진 않았어.”
“못 생기지 않은 거잖아요. 잘 생겨야 한다니까요.”
“한영 쌤, 나중에 결혼하고 나면 머리 자를 거죠?”
“한영 쌤, 머리 어디까지 기를 거예요?”
여초에서는 이게 가벼운 술자리 토크 일 수 있지만 상대인 나는 전혀 배려하지 않은 말이었다.
“숏컷은 고준희처럼 예쁜 애들만 잘라야 해.”
이걸 남성이 여성에게 꺼냈다고 가정하면 쉽게 웃으면서 넘길 문제일까?
“머리 몇 센치까지 자를 거에요?”
여성의 숏컷에 대해 이렇게 물으면 아무렇지 답할 수 있을까? 아무리 술자리지만 상당한 기분이 나빴고 나는 나대로 어필했다.
“이게 칭찬이에요? 욕이에요? 머리 기르는데 얼굴로 허락 받아야 하고... 전 그러면 일단 합격이에요?”
그러자 그들은 말한다.
“농담한 것 가지고 왜 정색해요. 분위기 망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