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작은 아씨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0분만 봐야지 했다가 단숨에 10화까지 몰아보았다. 그리고 금일이 토요일이라는 걸 깨닫자, 11화를 볼 수 있다는 기대에 취해 있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첫인상이었다. 최종 빌런이 알고 보니 페이크 빌런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최종 빌런은 얼마나 강력한 존재라는 뜻일까?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청자 반응을 살폈다. 다들 ‘웰메이드’ 스릴러 장르라는 평을 남겼다. 급기야 모 유명 영화평론가는 <작은 아씨들>을 ‘진짜’ 여성 스릴러라고 평했다. 평론가는 <차이나타운>(한준희, 2015), <미옥>(이안규, 2017), <악녀>(정병길, 2017), <마녀>(박훈정, 2018) 등 작품을 통해 여성 서사를 시도 했으며, <작은 아씨들>에 와서 단순히 성차를 바꾼 것을 넘어 여성 서사가 완성 되었다고 평했다. 남성이 필요 없는 서사라기엔 ‘턱시도 가면’ 최도일(위하준)이 걸리긴 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 작품인 건 알기에 넘어갈 법 했다.
올해 이미 최고의 작품으로 <나의 해방일지>(각:박해영, 2022)를 일찍부터 점찍은 나는, <작은 아씨들>을 2위로 꼽아둔 상태였다. 10화에서 박재상(엄기준)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자마자 자살을 하고, 11화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화영 언니(추자현)가 돌아왔다. 이 미친 전개에 감탄하면서 도대체 최종 빌런인 원상아(엄지원)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진짜” 여성 스릴러의 마침표가 기대된다고 술자리에서 이 작품은 미친 작품이라며 꼭 보라고 열변을 통했다.
하지만 천만다행이었다. 드라마는 용두사미가 워낙 많다는 걸 알면서도 설마 <작은 아씨들>마저 그럴 줄 알았을까? 술에 취해서 SNS에 <작은 아씨들>을 찬양하지 않았던 것이 천운이었다. 어떻게 마지막 회, 딱 1편에서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참 많은 물음이 남는 결과였다.
<작은 아씨들>은 ‘닫힌 방’으로 표현되는 원 씨 집안에 가난한 세 자매가 들어가면서 진실을 파헤치는 스릴러 장르이다. 장녀 오인주(김고은)는 어느 날 친한 직장 동료의 자살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하는데 고인이 자신 앞으로 20억을 남겨주면서 갈등한다. 20억을 갖게 되면 본인이 위험해 지는 걸 알면서도 20억이면 남부럽지 않게 집안을 살릴 수 있다는 욕심을 부린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고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오인주는 기꺼이 목숨을 걸겠다고 말하고 동생이자 기자인 오인경(남지현)은 정의를 위해 그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막아선다.
진실에 다가설수록 자매는 원 씨 집안의 원기선 장군과 그의 사조직인 ‘정란회’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 정란회는 조직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잔악무도한 곳이지만 오인주는 화영 언니의 죽음을 파헤치고 그가 숨겨놓은 700억을 훔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오인경은 정란회의 지령을 받고 서울시장이 되는 박재상을 막기 위해 기자로서 물고 늘어진다.
영화 <해빙>의 주인공 변승훈의 말을 빌려 “스릴러는 단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매력이 있는 장르다. 서울시장 당선자가 당선 당일 자살을 하게 만드는 '정란회'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작은 아씨들>은 그런 충격적인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준비했어야 했다. 기이한 미장센으로 보여주는 왜곡된 상류층 원 씨 집안, 베트남 전쟁에서 태생한 ‘정란회’,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겠다는 위선의 서울시장 후보를 통해 <작은 아씨들>은 대한민국의 메타포를 표현한 작품이다. 범죄를 눈감을 수 있는 20억 원, 목숨을 걸 수 있는 700억 원으로 끝없이 주인공을 흔들면서 작품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마지막 12회, 이제 최종 빌런 원상아를 통해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는 암 덩어리가 무엇인지 철저히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단순히 사이코패스의 히스테릭이라고? 차라리 원기선 장군님 부활하시는 게 나을 수준이었다. 처참했다. 이는 단순히 무매력의 빌런 캐릭터 수준이 아니다.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정란회를 긍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정란회는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부를 축적한 집단이다. 성공한 사업가로 주인공 자매에게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쳤던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마저 정란회에 몸을 담아 부자가 된 경우였다. 그런데 정란회의 수뇌라는 원상아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정란회를 움직이는 존재였다. 이에 원기선 장군의 최측근인 장사평(장광)은 정란회를 지키기 위해 장군의 딸을 배신하고 이런 저주를 퍼붓고 살해당한다.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넌 절대 안 되는 이유. 넌, 미친년이잖아.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넌 손에 닿는 건 전부 부서뜨리는,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진짜 미친년이야. 맞지?”
정란회는 순전히 무능력한 지도자의 사리사욕으로 무너진 것이지, 정란회 자체가 없어져야할 만악의 존재로 표현되지 않았다.
또한 죽었는지 살았는지 끊임없이 시청자와 밀당을 했던 화영 언니, 진화영도 납득하기 어렵다. 700억 원 비자금을 횡령한 이유는 사이코패스 원상아와의 개인적인 갈등 때문에 저지른 일이며, 정말로 횡령해서 제2의 인생을 살고파서였다. <비밀의 숲>(각:이수연, 2017)의 ‘창크나이트’ 이창준(유재명)의 동기에 비해 초라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오인주는 횡령의 일부 책임으로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엔딩에서 고모할머니께 아파트를 선물 받고, 턱시도 가면의 도움으로 결국 그 비자금 700억의 일부인 300억을 받고 동생인 오인경은 700억 중 100억 원을 받는다. 언니가 행복해지면 좋겠다는데, 300억 원이면 집행유예 받아도 할 만한 장사겠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엔딩이면 사람들이 “위선 떨지 말고 본능에 충실 하라.” 말하는 장마리(공민정)을 보고 ‘그저 혐인경, 퀸마리’라는 말을 하지 않겠는가.
한국 영화에서 여성은 “미녀 아니면 악녀 그 외에는 모두 침묵하는 여성”이라는 비판이 있다. 십분 동의하는 비판이지만 과연 <작은 아씨들>의 “진짜” 여성 작품이라 할 만큼 완성도가 있는지... 너무 성급한 결론은 아니었는가 싶다. 물론 나 역시 속았으니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역시... 드라마는 마지막 회까지 침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