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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동칠층 Jun 30. 2023

만족해서 행복하구나

이것저것 생각정리 하나

개인적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만족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뭐랄까. 행복은 오로지 긍정적인 감정과 상황만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오히려 강박적이고 비타협적인 느낌을 받는다. 만족은 그보다 더 담백하고 차분해서 역설적으로 더 행복해 보인다 할까?


여하튼 요즘은 샤워 후 뽀송뽀송한 몸으로 작은 선풍기를 틀어 놓고서는 (회전을 해두지만 와이프와 아들이 좀 더 많은 지분을 가지지만) 한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짧은 20분 내지의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마음이 꽉 차는 시간이다. 행복이 뭐 별거냐 하는 순간이다.


나누는 대화의 주제라면, 그냥 각자의 하루가 어땠는지를 묻는 것이 대부분인데, 4살인 아들이 유치원에서 가정으로 보내는 일종의 지령과 같은 짧은 한 문장을 읊어주는 것이 이 시간의 하이라이트이다. 제일 기다려 왔던 시간.


'오 늘 의    언 어 전달은   거 미 가   줄   을 타고   올 라   갑니다   입니다."

눈알을 굴려가며 선생님께 들었던 문장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 문장 속에는 오늘 하루 아들이 유치원에서 어떤 것을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오늘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노래 배웠구나?"

"네!"

"그럼 아빠한테 불러줘 봐."

"아니 나는 이제 잘 건데?"

"하하 아 그래? 알았어 다음에 해줘."

"근데, 우리 오늘 곤충 못 잡았잖아..."

"아 그렇지... 뭐 잡아야 한댔지?"

"황금사슴벌레!"

"아? 그런 게 어딨어? 그게 진짜 있는 거 맞아?"

"어어 진짜 있어"

"거짓말"

"아니야아! 진짜 있어어"

"알았어 알았어 다음에 잡으러 가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면, 기다란 베개를 품에 끌어안고서는 순식간에 잠이 들어버린다. 고요하고 컴컴한 방 안에서 아이의 느리지만 커다란 숨소리가 시작되면 결국은 하루의 끝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야, 나는 그냥 지금이 참 좋다? 감사해 뭔가."

"뭐야 뜬금없이"

"아니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서 소소한 이야기로 잠이 드는 이 자체로 나는 만족해."

"맞아 감사하지"

"내일도 잘 보내보자"


당연한 보통의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임과 동시에 선물과도 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행복의 기준이 어떤 기쁨과 성취의 영역이 아닌 지금에 대한 감사와 만족에 기대야 한다고 본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나, 충분하다 느끼고 있는 이 만족감이 좋다. 토닥토닥 잠들기 전 두들기는 스마트폰 위의 손가락 사이에 선풍기의 바람이 파도같이 밀려온다. 음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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