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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동칠층 Jul 01. 2023

지나가는 마음이야

이것저것 생각정리 둘

잘 누리고 있다고, 잘 지켜내는 마음이라고 믿고 있던 순간에 보란 듯이 마음이 어려워지는 날이 있다. 올 거라고 미리 연락이라도 해줬으면, 준비도 하고 대비도 할 텐데... 눈치를 챌 틈도 없이 어디선가 흘러들어와서 마음 구석에 고여버린다. 


이번엔 해외 출장이 문제였던 것 같다. 당장 완성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어느새 예정된 출장일이 다가와 버렸다. 몇 가지 일은 마무리해놓고 후련하게 김포공항에 가려 했는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던 엄마의 냉소적인 말투와 그 순간 미간을 찌푸리던 아빠가 갑자기 생각났다. 아, 우리 아빠가 딱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일정 내내 밀린 일을 언제 처리해야 하나 조바심을 내면서도 출장 업무를 문제없이 잘 처리해야 하는 욕심이 계속 충돌했다.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 와중에 출장지에서 출중한 역량을 뽐내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초라한 마음이 불쑥불쑥 자라났다. 뭐, 어찌어찌 출장 업무는 구멍 없이 잘 처리했지만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대책 없이 마음이 축 늘어졌다. 대책 없이 비에 젖은 옷처럼 무겁고 꿉꿉했다.


집에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와이프는 그 마음이 들여다 보였던 것 같다. 


"고생했어, 피곤한 건 아닌 것 같고 패잔병의 얼굴 같군." 

"아니 뭐, 간만에 또 시작이지 뭐."

"왜 무슨 일 있었어?"


출발 전부터 꺼내놓지 못하고 혼자 굴려놓던 마음의 눈덩이를 멈춰 세우고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마음들을 와이프에게 전했다. 내가 결혼을 참 잘했구나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의 결점과 실수를 부끄럼 없이 꺼낼 수 있는 와이프를 만났다는 점인데, 어려운 마음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그럴 수 있다며 꺼낸 와이프가 한마디가 바로 그것이다. 


"자기야, 지나가는 마음이야."

"어?"

"그냥 그렇게 흘러 들어온 마음들은 또 그냥 지나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니까 너무 메여 있지 말라고."

"그게 돼?"

"뭐, 그냥 심플하게 속으로 생각하는 거지. 아. 지나가는 마음이구나."


그래, 지나가는 마음구나. 그래.. 지나가는 마음이야.

마음의 눈덩이가 녹는다. 그간 고여있던 것들이 눈에 녹아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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