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지털 감시를 공부한다.
박사공부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무슨 연구를 하시나요?",
"박사연구 주제가 무엇인가요?"
아주 간략한 답이 필요할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디지털 감시를 연구합니다."
내가 간략하게 대답하더라도 대화를 거기서 마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개 흥미로운 표정으로 되묻는다.
"디지털 감시요? 흥미롭게 들리네요."
"어떤 감시를 공부하시는 건가요?"
"디지털 감시라는 분야도 있나 보군요."
감시도 학문의 한 분야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경영학, 정치학, 신학처럼 오랜 시간 학문으로서의 기틀을 공고하게 다져왔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Surveillance Studies라는 이름 아래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며 학문 분야를 키워가고 있다. 특히 영국, 캐나다, 그리고 네덜란드, 스위스 등과 같은 유럽국가에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시간을 기준으로 긴 수직선을 그린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접목할 수 있는 분야를 기준으로는 아주 긴, 혹은 끝없이 뻗어나가는 수평선을 그리는 분야라고 설명할 수 있다. 법학, 윤리학, 사회학, 범죄학, 정치학, 정책학, 경영학, 컴퓨터공학, 인공지능, 예술 등 다양한 학문분야와 접점을 가지며, 실제 각 학문에 기반을 둔 학자들 중 감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융합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도 많다.
감시를 학문의 한 분야로 보았을 때는 생소한 느낌일 수 있지만 사실 현재 우리는 '감시국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감시 혹은 감시 기술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감시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기술은 CCTV 카메라 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시기술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나라가 그 어느 나라에 뒤처지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영국인 친구를 만나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한국으로 발령을 받게 되어 한 달 후쯤부터는 거주지를 옮길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친구가 어느 지역에 거주하면 좋을지 나에게 상의하면서 본인이 설치한 네이버 맵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지도설정에서 CCTV를 선택하더니 서울 한복판의 실시간 CCTV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것 봐, 여기 카메라 이미지가 있는 곳은 실시간으로 CCTV 화면을 볼 수 있어! 빅브라더의 나라인 우리도 이 정도는 아니야!"
순간, 아찔했다. 영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우리나라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자주 이용할 일이 없었기에 이런 신기능(?)이 추가된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걸 한국의 좋은 점으로 설명해주어야 할지 좋지 않은 점으로 설명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감시는 양면이 있기 때문이다. 범죄 상황이나 혹은 사실 규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훌륭한 보조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감시는 우리의 근본적인 권리나 자유, 프라이버시 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시간 CCTV 화면을 보여주는 친구의 얼굴도 그리 긍정적인 표정은 아니었다. 이처럼 감시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어쩌면 그 어떤 학문보다 친숙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분야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학문 분야임에는 틀림없다. 모든 대학의 교과목명을 확인해 본 것은 아니지만 '감시' 혹은 'surveillance'가 들어간 과목명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술논문이나 도서도 마찬가지이다. 디지털 감시에 관심을 가진 순간부터 많은 논문이나 책을 찾아보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논문이나 도서는 극히 드물었다. 감시를 주 연구분야로 내세우는 학자도 거의 없다. 후에 더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한국의 디지털 감시기술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해 주실 만한 교수님을 애타게 찾아보았지만, 한국에서는 내가 연구하기 원하는 주제를 지도해 주실 수 있는 교수님을 찾을 수 없었다.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한국에 다시 돌아와 공부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였지만 결국 다시 영국에 박사를 공부하러 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시라는 학문 분야의 인프라가 없는 것과 다름없기에 이 분야를 나의 박사연구 분야로 선택하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사를 시작하게 되면 그 끝이 있을 텐데 만약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커리어를 쌓고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면?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답을 끝까지 찾고 박사를 시작하려고 했다면 지금쯤 아마 다른 주제를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당장 답을 찾거나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본질로 돌아가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적지 않은 3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박사 공부를 시작하며 '교수가 되겠다', '연구자가 되겠다'는 목표보다는 '디지털 감시'가 너무 연구하고 싶어서, 더 알고 싶어서, 박사 과정에, 그것도 한국도 아닌 영국에서의 박사과정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박사 과정이 아직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박사 3년 차가 채워져 가는 시점이기 때문에 이 모험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무모한 모험이었다'라는 허무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현재의 박사 연구에 매진할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이렇게나 생소한 감시라는 학문에 나는, 어떻게 뛰어들게 된 것인가?
디지털 감시를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왜 이 분야에 매료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영국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감시, 연구, 박사학위 등과는 조금 거리가 먼 개인적인 이야기가 한참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