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숟가락 Sep 23. 2023

학교보다 소중한 포켓몬 빵

  지용이가 아침에 오지 않았다. 통화도 되지 않아 혹시 본 사람이 있는지 물었더니 한 아이가 편의점 앞에서 봤다고 한다. 보호자에게 전화를 하니 학교로 간 줄 알고 있었고, 편의점 이야기를 했더니 찾아보겠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함께 오셨다. 지각한 이유를 들어보니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갔는데 없어서 주변 큰 마트가 열리기를 기다려 빵을 사왔단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에 앉으니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혼나는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측컨대 과거 비슷한 행동을 했을 때 잔소리를 들었고, 그 시간을 견디는 그만의 방법일 것이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다음 말을 먼저 했다.


빵을 사러 갔다고 혼나지 않아. 그러니 고개를 들으렴.

  이 말을 듣고 그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본다. 내 표정을 살피면서 그 말이 진심인지 판단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학교에 오지 않고 빵을 사러 간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니, 그 전날 사려고 했는데 마트에 가지 못해 아침에 갔다고 한다. 옆에 있는 보호자에게 물어보니 어제 바빠서 마트에 가지 못해서 오늘 방과 후에 사러 가기로 했다고 한다. 상담이 끝난 후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작년에도 빵과 그 안에 있는 스티커에 대한 집착이 있어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학교로 빵을 많이 가져와서 친구들이 몰려들어 소란이 벌어지기 일쑤여서, 몇 개만 가져오게 하고 특정한 장소에서만 먹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특정 사물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관심이 과도할 경우 집착이 되는데 사람을 향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지용이의 집착 문제를 분석하면 15세에 어울리지 않고, 2년 이상 길게 지속되고,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게 한다. 첫 번째 문제는 관심의 대상을 나이로 구분할 수 없다. 요즘은 '키덜트(kidult)'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나이를 초월해서 다양한 관심사를 인정한다. 두 번째, 지속성에 대해서는 집착을 줄이는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욕구를 표출하지 못하도록 통제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 학교는 집단의 문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개인의 특성이 인정되기 힘들다. 학교에 다니는 상황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한 나의 잠정적 결론은 ‘특정 사물에 대한 집착을 인정하고, 욕구를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먼저 나의 판단을 보호자와 공유했다. 포켓몬 빵을 사겠다고 할 때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그로 파생되는 문제를 이유로 야단치지 않는 것이다. 빵과 스티커로 발생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미리 구입하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사지 못할 때는 내가 대신 구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아침마다 지용이는 빵을 잔뜩 사온다. 아마도 보호자로부터 빵 구매의 자유를 얻은 눈치다. 그런데 스티커가 많이 필요할 뿐 가져온 빵을 혼자 다 먹기는 힘들다. 그래서 손도 대지 않은 멀쩡한 빵이 교실 바닥에 굴러 다닌다. 행동 교정보다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겠다. 그에게 아침을 먹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빵을 친구들과 나누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쉽게 그러자고 한다. 그래서 우리 반은 아침마다 빵 파티다. 지용이가 좋은 마음으로 기증함을 알리고 먹을 때 고마움을 표현하라고 반 아이들에게 부탁한다. 그랬더니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됐다. 먼저 교사를 피해 숨어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지 않고 오늘은 어떤 빵을 샀는지, 어떤 스티커를 모으고 있는지 나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되어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가까워졌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던 행동이 친구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선한 행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리는 건 힘들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