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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다다 Mar 30. 2021

꿈이라는 망령

2018년은 다사다난한 해였다. 소망하는 바가 참 많았던 한 해이기도 했다. 잠시 들어간 한국에서 발목인대를 다쳐 절뚝거리며 영국에 다시 귀국했기에 건강을 소망했고,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단어는 내가 다섯 배쯤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옆 이태리 남자애보다 내말을 더 못알아듣는 영국 강사들을 보며 영어실력이 하루빨리 일취월장하기를 소망했다. 그럼에도 아웃풋은 여전히 하고싶은 습성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바들을 단편 드라마에 녹여내 열 번 이상을 고쳐 여기저기 내봤지만 소식은 없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벌써 가을이라니. 무슨 공부를 해야하지. 10이면 9명이 나에게 콘텐츠 관련 공부를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기운 상태였다. 그래 50살 때 공부하려고 했던 음악치료를 먼저 공부해 보자. 사람들에게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쉽지않았고, 어떤 조언들은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다. 


17살때 희망직업란에 음악치료사를 썼던 기억이 났다. 그동안 다른 반짝거리는 것들을 보느라 잠시 미뤄두었던 한켠의 영역. 나는 그것을 다시 꺼내들었다. 음악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삶. 낭만적이지만 현실적이었고 내가 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터뷰때는 이렇게 단촐하게 얘기하지않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다. 나는 그쪽 경험이 전무했다. 그도그럴것이 20대 내내 언론고시 준비를 하고 출판사에 다녔다. 그나마 봉사활동을 많이 해서 자소서에 쓸말은 있었지만 거의 7년 전의 이야기였다. 다행히 모두 인터뷰에 오라고 해주었다. 그 인터뷰에 가기 위해, 5년 전 졸업한 학교의 교수님들에게 찾아뵐수없어서 이메일로 사죄드리면서 추천서를 받고, 백지에서부터 나 혼자 자기소개서를 쓰고 원어민의 검토를 받아서 제출하고, 아이엘츠 시험을  두 번 봤다. 한 피아노 학원을 등록해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친구에게 전자피아노를 빌려다가 연습을 하고, 남편 학교에 연습실에 몰래 들어가 연습을 하고. 캠브리지와 런던에 가서 인터뷰를 봤다. 나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없었다.


두 학교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보완하고 1년뒤에 다시 지원하라는 피드백을 주었다. 한 학교는 내가 누군가를 "돕는" 직업을 선택하길 원하는 그 모티베이션이 설득력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이 현재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교수가 "yeah, now it makes sense"라고 말한 부분이 생각났다. 그 전에 관련 경력이나 경험이 전무한 것도 그랬을 것이다. 봉사활동이나 외부활동이 없었던 편은 아니었지만 중간에 출판을 하기 위해 거쳤던 삼여년의 시간이 장애물처럼 느껴졋다. 다른 학교 역시 영어를 좀 더 공부하고, 봉사활동을 1년 정도 길게 해본다음 다시 지원하라고 피드백을 주었다. 놀랍게도 후회가 없었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세하게 떨어진 이유를 말해준 점이 인상깊었다. 게다가 제일 걱정했던 음악적인 부분(내가 전공생이 아니라는 것)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잖아!


비자가 만료되어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나는 그만둘까 생각했다. "불합격통지서를 받은지 한 달 정도되었는데 다시 지원을 한다고 해서 나의 단점으로 지적된 그 부분들이 보완되지는 않잖아." 답이 뻔히 보이는 길을 다시 묵묵히 걸어가자니 한숨이 나오고 도망치고 싶었다. 1년을 온전히 건강의 회복, 영어실력 성장, 대학원 지원하는 것에 쏟아부었는데 손에 쥔 것이 별로 없었다.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만드는 일에 나는 지쳐있었는데 지금 또 그 비스무리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실패로 너덜너덜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학교, 심지어 영국의 저 맨 끝에 위치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위치한 학교에 지원했다. 이유는 단 하나, 후회하기 싫고, 지금의 노력이 헛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새로운 학교 기준에 맞게 연주 영상 포트폴리오를 다시 찍었고, 인터뷰는 교수와 스카이프로 진행했다. 직접 마주 보지 않으니 모니터 위에 필요한 얘기를 적어놀 수 있었고 인터뷰 2회 경력 덕분에 더 자신감이 붙어서 허언증이 있는 사람마냥 끊임없이 말을 했다. 지난 두 번의 인터뷰를 통해 "망조의 그림자"를 알아버린 나는, 이번에는 뭔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합격 통지를 받았고, 부족한 아이엘츠 스피킹 점수를 메꾸기 위해 재시험 대신 학교에서 무료로 열어주는 ELS코스를 듣기로 했다. 예상보다 두 달 먼저 다시 출국을 했다. 또다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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