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문학기행 행사에 참가했다. 문우들과 함께 대구, 밀양을 방문하여 지역 독립서점과 향토문학관을 둘러보는 행사였다. 나의 이번 참가는 순수하진 않았다.
퇴직 후 국토종횡단 1,000km를 24일간 걸었던 추억. 대구에서 일박하는 호텔은 금호강에 인접해 있었고 밀양의 영남루는 문학기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2017년에 걸었던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다. 그러면서 다가올 2025년을 생각하고 싶었다.
대구에서의 첫날 일정을 마치고 잠을 청하며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금호강변을 뛸 생각으로 운동복을 침대 옆 협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잤다. 12월 중순 대구의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달렸다. 스트레칭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뛰어 금호강에 도착했다. 순간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휩싸이며 어느덧 그날로 돌아갔다. 너무나 생생한 기억들. 임진각을 출발하여 10일 차로 김천에서 왜관을 거쳐 대구 경북대학교까지 46.9km 코스. 그때 내 나이 58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때의 기억을 기록한 책 '50대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를 보고 있다.
"금호강 자전거길에 접어들었다. 시간은 저녁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걸은 거리가 35km. 앞으로 12km를 더 걸어야 한다. 4일간 야영을 하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내 두 다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중략) 대부분 사람들은 나의 이번 도전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감정도, 느낌도 하나의 정답이었던 시절에 형성된 사고에 아직도 스스로가 지배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금호강에 또 한 번의 기억을 두고 달리기를 마쳤다.날은 밝았다. 나는 호텔 인근 커피숍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중복된 추억을 회상하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이른 아침 금호강
문우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의 오후 일정은 영남루 역사기행이었다.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그날을 회상하며 혼자 밀양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12일 차, 청도를 출발하여 밀양에 도착한 나는 밀양강 영남루에서 한참 쉬었다. 임진각에서 부산역까지 걸어가는 14일의 일정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성취감에 벅찼던 감흥이 엊그제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무척 더운 날이었다.
"한낮 더위가 너무 심하니 주변 경관이 눈에 안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높고 청명했다. 실내에서 창밖을 보면 황홀한 풍경이겠지만 길 위에서 보는 지금의 하늘은 순간 나의 머리를 핑 돌게 했다. 30도가 넘는 한낮의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청명한 하늘과는 무척이나 이질적인 조화였다."
밀양강변 한겨울 쌀쌀한 바람이 볼을 때렸지만 나는 회상에 젖어 그날 걸었던 길을 한 시간도 넘게 걸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밀양강의 윤슬이 마치 은빛 비단길처럼 보여 하마터면 강물로 걸어 들어갈 뻔했다.
밀양강, 영남루
사실 나는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이 그때 그 길로 나를 향하게 만들었다. 1,000km 24일의 기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 문학기행 참가는 목적이 뒤바뀐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