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일기 형식의 글을 쓰고 발행할 때는 늘 일주일 뒤에 삭제할 마음으로 쓰고 있다. 타인한테 내 감정을 공유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때때로 이 성향이 문제가 될 때가 생기다 보니 글로 먼저 연습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1년은 된 것 같다. 지워질 글이라는 전제를 달지 않으면 아예 공개도 안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실제로 이런 개인적인 글은 꼭 1주일이라는 시간을 지키진 않았더라도 결국 다 지우고 말았다. 이 연습 과정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체감이 엄청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 치부와 희로애락을 알게 된 사람이 조금 늘기는 했다.
오랜만의 근황.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 제출할 글을 정리해 응모를 완료한 후에 심적인 여유가 생겼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한 때는 작가가 꿈이었을 만큼, 살면서 한 번쯤은 출간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왔다. 이번 기회에 출간 프로젝트에 당선되지 않더라도 출판사에 투고할 마음으로 글을 써보자 싶어 <브랜드 레시피>를 시작했다. F&B와 브랜드에 대해 꽤 깊게 고민해오기도 했고, 많은 브랜드를 알고 있진 않지만, 브랜드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기준이 되고 참고했던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건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한 오판이었다. 이번 기회로 글의 무게에 대해 배우게 됐다. 문장 하나를 쓸 때마다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소개하는 브랜드가 어떤 모습으로 투영될지, 전달하려는 의미가 오롯이 닿을 수 있는지, 여러 가지 고민들이 순간순간 동시에 몰려왔다. 일종의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 때로는 1주일 동안 한 문장도 쓰지 못할 정도로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든, 수가 많든 적든 간에 내가 느끼는 압박감은 늘 같았다.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특히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 책을 쓴 저자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출판 프로젝트 응모 후에 심적인 여유가 생긴 건 풀려버린 긴장감과 어쨌든 완성했다는 안도감의 결합이었다.
서점에 들러 사놓았던 책들이 방 한 구석에 층층이 쌓여있었다. 책 읽을 시간에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첫 장도 띄지 못해 미개봉품이던 책을 하나둘씩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냥 읽으면 심심하니까, 책을 들고 양화공원과 선유도에 자주 들렀다. 요즘은 유독 선유도 부근을 많이 간다. 우선, 양화공원은 한강에 있는 공원치고 사람이 별로 없다. 북적거리는 일 없이 돗자리를 펴고 드러누워서 책을 읽는 분위기가 꽤 멋들어진다. 선유도는 내가 유독 좋아하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한강을 마주 보는 흔들의자에 앉아 물멍을 때리다가 텀블러에 넣어온 커피나, 집에서 먹다 남은 와인을 제로 콜라와 1:1 비율로 섞은 칵테일(?)을 마시면, 어떤 여행지도 부럽지 않은 공간이 된다. 오스트리아 여행을 갔을 때 할슈타트에서 느꼈던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늘 독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말하는데, 기분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고 독서를 하는 게, 독서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라면 방법인 것 같다.
지금까지가 근황 얘기였다면,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엄마의 64년 첫 콘서트 방문기이다. 임영웅 콘서트 예매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고,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은 박창근 콘서트를 예매했던 게 3달 전쯤. 나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트로트 가수 콘서트를 보러 가는 건 조금 힘들었을 텐데, 박창근은 엄마도 정말 좋아할뿐더러 나에게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어서 두 장을 예매했다. 엄마에게 있어서는 64년 인생의 첫 콘서트였고,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뭐 하러 가냐, 돈 아깝지 않을까 하는 반응을 보였다. 막상 가보면 느낌이 다를 거라 말을 했고, 역시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내 예상보다 더 격한 반응이었다. 박창근이 마이크를 들고 첫 소절을 불렀을 때,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고, 엄마는 격한 감동에 물개 박수를 치다가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처음엔 그 눈물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해석되진 않았다. 64년 인생의 고난길에 핀 꽃 한 송이를 마주한 기분일까? 아니면, 박창근의 목소리 자체에 감동을 주는 힘이 있는 걸까?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엄마를 위해 콘서트 표를 예매한 나에게는 많은 의미를 준 순간이었다.
나의 첫 공연의 기억이 떠올랐다. 20살이 되고, 친구가 응모한 스페이스 공감 공연이 당첨되어 얼떨결에 따라가 보게 된 게 마이앤트메리였다. 생각해 보면 첫 공연이 마이앤트메리라니, 운도 참 좋았다. 음악의 흡입력과 공연이 주는 압도감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감동을 주었다. 음악과 공연에 얼마나 빠져버렸는지, 20살의 1년은 거의 홍대 클럽을 전전하며 공연을 보는데 투자했다. 관객으로 참여한 게 아니라 공연 스태프로 생활한 거긴 하지만, 음악을 넘칠 만큼 즐기고 공연 기획에 대해 배우며 공연 기획자로서의 꿈을 가졌다. 물론 어릴 때의 꿈일 뿐이다. 내가 20살에 느꼈던 그 벅찬 감정을 엄마는 환갑이 넘은 64살이 되어서야 느꼈을 걸 생각하면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늘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가 꼭 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고된 인생을 살면서도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늘 놓지 않았다. 얼마나 드라마 같은 인생인지, 혹은 그보다 더한 인생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책임감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때는 그런 엄마를 위해 살았고, 지금은 유일무이하게 존경하는 사람인 엄마를 위해,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박창근 콘서트도 그런 마음에 예매를 했다. 엄마가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일들이 하나씩 늘어났으면 좋겠다. 환갑을 넘은 나이지만, 아직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앞으로 내가 품에 안게 될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꼭 껴안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