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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Apr 07. 2016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가격표가 붙지 않는 거래는 모조리 무시하는 산업사회는 인간이 적응할 수 없는 도시의 풍경을 만들었다. 매일매일 자신의 몸을 자동차와 전철에 가두고 자기 몸을 스스로 갉아먹지 않으면 적응할 수 없는 곳이 이 도시의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날마다 쏟아지는 물건과 명령이 내가 원치 않는 결과를 만들고, 그때마다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차별과 무기력, 절망의 골이 더 깊어지는 세계이다. (p.27)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약 30년 전인 1970년대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현재와 무관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적절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발전성장 같은 단어는 거의 항상 긍정적으 인식되었다하지만 저자 무분별한 성장에 대한 경각심을 제시하며 산업화의 가속도와 함께 진행된 것이 인간의 무기력화이지 않냐고 되묻는다. "신은 자연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어느 책의 글귀처럼 인간은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갈수록 스스로 존재하는 능력을 차츰 잃어갔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상품이 생겨나 전통적인 자급 기술이 쓸모 없어질 때 가장 먼저 고통받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직업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고용되지 않은 상태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노동시장이 확장되면서 없어져 버렸다. 직장 밖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자유가 사라진 것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로써 ‘집을 짓는 일’은 이제 사회 이탈자 아니면 한가한 부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p.34)


또한 시장이 형성되고 규제가 생겨남 따라 기존에 행했던 일들 중 많은 부분이 불법 되었다. 손수 집을 지으면 무허가 주택이 되고  한편에서 장사를 하면 불법 노점상이 되는  스스로 시장 밖에서   있는 일의 범위는 상당 부분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전문가가 들어섰다. 사회 질서와 복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었음은 물론 대중이 인식하는 필요가 너무 많아진 세상이 되었다.



광고가 되었든, 전문가의 처방이 되었든, 모임에서 토론을 하든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하는 사회는 개인이 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행동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문화에서 나온다. 이런 문화에서 소비자는 스스로 배우기보다 만들어진 필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p.72)


손수 의식주를 해결하는 대신 교환수단인 돈으로 이를 해결한다. 그렇기에 돈은 더욱 중요한 수단이 되고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도시라는 시스템 속에 산다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필요를 위해 소비하도록 만들어진 게임판이니까.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자연 속에서 전기와 물 없이 산다는 그 젊은 부부의 선택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우린 정말 그 권리를 갖고 있는가.


급여를 주는 직장에서 벗어나 일을 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된다. 인간의 자율적 행위는 고용 수준을 위협하고, 사회적 일탈을 일으키며, 국민총생산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그런 행위는 부적절하게 불리는 '노동'일뿐이다. 노동은 더 이상 인간의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적 투자와 어울리지 않게 결합된 기괴한 요소를 의미한다. 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무직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동네일에 관여하는 활동적인 여성은 '노동'하는 여성과 차별된다. 이 '노동'하는 여성이 하는 일이 사회에 쓸모가 없거나 해를 끼치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조직의 위계질서 밖에서 전문가의 측정을 벗어나 만들어진 사용가치는 상품에 대한 필요만 줄이는 게 아니라 그 상품을 만들고 상품 구매에 필요한 월급을 주는 일자리를 줄이기 때문이다. (p.101)


이반 일리치는 시장경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하기 위하여 자급력의 회복과 공평한 분배를 주장한다. '가난의 현대화' 현상과 원인에 대해 좋은 글귀가 많아서 계속 받아 적어가며 읽었다. 한 줄 한 줄 다 소개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책 한 권을 통째로 다 써버릴 것 같아서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우리 모두가 필요를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선택하며 자급자족에 '스스로 존재함'을 덧붙여 자급자족'자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그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도시에서의 삶도 덜 퍽퍽해지리라 생각한다.


느린걸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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