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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쓰 Nov 12. 2019

바르셀로나 여행 (3): 엄마와의 시간들

시앙스포 교환학생 일기 #26

엄마가 낮 1시에 도착하는 줄 알았는데 그 전날 카톡을 하면서 깨달았다. 엄마 오후 5시에 오는구나! 갑자기 4시간의 자유시간이 (?) 생긴 기분이었다. 4시 정도에 이르게 공항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탄 비행기는 5시 6분은 되어서야 착륙했고 수하물을 찾아서 나온 엄마를 만난 건 5시 40분이 넘어서였다. 너무 오래 기다렸지만 게이트에서 나오는 엄마와 마주치자마자 배시시 미소가 번졌다. 엄마가 오기 전까지는 함께 뭘 해야 할까 하는 고민 때문에 조금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엄마가 내 가을 방학에 맞춰서 파리에 여행 오신 것은 나에게도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시간이었다. 함께 가고 싶었던 데도 돌아다니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중간에 엄마가 감기에 잠깐 걸리셨지만! 빠르게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해서 금방 낫고 다시 돌아다닐 수 있었어서 참 다행이었다. 

(좌) 몽생미셸 앞에서 사진 찍는 우리 엄마. 젊고 예쁜 우리 엄마!

엄마랑 처음 간 곳은 몽생미셸. 너무 추웠어서 이 곳에서의 하루 때문에 엄마가 감기에 걸리신 것 같았다. 그래도 꼭 엄마와 함께 보러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몽생미셸에 가기 전 들른 옹플뢰르의 과자점을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언제 행복해하는지, 내가 엄마를 어떻게 대하는지, 엄마는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등에 대해서 다시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계속 엄마와 살기는 했지만 중,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에 살고 공부하느라 오롯이 시간을 함께 보낸 경우는 별로 없었고 대학교에 간 뒤로는 매일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는 탓에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내면 많이 보낸 것이었다. 이전의 가족 여행은 2박 3일, 길면 4박 5일 정도였다. 10일가량을 거의 계속 붙어서 다니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엄마는 최고의 엄마이자, 친구이자, 여행 메이트였다. 

내가 성격이 좀 급하고 욱하는 기질이 있어서 불쑥불쑥 짜증을 내도 엄마는 항상 날 예뻐해 줬고 첫날부터 사진을 너무 못 찍어준다고 내가 엄청 뭐라고 했는데 그때마다 계속 노력해줘서 나중에는 예쁜 사진들도 많이 찍어줬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너무 나 빠보이긴 하지만 나도 나름 엄마가 즐거운 기억을 안고 갈 수 있도록 추억을 가장 많이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연구했다. 또 언제 이렇게 여유롭게 함께 여행을 10일 동안이나 할까 싶은 것도 있었고, 여행 다닐 때 사진을 많이 찍어두면 그게 평소 일상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도 있다. 

(좌) 너무 예쁜 우리 엄마 (우) 저 카페가 마음에 든다고 저 앞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며 가셨지만 울타리 때문에 좀 실패했다. 

나는 좀 배가 고파지면 예민해졌던 것 같다. 엄만 그것도 캐치해주고 그럴 때마다 달달한 걸 사주셨다. 엄마도 당 떨어질 때쯤 뭐 하나씩 먹으면 다시 내 체력과 템포에 맞추어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워낙에 잘 걸으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체력이 생각보다 좋으셔서 다행이었다. 오히려 쇼핑할 땐 내가 힘들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유럽의 거리였다. 그냥 평범한 유럽의 거리를 특히 좋아하셨다. 불이 반짝이는 야외 테이블이 있는 카페들, 오밀조밀한 상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들. 길 가다가 예쁜 곳이 보이면 '엄마 나 여기서 사진!' 이러고 와다다다 달려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항상 성공적인 사진을 찍어준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서 찍어주셨던 것 같다. 내가 꽤 많이 부탁해서 귀찮았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까 좀 죄송하다. ㅎㅎ 그래도 나도 엄마가 잘 나온 사진을 많이 찍어드렸다. 그런데 엄마는 모델이 예뻐서 어떻게 찍어도 잘 나왔다. 

맨 마지막 사진은 엄마가 엄청 좋아했던 까사 밀라 내부 브런치 카페. 

그리고 우리 엄마는 무척 귀엽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귀엽고 예쁜 사람이었다. 베네통에 들어가서도 미니 마우스가 그려진 실내복에 꽂혀서 무조건 사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안 입을 거라고, 그런 걸 여기서 왜 사냐고 했지만 막상 엄마 말 듣고 사온 옷은 너무 예쁘고 편했다. 그리고 커플로 입으니까 귀여웠다. 역시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유효하더라. 그리고 길거리를 걷다가 예쁜 귀걸이를 샀다. 엄마가 귀걸이를 사고 싶다고 했었는데 총 5개를 샀는데 그중 3개는 파리에 두고 두 개만 들고 한국에 가셨다. 예쁘고 좋은 건 다 양보해주고 돌아간 우리 엄마 최고. 

바르셀로나에서 파리에 돌아오는 날 아침에는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우버 타고 공항 가는 내내 나는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근처 카페에 바로 앉아서 작업을 했고 엄마는 그 사이 아침을 주문해서 들고 오셨다. 내가 작업을 하는 동안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셨더라. 그리고 스무디가 털모자를 쓴 것을 보고 너무 귀엽다며 사 오셨다. 그리고 그 털모자는 절대 버리지 말고 다른 음료수에도 끼워서 다니라고 하셨다. 솔직히 진짜 불편해서 어떻게 이용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아직도 갖고 있는데 볼 때마다 귀엽긴 하다. 그런데 이때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자꾸 어떤 남자가 와서 와플을 달라고 말을 걸고 또 다른 남자가 와서 휴지를 사라고 말을 걸었다. 전날 소매치기를 당한 이후로 모든 외국인이 다 무서워 보이는 상황이었는데 아침부터 공항에서까지 이런 사람들을 만나니까 너무 화가 났다. 그때의 모습을 또 캐치해서 엄마가 사진으로 남겨두셨다. 

파리에 돌아와서 하룻밤 더 자고, 그다음 날 엄마는 공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내가 중간고사와 발표가 있는 날이었어서 엄마가 7시 출국임에도 좀 일찍 공항에 가셨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신다고 나왔는데 시간이 없어서 멀리는 못 가고 집 근처의 초밥을 파는 일식집에 왔다. 초밥, 덮밥, 꼬치, 마끼를 모두 오랜만에 먹었다. 그렇게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었는데 엄마가 자꾸 먹여서 내가 또 좀 신경질을 냈다. 그래도 엄마는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내가 많이 걱정되셨나 보다. 하나라도 더 먹이고 하나라도 더 사입히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으셨던 것 같다. 옷도, 신발도 많이 사주시고 맛있는 것도 끝까지 많이 먹이고 기초 화장품도, 용돈도 많이 주고 가셨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는 내가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있는 사이에 언제 찍은지도 모르는 사진들과 짤막한 편지를 카톡으로 써주셨다. 사진들에 손글씨 쓴 것도 너무 귀엽고 웃겼다 ㅎㅎ 특히 뾰로통한 내 사진에 '화난 재원이'라고 쓴 게 웃겼다. 엄마가 한국에 다시 가고 나니까 좀 쓸쓸하긴 했다. 원래 있다 없으면 빈자리가 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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