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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현주 Aug 29. 2020

불안 3대

누구의 탓인고 하니  

가장 좋은 핑계 즉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핑계는 부모 탓을 하는 것. 내가 가만히 못 있고 불안스레 생각의 물가를 자꾸 왔다 갔다 하는 건 평화롭지 못했던 내 유년이 있던 집안 분위기였을 것. 기필코 원인을 잡아 낸다. 엄마는 늘 일을 했고 쉬는 건 게으른 자들 짓이며 그리 살면 거지된다는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여자였다. 난 그 집 방구석 책상에서 몽상과 상상을 넘나들었는데 그리 생각을 꼬리 물고 했으나 깊이 사유하는 지적인 사람으로 성장하지도 못했다. 나의 생각은 목적 지점도 없이 같은 곳을 맴돈다. 그 길은 닳고 닳아 지하 수백 미터는 팠을 무의미한 잡념들. 엄마의 사이비 신념과 나의 무의미 잡념 사이를 잇는 게 불안이다. 부지런한 사람이 좋은 것이니 뭔가 해야 한다는 불안은 나를 맴돌기 시켰다.


남편은 지적인 사람이다. 평생 공부한 문학평론가인데, 그중에서도 몇 글자 안 되는 시어를 이어 붙여 공간을 매워 의미를 구축하는 게 업인 생각 전문가이니 말이다. 그는 내 엄마 사이비 교리로 보자면 게으름을 피운다. 가만히 있기 달인. TV를 보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부지런과 무관한 이런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내면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 있어도 루틴이 있고 대체로 그걸 바꾸는 일은 없으며 바꾸려면 아무리 친한 친구나 가족이라도 최소 일주일 전 약속이 돼야 한다. 생각은 치밀해서 밥상머리 수다에도 근거가 있고 인용을 한다. 비슷한 화제가 며칠, 몇 주 반복된다면 그건 논문이 곧 나온다는 뜻이니 잡념이 아니라 생산적인 행위를 머리로 하는 것.


부지런하게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나보다 느긋하게 생을 즐기는 그는 왜 고급 밥벌이 밑천을 생산해 내는가? 그가 무엇을 하든 내버려 둔 그의 엄마를 생각한다. 당신은 아는 게 없기에 자식이 하는 일은 내가 따져볼 수 없으며, 자식이 하는 일은 뭐든 옳을 것이라 무한 신뢰한 노인. 남편은 엄마로부터 단 한 번도 “그건 안돼, 하지 마!” 소리를 안 들어 봤단다. 그에 반해 늘 검열을 받고 자란 나는 처음에는 엄마 눈에 들기 위해, 나중에는 그 눈에 안 맞추기 위해 반발을 했다. 그러면서 불안증이 커지고 나를 내가 신뢰 못하는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반전은 여기에 있고 나는 이 말을 하려는 것. 그런 강박과 검열의 피해자라 생각하는 나는 자식이 무엇을 하든 그냥 두는 편이다. 웬만한 건 너그럽게 하고 용돈도 넉넉히 쓰게 한다. 하고 싶은 거 해봐라 주의. 그에 반해 아무 간섭 없이 자랐으면서 남편은 자식에 집착을 해 매사 걱정과 간섭이 많다. 아이가 반발 단계에 왔을 때 된서리를 맞고는 이후 혼자 끙끙 앓는 애비가 돼버렸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기 사이사이, 지적인 생각 사이사이 자식불안을 끼워 넣는 것이다. 세상 참 희한하지. 위에서 말한 불안에 관해 내 모친 탓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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