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둥대는금붕어 Nov 02. 2020

마루 밑에 사는 내 작은 친구

마루 밑 아리에티, 2010,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作

그런 날이 있습니다. 분명 여기 뒀는데 싶은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 날. 주변까지 샅샅이 뒤져봐도 찾는 물건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며칠 뒤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던 물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건에 발이 달렸을까요? 어쨌거나 찾았으니 잘 보관해야지 싶었습니다.


 아마 우리 집에 아리에티가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리에티는 쇼우가 머무는 집의 마루 밑에 살고 있는 소인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잠들면 이곳저곳 방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빌려 씁니다. 부족 중에 남은 사람이라곤 부모님과 스피라가 알려준 몇몇 사람들뿐이어서 아리에티는 더욱 행동을 조심하고 인간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래야 종족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집에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라며 매번 혼자 가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동행하기도 합니다.


아리에티

 

 아리에티가 빌려 쓰는 물건의 주인 쇼우는 심장 수술을 앞두고 할머니댁에 요양을 온 소년입니다. 그러나 쇼우의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일이 바빠 해외에 나가 계신 어머니 때문에 쇼우는 줄곧 혼자이지요. 할머니에게 들어 소인족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던 쇼우는 할머니댁에 온 첫날, 낮에 뜰에서 아리에티를 만나게 됩니다. 그날 밤 휴지를 빌리러 온 아리에티에게는 말까지 걸게 되지요.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허겁지겁 돌아가려다 각설탕을 흘리고 간 아리에티를 위해 각설탕을 두고 가지만, 아리에티는 이를 돌려주러 옵니다.


쇼우
“나 만나러 온 거야?”
“우리를 그냥 내버려둬. 그 말 하러 왔어.”
“너하고 얘기하고 싶어.”
“인간은 위험해. 들키면 이사가야 한다고 아빠랑 엄마가 그랬어.”
“가족이 있구나. 좋겠다.”


 돌아가려는 아리에티를 쇼우가 붙잡은 덕에 둘은 처음으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아리에티는 소인의 입장에서 인간과 가까워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지만, 외로움이 묻어있는 쇼우의 대답에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관계의 시작은 통성명이지요.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쇼우와 아리에티가 더 가까워질 수 있던 그때, 까마귀가 나타납니다. 쇼우는 아리에티를 잎사귀로 감싸 구해주지만 갑작스레 등장한 가정부 때문에 아리에티는 도망쳐버리지요. 아쉬워하던 쇼우는 소인을 위해 만들어둔 집이 대대로 전해져오고 있다는 걸 듣고 난 후, 그 집을 아리에티에게 선물합니다. 선물하는 과정에서 집이 조금 망가지긴 했지만요.



 아리에티의 가족은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합니다. 인간이 알게 된 이상 자신들의 안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경계심 때문이지요. 더 좋은 집을 챙겨주려 한 쇼우에 대한 고마움 반, 떠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것에 대한 원망 반을 안고 아리에티는 쇼우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갑니다. 그곳에서 쇼우는 처음으로 아리에티를 보게 됩니다.

 험한 길을 떠나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아리에티의 말에 쇼우의 반응은 냉소적입니다. 67억명의 사람이 사는 세상을 돌아다녀봤자 너희 부족은 멸망할 거라고요. 우리는 살아낼 거라고 말하는 아리에티의 말에 쇼우는 사실 죽는 것은 자기라고 고백합니다. 자기보다 훨씬 작은 아리에티가 내뿜는 생명력에 심통이 났던 것을 사과하는 쇼우의 뒷모습을 보며 가정부는 소인을 제거할 방법을 모색합니다. 가정부 입장에서 집안의 물건을 멋대로 빌려가는 소인들이 좋지 않았던 것이지요.


“수술 언제야?”
“모레야. 힘을 낼게. 너 덕분에 살아갈 용기가 생겼어.”
“우리를 지켜줘서 고마웠어. 건강해야 해. 안녕.”
“아리에티...”



 쇼우가 지켜준 덕에 가정부로부터 해를 입진 않았지만, 아리에티의 가족은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움직이는 아리에티를 보러 달려온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각설탕을 건네며 작별 인사를 합니다. 아리에티도 자신의 머리집게를 선물하며 눈물 흘립니다. 다시는 만날 수가 없겠지요. 쇼우와 아리에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소인과 인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둘은 이제 헤어집니다. 아리에티가 떠난 곳을 쇼우는 한참이나 바라봅니다.


아리에티, 넌 내 심장의 일부야.
잊지 않을게. 영원히....


 쇼우에게 심장은 전부입니다. 심장이 아프니 누구보다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 쇼우가 말합니다. 너는 내 심장의 일부라고. 가족도, 친구도 없던 쇼우의 곁에 있던 아리에티니까요.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쇼우는 아리에티를 통해 산다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 내일은 지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것. 그래서 쇼우는 이제 아리에티와 헤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고 나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리에티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거창한 내용은 아닙니다. 대단한 결말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좋습니다. 꼭 극적인 행복으로 끝나야만 해피엔딩은 아니니까요. 쇼우와 아리에티에게는 내일의 태양이 뜰 걸 압니다. 둘의 행복을 바라는 저는 그래서 이 결말이 좋은가 봅니다. 살아가는 데 희망만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결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시라는 게 다른 게 아니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