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경 Oct 26. 2020

씨앗을 찍어 놓자!【사진전】

파묻히기 전에

글을 시작할 수 있는 구나 절이 있다. 그런데 글 한 편이 완성되면 그것은 오히려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결국 그것을 지우고, 그건 씨앗이 되는 거겠지. 그 씨앗들은 종종 핸드폰의 메모장에, 책상 곳곳에 흩어진 낙서에, 다이어리 모퉁이에, 들어있다. 언제든 빼다 꺼내심을 수 있게. 이전에는 ‘씨앗’이 고리타분한 비유라고 여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근사한 표현이다. 지금 이 문장들의 씨앗은 ‘씨앗’이다.      


파리를 여행할 때 옛날 거리 모습(특히 에펠탑 주변)을 찍은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신도시의 대명사인 일산에 살고 있다. 그래도 내가 사는 주변에는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은 땅들이 있었고, 이곳은 완전히 갈아엎이거나 새단장을 하는 식으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갖출 예정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꽃구경이나 단풍구경을 하듯 새 건물과 새 도로로 몰려들겠지. 그때를 기약하려고 포크레인과 지게차 같은 것으로 계속 갈거나 쌓아올리면서 씨앗들을 더 아래로 아래로 파묻을 수도 있겠다. 이 고요하고 한적한 장소들이 어쩌면 씨앗일지 모른다. 훗날 보이지 않게 될... 씨앗을 가만히 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찍어두었으니 적어도 사라지지  묻힐 수 있는 씨앗이라면 좋겠다. )

매거진의 이전글 비슷하게 흔들리는 꼬리와 날개와 나무 【사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