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본격적으로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본업’을 마련한다는 건 결이 다른 이야기다. 청년실업률이 최고치를 찍었다거나 산업재해 관련 뉴스를 들으면서, 노동자가 되는 것과 노동자로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안테나 공장, 플라스틱 사출 공장, 장난감 전자부품 공장, 제철소 등 작가의 화려한 노동 경력을 보면서, 책이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어쩌면 지금 살아온 날보다 훨씬 오랜 기간)노동자로 살아갈 나에게 무언가 힘을 줄 거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특히 「‘노동자 인문학’은 왜 없는가」, 「두 사건에서 배운 것」, 「소금단지 안의 달걀」, 「바이러스는 악이 아니다」, 이 네 편의 산문에서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더욱 힘 있게 다가왔다. 바이러스 창궐을 비롯한 기후재난, 경제성장률에 대한 집착,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노동자(더 싼 값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가 나타나면 즉시 교체되는 상황), 이 세 요소는 서로 맞물리며 악순환을 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작가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접점’에 주목한다.
「두 사건에서 배운 것」 중 79-80쪽에 언급되어있는 이 ‘접점’에 대한 내용을 임의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communism’과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democracy’의 어원을 각각 살펴보면 ‘comune’과 ‘demos’이고, 이는 공통적으로 ‘마을/지역 공동체’를 뜻한다. 사회를 이루는 작은 단위의 공동체로부터 ‘좋은 세상’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작은 마당이 필요하다. (「소금단지 안의 달걀」 중에서) *
2부를 참고하면, 문학은 '작은 공동체', '작은 마당'과 같은 공간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2부의 「문학을 해야 하는 시절이 왔다」, 「좋은 언어」, 「쓸모의 함정」, 세 편의 산문들에 따르면, 문학은 ‘좋은 언어’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문학은 ‘무용성’과 ‘고독’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거의 없다. 무용하다. (짧은 시간 안에 수백 개씩 업로드되는 소셜 미디어의 글은 일회성이라고 하더라도 광고를 포함했다면 높은 시장가치를 지닌다. 그에 반해 문학 중에서도 시집은 시인이 오랜 시간 고독하고 갈등하면서 써내며, 이후에도 작가와 출판사가 협의하여 책을 엮어야 하기 때문에 시장가치 측면에서는 정-말 효율성이 떨어지는 하찮은 상품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고요한 무용성'이 쌓이면 단단해 보였던 유용성과 유의미한 긴장감을 형성할 수 있다. 문학이 곧바로 현실을 바꾸지는 못해도, 문학을 둘러싸고 이야기하는 자리는 민주적인 성질을 갖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는 문학을 통해 민주적이지 않은 일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다.
문학이 필요한 시절이 아닌 적이 있었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문학을 둘러싸고 혹은 문학에 둘러싸이며 살아간다. 『문학이 필요한 시절』에는 25편의 산문들이 실려 있는데, 이곳에 언급한 글 외에도 2020년대 ‘혼란의 시대’(‘혼란의 시대’라는 표현은 책에 등장하지 않지만, 앞서 언급한 ‘세 요소에 의한 악순환’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와 지금 이 시대의 문학을 통찰하는 문장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을 마치면서 책 제목을 다시 보니, 『문학이 필요한 시절』이『지금 이 시절이 필요한 문학』으로 읽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