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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Jan 30. 2021

늘어나고 박살나고 쪼개지고

시간이 가지는 물성을 안고 가는 사물들

매일 신던 흰색 양말들의 목이 문득 보니 많이 헐렁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짱짱해서 좋았는데, 역시 오래된 것들은 오래된 티가 난다. 어릴 때는 아빠랑 양말을 같이 신었다. 다만 좀 자라고 나니 아빠가 나와 양말을 같이 신기를 거부했다. 내가 신은 양말은 전부 목이 늘어난다나. 아빠의 발목은 마라톤 선수처럼 얇다. 내 발목은 굵다. 그 때는 아빠가 유난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당연한 결말이었던 듯하다. 아무튼 나는 그 결말이 나고 몇 년 뒤 군대에 가서 그 흰색 양말들을 받아왔다. 미군 보급품이었다. 처음 받았을 때부터 마음에 들어서 전역할 때는 한 열 켤레쯤 들고 나왔는데 이제는 그 열 켤레가 모두 조금 걸으면 신발 뒤꿈치에 걸려 흘러내린다. 적어도 흰 양말을 새로 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군대 양말을 보고 느끼자니 꼴이 웃기긴 하지만, 기분이 이상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식사를 하실 때 항상 같은 밥그릇과 국그릇을 쓰신다. 숟가락과 젓가락까지도 항상 그 분의 전용이 있다. 사실 매 끼니마다 드시는 커피도 항상 같은 잔에다 드셨는데, 최근에 그 컵이 깨졌다. 싱크대 위 식기건조대에서 싱크대 위로 미끄러져 떨어진 그 컵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난다. 사실 그렇게 큰 낙차도 아니었는데, 나는 컵이 그렇게 가루처럼 흩어지는 건 처음 봤다. 파편은 너무 자잘했고 그만큼이나 비현실적이어서 그런 건 만화에나 나올 것 같았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수명을 다한 내열유리가 저렇게 깨진다고 했다. 엄마는 그 컵이 아마 나보다도 나이가 많을 거라고 했다. 수명은 한참 지났을 것이다. 아무래도 자연사라고 부르는 편이 더 합당해 보였다.


시간은 추상적인 것처럼 다루어지지만 분명 물성을 가진다. 시간이란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라는 형이상학적이고 식상한 말에서 벗어나더라도, 분명 시간에는 누적되는, 택배 상자처럼 쌓이는 듯한 어떤 감각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시간은 흐른다. 언제나 일어나지만 언제나 갑작스러운 일이다. 나이를 한 살 먹으면 항상 그 나이가 제목에 들어간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올리곤 한다. 스물, 스물셋, 스물다섯처럼 잘 알려진 노래가 있는 나이들이 있었다. 그것들이 찬찬히 쌓여나가는 것을 생각하니 그 가벼운 놀이가 왠지 무서웠다. 윤하가 작년에 26이라는 곡을 내준 덕에 올해의 커트라인은 어찌어찌 맞췄다. 모든 포크 가수가 한 번쯤 노래하는 그 나이를 넘어서면 아마 곧 고를 노래가 없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 단출한 기념식도 없이 나이는 쌓여나갈 것이다. 마치 사라지듯이.


킨토 유리컵과의 즐거운 한때

하루는 할아버지 밥그릇이 떨어졌다. 커피잔과 마찬가지로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추락 역시 싱크대 위 식기건조대에서 싱크대 위로, 그대로였다. 다만 사기그릇은 강했다. 대신 싱크대 위에 올라와 있던 킨토의 유리컵이 깨졌다. 산 지 얼마 안 된 물건이었고, 내열유리였다. 제 수명이 다하기까지 한참 남은 내열유리는 커다란 조각들로 깨졌다. 너무 큼직해서 잘 붙이면 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인터넷에서 본 그 말이 정말이었구나 싶었다. 시간이 쌓여 산산조각나거나 채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거나. 이 컵은 아직 잔주름이 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간 위에 살다 보면 그렇게 온 몸에 잔금이 덕지덕지 묻는다. 시간이 흐르는 건 어쩌면 참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깨지지 않은 그 사기그릇도 그랬다. 밥그릇 바닥에는 미세한 균열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생긴 무수한 잔금들은 그렇게 물질의 형태로 남는다. 나는 사람이 살고 말고의 의미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그런 걸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기도 하고.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조금은 무서운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이었나, 싶은 순간들이 덮쳐올 때가 있다.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초등학생 때 꿈꾸던 스물여섯을 불현듯 떠올릴 때나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 보이는 새소년의 황소윤이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데에 새삼 생각이 닿을 즈음이면 그 하루는 거의 끝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잔금들은 조금씩 참으며 내 안에 묻어나고. 지금 있듯이 전에도 있었을 테고. 또 다르고. 잔금은 물질적인 거니까. 시간은 그 자체로 시간을 증명한다. 두려워하기보단 어찌 되었든 남는 것들을 생각해도 좋겠다. 봐, 여기 이렇게 묻어 있잖아. 누군가 너는 무엇이었나 물으면 작은 주름들을 보여주면 되겠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종종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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