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를 꿈꾸는 프로

feat.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by 까칠한 다정함

2025년 8월 말,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줄여서 여둘톡 팟캐스트의 주제는 즐거움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황선우 작가는 취미로 플루트를 하는데 플루트를 배우는 과정은 힘들 수 있지만, 그 힘듦 안에도 즐거움이 있고 결국 연주를 하는 즐거움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즐거움이 목표가 되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플루트를 하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이 '하다 보면 프로를 목표로 하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 작가는 '되고 싶다의 문제라기 보다도…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라며 대답했다고 하는데 이는 프로가 되지 못해 슬프다기보단, 프로가 목표가 아닌 즐거움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이 상태로도 충분히 즐겁다는 의미다.


특정 분야에서만 프로와 아마추어의 영역의 경계가 도드라지면서 아마추어가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황선우 작가가 팟캐스트에서 말하길, 조기축구회에 가서 왜 프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으면서, 왜 취미 클래식 뮤지션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냐는 것이다. 나와 같은 미술을 하는 한 친구는 일주일에 세 번 요가를 가고 틈틈이 다른 운동을 하는 나에게 태릉선수촌에 들어갈 생각이냐는 농담을 하는데,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냥 즐거워서 하는 거야'였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 농담에도 어떠한 행동이 정당화되긴 위해선 전문성이라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해온 나에게 미술을 하는 것의 목표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의 현실을 십 대의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해고, 이십 대의 나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늘 마음 한편에 설명할 수 없는 미술가(프로)가 된다는 것의 모순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십 대의 나는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답답한 마음뿐이었는데, 경험과 지식의 부족함 때문이었을 거다. 삼십 대 중반의 지금의 나는 프로가 되기 위해 즐길 수 없었던 미술의 길을 버려야만 새로운 미술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예술가가 된다는 목적이 있는 미술의 즐거움은 점차 줄어들었고 심지어 나는 어느 정도의 예술가가 되긴 했지만, 진정으로 예술을 즐기는 아마추어적 예술가가 아닌, 이력서에 경력만 채운 프로 예술가가 된 것이었다.


아마추어의 어원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많은 주변의 예술가들은 예술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나는 최근 몇 년의 시간 동안에는 반미술(anti-art)에 관심을 가졌었지만, 그 역시 사조가 되면서 미술의 영역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 주제도 조금은 시들해졌다. 하지만 미술계 안에서 이러한 시도는 나의 관심을 여전히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미술을 비판하면서 미술을 해나가는 아이러니를 견디는 것이 쉬워지기보단 어려워졌다.


프로 예술가를 꿈꾸던 십 대 시절의 나에게 간간이 보이던 취미 미술가들의 전시는 우습게 보였다. 이십 대에는 그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유학 준비를 하면서 상가 건물에 작은 작업실을 빌려서 작업을 만들었는데, 같은 층에 그림을 그리시는 예술가분이 계셨다. 화려한 꽃 그림을 그리시던 분은 겸손하게 아니 나는 그냥 취미로 하는 거야~라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아니에요, 정말 멋지세요.라고 말을 했고,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는 그 멋짐의 이유를 그분께 설명드릴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이 진정으로 미술을 사랑하는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를 정의한다면, 아마추어를 목표로 하는 프로 예술가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추어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내가 프로로서 익혔던 지식들이나 경험들을 후회하거나 버리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들은 내가 아마추어를 꿈꿀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다.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 형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즐거움이 목적인 아마추어 미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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