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참가비 30만 원 입금 부탁드립니다
미술계에는 다양한 기회가 있다. 돈을 내고 참여하는 기회, 돈을 받고(!) 참여하는 기회, 무료 참여의 기회. 예술은 일이 아닌 자유로운 창작자라는 인식이 있기도 하고,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회에 목말라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건이 된다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에 돈을 내고라도 참여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기회들은 이러한 어린 예술가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그 기관들 자체가 재정적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예술가들을 지원해 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상업 기관의 경우에는 작품 판매가 이루어져야만 갤러리와 작가 모두 돈을 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레지던시의 경우에는 작가가 돈을 내고 참여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기관들은 오퍼 레터를 제공하며 지원금을 받아서 참여하기를 격려한다.
나는 졸업이라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질인지, 대학교와 대학원 졸업 후 둥지를 떠나야만 하는 현실을 마주한 새처럼, 갈피를 잃고 허둥댔다. 2010년대 초,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면서 내가 느낀 나의 미래는 어두웠다. 내가 만들어 온 미술에 대한 회의, 그렇다고 나를 찾아주는 사람도 없어 우울감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한 갤러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전시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메일이었고, 전시 참여비는 30만 원, 내가 갤러리에 지급하는 비용이었다.
경제관념이라고는 없이 부모가 준 신용카드만 긁고 살던 나에게 30만 원이라는 현금은 없었고, 그나마 미술 알바로 해서 모은 돈은 모조리 써서 없었다. 돈을 주고 하는 전시를 하는 게 맞을까? 그 고민이 컸다. 20대 중반의 미술계의 경험은 없는 나였지만, 같은 해에 학교를 졸업한 한예종의 친구는 화이트 컬렉션 단체전에 참여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이미 작품이 유명 콜렉터에게 콜렉이 된 친구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나의 옵션은 너무나 초라했다. 기회에 목마른 졸업생들을 이용해 돈을 받고 전시 기회를 주는 무명의 갤러리에서의 전시라니.
미술적 고민이 있을 때면 상담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의견을 물었다. 그 친구는 “그 전시를 해도 변하는 건 없을 거야”. 그의 시니컬한 태도에 마음이 상해 되려 반발심이 생겼는지 나는 그 전시를 하기로 했다. 돈은 아빠에게 입금을 부탁했다. 그 당시의 아빠는 바빠서 전시에는 오지 못했지만, 아빠가 돈을 보내줬으니 아빠의 할 일은 한 거지?라는 농담을 했다. 나는 응하고 대답했지만, 그 짧은 대화가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빠가 스스로를 돈 보내주면 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순간이라고 느꼈던 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전시 자체를 준비하는 것은 되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졸업 전시에서 보인 작품을 조금 변형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만든 작품들을 설치하고 간단한 오프닝이 있었는데, 오프닝은 썰렁했다. 그 당시 함께 졸업한 동기 언니가 오프닝에 와주었다. 또 다른 친구도 오프닝에 오겠다고 했는데, 그 친구는 도저히 갤러리 위치를 찾지 못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열심히 길을 설명했지만 언덕 높은 곳에 있는 갤러리를 무더운 여름날 걸어서 올라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이 갤러리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화이트 컬렉션으로 오라고 했더라면 위치를 찾지 못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테다. 안 그래도 썰렁한 오프닝에 친구가 오지 못하게 되자 침울했지만, 같이 와준 언니는 내 마음을 알고선 오히려 밝고 즐거운 목소리로 축하를 해주었다.
이 예전의 사건이 떠오른 것은 최근에 내린 결정 때문이다. 나는 올해 초 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레지던시 비용의 50%의 자기 부담금이 있는 짧은 2주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이 기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나중에 지원금을 따로 받아서 가는 방안을 염두하고 지원해 올해 11월에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오퍼 레터를 받은 후 약 5개의 펀딩 기관에 지원금을 신청했고 결과는 모두 탈락이었다. 탈락의 이유를 생각하며 한탄 및 자아비판하는 일은 나름 대학원 졸업 후 약 10년을 활동해 온 나에게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알고 탈락의 이유가 내 아이디어가 좋지 않거나, 내 작업이 별로여서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또 반대로, 이 전에 받았던 지원금들이나 나에게 온 기회들이 단지 내가 잘해서, 내 작품이 좋아서만의 이유가 아닌 것도 잘 안다.
사실 내가 지원금으로 받고자 한 금액은 아주 큰 액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액수를 받아가기 위한 경쟁은 심하게 치열하다.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내 돈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예술가라는 것을 나름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도저히 그 금액을 내는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수년 전 친구의 말, ‘그 전시를 해도 변하는 건 없을 거야’에서 친구는 어떠한 변화를 말한 걸까? 이 전시가 다른 전시의 기회로 이어지는 일, 예술가로서의 성공으로 나아가는 일? 그 전시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유학을 갈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어린 예술가로서 하나의 전시를 위해 작품을 만드는 기회를 주었다. 인생의 모든 사건은 지금의 우리를 만든다. 그 작고 큰 경험들은 결국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 순간에 와 있다. 수년 전 갓 대학을 졸업한 어린 작가 지망생이 전시를 하고, 유학을 가고, 레지던시를 경험하고 나름대로 그렇게 예술가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의 이 레지던시 기회를 나는 놓치는 것일까? 이 기회가 나를 다른 기회로 이끌게 될까? 그 다른 기회는, 또다시 작가인 나에게 참여비를 요구할까? 이 지금의 놓친다기보단, 놓아주려고 한다. 예술가가 되는 데에는 정답은 없다. 맞고 틀린 것도 없다. 각자가 선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혹은 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