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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다정함 Feb 09. 2024

예술을 낳는 일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일

한 달간의 서울에서의 개인전이 끝났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상업 공간에서 하는 전시인 만큼, 판매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지만 판매는 없었다. 이 전시를 만들면서 정확히 얼마를 썼는지 알고 싶어서 돈이 나갈 때마다 엑셀 시트에 정리해 두었다. 지금 확인해 보니 대략 380만 원 정도의 돈을 썼다. 런던에서 이 전시를 위해 서울에 온 비행기 값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소득 0, 마이너스 380만 원. 난 이 경험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예술은 나이게 자식인 듯하다. 나는 아이는 낳지 않고 살겠다는 입장인데, 예술을 하면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른 많은 워킹맘(이 표현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들을 존경한다. 모든 세상의 엄마들을 존경한다. 자식을 키우면서 일을 한다는 것, 엄마로 산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라고 느껴진다. 자식처럼 예술은 나에게서 태어나 세상에 발현되면 그 자신의 운명대로 흘러간다. 만드는 과정도 온전히 내가 컨트롤하지 못한다. 이 아이가 이렇게 생긴 이유, 성격이 저런 이유, 우리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돈을 들여 키우려고 하진 않았는데, 이래저래 돈이 든다. 


아이를 나아 키우다 그 아이가 커가면 점차 아이는 독자적인 존재가 된다.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되어 내가 생각했던 존재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된다. 그때부터 나는 그 아이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다.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의 주장을 해댄다. 가끔은 이게 정말 나한테서 나온 자식인지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번에 내가 낳은 아이는 그렇게까지 제멋대로인 아이는 아니었다. 꽤 나와 의견일치가 많았던 아이다. 돈은 꽤 많이 든 아이이기는 했지만, 소중한 자식이다. 2023년 중 반해에 걸쳐 만들어낸 결과물인데, 자아실현의 산물이라고 표현해서는 안될 듯하다. 아이가 자신을 즉각적으로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듯이, 나 이콜(=) 작품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객관성이 없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사람, 너무 어렵다는 사람, 밝은 그림을 그리면 잘 팔리고 좋지 않냐는 사람, 결혼은 언제 하냐고 전시장이 떠나가도록 물어본 사람,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 주변 사람에게 자랑을 했다는 사람, 슬퍼서 울었다는 사람,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잔상이 남아 자기 나름의 해석을 보내온 사람, 그 반응들이 정말 다양한 전시였기에 좋았다. 


이번 전시는 예술의 환상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를 드러낸 전시이기도 했다. 전시의 내용이기도 했고 방문객이 나를 보는 시선이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너무 멋진 작가님이기도 했고 현실적이지 않은 꿈을 좇는 사람이기도 했고 고군분투하는 친구이기도 했고 제멋대로 살고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던, 예술은 나에게 정말 현실적인 문제이다. 나는 이제 다음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 그 아이를 만드는 일에도 꽤 비용이 들 예정이다. 나는 또 나의 현실을 마주하고 나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아이가 커서 집을 떠난다.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보내주어야 한다. 나의 2023년은 전시의 마무리와 함께 이제야 끝이 난 듯하다.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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