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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다정함 Sep 17. 2023

친구의 냄새

세계를 여행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80살의 내 친구

사람에게는 나만의 채취가 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게 되자 사람들은 자신만의 향으로 자신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몸에서 나는 본연의 채취는 가려지고 새로운 향이 몸 위에 덮인다. 이 덕에 향수 업계의 매출을 뛰어오른 반면 화장품 업계는 주춤했다고 한다. 


나는 코가 예민한 편이 아니라 향을 피우거나 정체성이 분명한 향수가 아니면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향수의 매력은 이해하지만 향수를 자주 뿌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맡은 냄새의 기억은 나의 몸에 강하게 각인된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의 마들렌의 냄새처럼 향은 인간의 의지라는 것은 상관없다는 듯 우리를 과거의 순간으로 데려간다. 아니, 사실 순간순간의 이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어렴풋한 느낌, 감정, 뭐 그런 것들이 느껴져 마음이 철렁한다고 해야 할까. 다시는 돌아갈 수는 없지만, 냄새가 그 느낌을 너무나 생생히 재현해버려 순간적인 혼동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의 냄새가 바뀐다. 어린아이에게서 나는 냄새와 노인에게서 나는 냄새는 확연히 다르다. 갓난아이에게서는 뽀송뽀송한 냄새가 한다. 나의 어린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 동생 방은 이 냄새로 가득했다. 엄마의 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체성이 옅은 어린 아기의 냄새는 점차 자아가 구축되어 가며 사라진다. 노인에게서는 퀴퀴하면서 신선하지 않은 냄새가 난다. 나이가 들어가며 노넨알데하이드라는 피지 속 지방산이 산화되며 만들어지는 물질이 늙은 몸을 겹겹이 감싼다. 그 냄새에는 주름살처럼 몸이 살아온 세월이 담겨있다. 


나에게는 최근에 81살의 친구가 생겼다. 나이에 따라 상하관계가 엄격히 나누어지는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핀란드에서 두 달간 거주하며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늘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81년을 살았지만 마음은 젊은 어른들보다 맑았다. 할머니의 미소에는 두려움이 없었고 몸동작은 가벼웠다. 자신의 나이는 괘념치 않았고 생각은 자유롭고 용감했다. 어렸을 적에 소말리아에서 10년을 살았다는 할머니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이다. 


같이 사우나를 하면 할머니는 사우나는 10분만 하고 30분간 몸을 씻었다. 사우나의 열기를 피해 눈이 내린 밖으로 나가는 나에게 할머니는 등을 밀어달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등을 스펀지로 정성스럽게 밀어주었다. 샤워는 대체로 10분 안으로 끝내는 나에게 할머니의 기나 긴 샤워는 하나의 의식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주름진 몸을 구석구석 닦고 얇은 은발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씻었다. 샤워가 끝나면 밝게 인사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아테네로 이동하기 위해 헬싱키로 가서 할머니 집에 하룻밤 홀로 머물게 되었다. 할머니는 노년의 예술가들을 위한 작은 아파트에서 저렴한 월세를 내며 살고 있었다.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서로를 도우며 사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래층에 사는 또 다른 작가 친구에게 열쇠를 받아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니 집은 할머니의 귀여운 모습을 닮아있었다. 나는 평소에는 코가 둔하기도 하고 할머니의 냄새를 잘 인식하지 못했는데 욕실에서 노인의 냄새가 났다. 할머니는 향수를 쓰지 않으니 몸 본연의 냄새가 가려지지 않는다. 욕실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죽은 세포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등을 밀어달라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의 아이 같은 순수함이 생각났다. 할머니의 노인 냄새는 퀴퀴하지만 푸근했다. 할머니는 이 개월 동안 나를 어린이의 순수함과 노인의 다정함으로 안아주었다. 할머니의 욕실에서 나도 천천히 샤워를 한다. 곧 다시 만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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