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에도 한 번 이렇게 아침 일찍 끌려나간 적이 있었다. 뭔가 뾰족한 게 목덜미로 쑤욱 들어오는 게 아프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해서 막 울었었는데 오늘 또 아프고 기분나빠서 우왕 더 크게 울어버렸다. 아줌마랑 동물병원 선생님은 그것도 부족했는지 똥꼬로도 뭘 집어넣고 날 괴롭혔다. 한참 후에 아줌마랑 선생님은 ‘이거 보세요, 아무 전염병도 없네요, 다행이네요’ 하고 웃으면서 좋아했지만 나는 진짜 기분이 나빴다.
병원 갔다와서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엄마 옆에 누워있었는데 아줌마가 콩이 오빠랑 나를 덥썩 들어서 엄마가 있는 지하실에서 1층으로 데리고 올라왔다.
컨디션도 안좋고 기분도 별로라 엄마 곁으로 돌아가려고 웅앵웅앵 울어봤지만 다른 때와 달리 아줌마는 못들은척 하면서 엄마한테 데려다 주지는 않고, 우리를 쳐다보면서 뭔가 아련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3시간쯤 지났을까, 지난 주랑 그 지난 주에 오빠랑 나를 보러왔던 가족 세 명이 다시 찾아왔다. 나한테 점수를 따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번갈아가면서 나를 부르더니, 잘 지냈냐고 그새 많이 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중에 젤 어려보이는 오빠가 조금 맘에 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고양이는 본적이 없다’며 나를 간절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참 맑아서 괜찮아 보였다. 그 집 아빠는 뭔가 한 발 뒤에 서 있지만 궁금한 건 젤 많은지 자꾸만 우리 아줌마한테 뭘 묻는다. 그 집 엄마는 시크해보이는 짧은 머리에 씩씩한 말투인데 성격이 급해보이는 게 아빠한테 ‘자꾸만 똑같은 거 묻지 마라’며 혼내는 분위기였다.
세 사람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구경하고 있는데 아줌마가 갑자기 나를 꺼내더니 내 손을 와락 붙잡고 앞발을 꾹 눌렀다. 이건 뭐지... 하고 깜짝 놀라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순간, 이미 아줌마가 내 손톱을 깎고 있었다. ”손톱가위는 사람 손톱깎을 때와는 달리 반드시 세로로 잡고 깎아줘야 하고요, 뒷 발톱은 앞 발톱 세 번 쯤 깎을 때 한 번 정도 깎으셔도 될 거에요“ 자기가 내 발톱 담당이라는 그 집 아빠는 발가락은 다섯 개죠?라고 물어서 그 집 엄마가 픽 웃게 만들더니, 아줌마가 ‘앞발은 발톱이 5개고요, 뒷발은 발톱이 4개에요’ 라고 설명해주자 온 식구들이 오호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참, 뭘 그런 걸 가지고 놀라고 그래... ’
발톱 깎는 것도 뭔가 당했다는 기분이라 스윽 화가 날 뻔 했는데, 이번에는 아줌마가 옆 찬장에서 브러쉬를 들고 오더니 나를 꽉 붙잡고는 등부터 빗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어어... 아프다고요~ 소리치며 달아나려고 했지만 아줌마 손을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나를 뒤집더니 ‘여기 배 부분도 잘 빗어주셔야 해요. 글고 꼬리도 빼놓지 마시고요’ 라며 여기 저기 나를 막 빗질을 했다. 우 쒸.... 오늘 이거 무슨 날인데 이렇게 이상한 거 전부 다 시키는 거지... 냐옹 냐옹... 울어봤지만 세 식구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정말 뚫어지게 바라봤다.
‘내가 좀 이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이렇게까지 뚫어지게 쳐다볼 일인가.... ’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러더니 아줌마가 아까 병원에 갈 때 들어갔던 가방을 들고 와서 거기 위에다 이쁜 분홍색 담요를 덮었다. ‘아휴, 우리 순이가 여자애라고 분홍색으로 준비해오셨군요’ 그러니까 그 집 엄마는 ‘ 원래는 분홍색 하나, 파란색 하나 사려고 했는데 없어서 분홍색만 두 개 샀어요.’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나는 그 어두운 가방 속으로 옮겨졌다.
갑자기 어둡고 또 시끄럽고 해서 정신이 없었다. 진짜 오늘 이거 무슨 날이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태어나서부터 늘 같이 붙여다녔던 콩이 오빠가 옆에 있어서 그나마 좀 덜 무섭긴 했다.
한 30분쯤 그 안에 있었나... 뭔가 덜그덕 거리고 흔들거려서 살짝 잠이 들었었는데 ‘다 왔다, 다 왔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방이 출렁출렁 흔들리고 잠시 후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해, 애들 놀란다. 10분 후에 케이지 앞쪽 담요 걷어주자, 그리고 문 열어놓고’ 하는 그 엄마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엄마 걱정하지마, 내가 혹시 무슨 일 있나 잘 보고 있을게’ 하는 아까 그 ‘잘생긴 오빠’ 목소리.
잠시후 가방 앞쪽이 환해지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고개를 삐죽 내밀고 쳐다보니 난생 처음 보는 곳이다. 마룻바닥이 넓고 한 쪽 벽은 빨간 벽돌로 마감돼 있는 게 이 집 거실인 것 같다. 역시 빨간색 체크 무늬 소파가 얌전히 놓여있고 그 위에는 큰 액자, 이 쪽 벽에는 아주 크지는 않은 TV가 붙어있고, 그 밑에는 책이 잔뜩 쌓여있는 나무 테이블이 있다. 냄새를 킁킁 맡아보니 체리나무로 만들어진 거다. 또 다른 벽은 벽이 아니고 엄청나게 큰, 접어지는 유리창이다. 바깥으로는 큰 배롱나무가 보이고 멀리 다른 집들 지붕이 뾰족뾰족하게 보이는게 아파트만 많은 동네는 아닌 것 같아서 그 점은 좀 나아보였다. 갑자기 먼 여행을 한 느낌이라 어지럽고 힘이 없어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더니 아까 그 ‘잘생긴’오빠가 얼굴을 내 코앞까지 들이밀고 나를 줄기차게 쳐다보고 있다. 아, 정말 부담스럽네, 저렇게 쳐다보고 있으니 나갈 수도 없고, 딴 데 좀 보면 안되나... 하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이번에는 엄마가 그쪽에서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거다. 뒤돌아보니 콩이 오빠는 난 모르겠다.. 하는 포즈로 쿨쿨 잠만 자고 있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더니 또 다른 목소리의 소유자가 나타났다.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이번에는 이 집의 다른 오빠인 것 같다. 나랑 콩이 오빠를 쓰윽 쳐다보더니 ‘왔네, 귀엽네’ 한 마디 하고 다시 쓰윽 가버렸다. 저 오빠는 지금부터 ‘쿨한 오빠’다.
엄마 목소리. ‘아줌마가 전화왔는데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애들이 부담스러워서 집안 탐험을 못한단다. 불끄고 가만 놔두래’
그래 그래 저말이 맞지, 식구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나가서 뭘 좀 구경하고 싶어도 도무지 뭘 할 수가 없잖아.
그러더니 방이 어두워지고 조용해졌다. 고개를 내밀고 좌우를 살폈더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살금살금 나가봤다. 일단 바닥이 따뜻해서 기분이 느긋해졌다. 익숙한 냄새를 따라가보니 여기가 화장실인 것 같아서 쉬도 한 번 했다. 옆에는 새까만 계단 같은 게 있어서 핥아봤더니 쇠 맛이다. 이동식 철제 사다리인 것 같아서 한 칸 냉큼 올라가봤다. 내려다 보니 콩이 오빠도 그새 나와서 내 발 밑을 지나 아까 그 체리목 테이블 밑으로 스윽 들어가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