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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줄향 Mar 17. 2024

1.다!다!다!를 외치다.

여행감독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드디어 고재열 여행감독과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정확하게는 고재열 감독이 디렉팅 하는 트래블러스랩의 '사케노진&온천 오마카세' 3박 4일 일본 패키지여행에 남편과 같이 다녀온 거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해 보니 고재열 감독과 알고 지낸 지 어느새 17년이 넘었다.

 2007년, 당시 시사저널 기자였던 고감독이 시사저널 파업 중에 우리 회사 프로그램인 <퀴즈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대상을 차지하면서 피디와 기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었다. 현직 기자가 다른 회사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이례적이었고 당시로서는 꽤 큰 액수인 2천만 원의 상금도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그 상금을 파업기금으로 기부하겠다고 해서 또 한 번 화제가 되면서 이럭저럭 알게 됐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내가 제작하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정치 사회 부문 브리핑을 고기자한테 의뢰하면서 한동안 같이 일을 했었고, 얼마 후 시사저널 기자들이 단체로 회사를 때려치우고 주간지 시사인을 창간할 때는 그 인연으로 주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뜨문뜨문 연락이 이어는데 2020년 여름쯤에 고기자가 여행기획사를 하려고 회사를 때려치우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걱정이 됐다. 기자나 피디로 근무하던 사람이 뭔가 다른 일을 하겠다고 사표를 낸다 하면 말리게 된다. 특히 그것이 사업의 영역인 경우에는 더욱더.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서 기자나 피디로서 평생 '갑'의 영역에서 살던 사람이 '을'의 역할을 해야 하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37년 회사생활에서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관찰해 본 바로는 교수로 가는 경우 안착할 확률이 제일 높고, 고시 등 새로운 자격증에 도전하거나 목사가 되는 경우는 그나마 잘 버티는 것 같은데, 사업의 경우는 성공사례를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늘 '이 산이 아닌 것 같은데.... 저 산에 가면 어떤 길이 있을까....' 생각만 하면서 37년째 같은 회사 같은 자리에서 뭉개온 나와는 다르게, 재기 발랄한 후배가 뭔가 재밌는 딴 일로 새 출발을 한다길래 제대로 된 여행 클럽으로 성장하기를 응원하며 후원회원으로 등록도 했다.



그러다가 고감독이 첫 해외행을 돌로미테 트레킹으로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참가할 수 없는 내 형편을 아쉬워했었는데 바로 그즈음 하필 이탈리아가 코로나 확산의 중심부가 되었고...... 모두 다 알다시피 그 이후로 거의 2년 동안 '여행'은 우리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 2022년 하반기부터 트래블러스랩의 국내 기행과 해외 여행은 슬슬 재개됐다. 그런데 직장인에게 '보직총량의 법칙'이 있다더니 나에게도 그 법칙은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입사하고 30년간 계속 주변부만 맴돌던 내가 다 늦게 보직을 맡아서 거의 6년간 바쁜 나날을 보냈고, 그래서 고감독이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보내오는 전 세계의 절경의 사진들을 랜선투어에서 보면서  그저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고감독은 처음 여행 사업을 기획하면서, 야심 차게도 동행이 있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 지인이나 배우자를 데려오는 것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그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뜩이나 어렵게 확보한 시간에 남편만 떼놓고 혼자 휙 떠나기도 미안하고 해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의 여행에 참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비즈니스 모델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인 초대와 동반이 가능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ㅎㅎ)



여러 번 여행을 신청했다가 취소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특히  작년 1월 초 남편과 간신히 시간을 맞춰서 일본 사케여행을 신청을 해놨는데 하필 12월 말에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또다시 눈물을 머금고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여행에 최소인원을 맞추지 못해서 고감독이 부득이하게 자신의 가족 한 명을 동반하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오랫동안 벼르던 끝에 이번에 일본 여행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아주 재미있었다.

사케의 주산지인 니가타현을 중심으로 온천 3군데를 돌며 그 고장의 물을 음미했다. 고감독 말대로 사케로 마시는 물, 온천에서 몸을 담그는 물, 쌓여있는 눈과 펑펑 내리는 눈,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까지 온갖 물을 음미하는 여행이었다. 특히 첫째 날, 유자와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3월의 서설을 맞으며 늦은 밤 노천 온천을 만끽했던 순간이 좋았고, 마지막 날 처마에서 눈 녹은 물이 떨어지며 자아내는 그윽한 명상음악을 배경으로 멀리 험준한 산들과 장쾌한 풍경을 바라보며 눈(이건 eye 눈이다)의 호사를 누렸던 아카쿠라의 저녁 온천도 참으로 좋았다.



사실 나는 주당도 온천 마니아도 아니라서 각각의 술맛과 온천물의 미묘한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편이라, 그 디테일에 대해 서술하기는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번 고재열 감독과의 여행은 가지가 좋았다.



첫 번째는 여행을 같이 한 사람들.

재작년 11월에 1박 2일 논산 발효기행을 갔을 때도 여행 참석자들이 버라이어티 했었다. 평소 '마당발에 오지랖퍼'인 고감독의 네트워크가 그대로 반영된 참석자들의 리스트와 면면이 흥미로웠는데 이번에도 다양한 연령에 다양한 경험과 직업을 가진 17명의 참석자들이,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배려하는 가운데 각자 나름의 색깔과 특징을 보여줬다. 완전하게 닫혀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기준도 없이 되는대로 열려있지는 않은, 그런 서클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20여 년 전에 급하게 휴가를 가느라 스페인에 열흘 짜리 패키지여행을 갔다가 거기에서 진상 몇 명의 폐해를 호되게 경험한 적이 있다. 그 이후 다시는 패키지여행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던 터라 이번 여행의 동행들이 새삼 더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바로 고감독의 구라!(라고 쓰고 스타일, 취향, 큐레이션력이라고 읽는다 ㅎㅎ)

솔직히 17년 전 처음 라디오 시사 브리핑을 맡겼을 때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워낙 글을 재밌게 잘 쓰는 신진 기자였기에 더 흥미로운 방송을 해줄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막상 방송을 시켜보니 그가 쓴 글만큼의 말빨은 아니어서 라디오피디로서 살짝 아쉬웠었다.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보니 그동안 연륜이 쌓여서인지, 4년 간의 야전 경험이 쌓여서인지 아니면 거기에 비즈니스 감각이 보태져서인지 말솜씨가 진짜 많이 늘어있었다.

특히 마지막날 일정을 다 마치고 니가타 공항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고감독이 무려 1시간 10분 정도 여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 여행 큐레이터로서 꿈꾸는 여행의 형태,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특별히 준비하지 않은 채로 쭉 들려줬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행에서 그 시간이 제일 흥미로왔다. 고감독의 여행에 기대하는 바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 다른 어떤 패키지여행에서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고재열만의 취향과 테마를 큐레이션 해다오!"가 아닐까.


 

지난 1월에 친구와 함께 자유여행으로 방콕에 6박 8일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기에 더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동행도 나도 의외로 방콕은 초행이었다. 그래서 네이버의 최대 여행카페에서 온갖 정보를 다 수집해서 가장 추천이 많은 호텔, 관광지, 식당, 쇼핑센터까지 세세하게 준비를 했고, 준비한 만큼 하나의 실수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하게 여행을 마쳤다.



그런데 귀국길에 뭔가가 아쉬웠다.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마사지도 하루 2번씩 받고 유명하다는 데는 다 쫓아다녔는데도 허했다. 아무리 거기가 유흥의 도시 방콕이었어도 사람이 있고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는 곳인데 남들 좋다는 데만 다 쫓아다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온 느낌이랄까, 어떤 인사이트도 통찰도 없이 그저 돈만 많이 소비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다.

그에 비해서 이번 여행은 '좋은 물'이라는 테마로, 이것과 저것을 섞어서 이곳과 저곳을 엮어낸 고감독의 큐레이션이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됐다. 올해 9월 시작되는 안식년을 앞두고 요즘 한창 여행의 테마와 동행에 대해 궁리하고 있는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여행 중의 저녁식사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다.

 여행도 마찬가지였고 고감독의 선창과 일행의 후창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건배사는 늘 일관됐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여기 있는 우리가? 이긴 거다!"

"이대로 쭈욱?  가는 거다!"


"다! 다! 다!"가 앞으로 전 세계 많은 곳에서 끊임없이 외쳐지기를 기원하며 괜찮은 선배와 동료들에게 "트래블러스랩"의 올해 라인업을 공유해야겠다. 그전에 지인들에게 클럽가입 링크부터 뿌려야겠다^^


눈내리는 3월 유자와의 정취(촬영 by 박민석)
아카쿠라의 타이코 호텔 노천온천탕의 경치.멀리 굽이치는 산맥이 장쾌하다.(사진 by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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