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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Feb 27. 2022

스무 살, 남포동1

 남아 있을 사람들이 겸연쩍을 수 있겠지만 전동차 안 대다수의 인원이 내릴 채비를 한다. 내 양옆의 동기들 또한 내리자는 말을 주고받는다. 갓 입학해 부지런히 촌놈 때를 벗기를 중인 나는, 그러나 아직도 지하철이 생경해, 혹시나 나만 전동차 안에 남겨질까 동기들의 꽁무니를 딱 붙었다.


 ‘남포’


 무사히 내리고서야 정면에 적힌 역 이름을 읽었다. 말로만 듣던 남포동이구나. 그런데 이름이 유명한 것 치곤 역의 행색이 다소 초라하게 느껴진다. 꾸미는 일엔 관심을 놓은 마냥 벽은 옛날 타일 형식이고, 천장에 전등이 부족한 걸까 지하 곳곳에 어둠이 감돌았다. 나를 대단한 곳에 데려가 준다던 동기 중 한 명의 말은 과연 사실일까. 미심쩍지만 따라가 보기로 했다. 


 계단을 빠져나왔더니 수차선 도로의 옆이다. 바깥이 시가지일 거란 건 조금 전 전동차를 타고 내리는 숫자로도 얼마쯤 예상할 수 있었다. 도로 옆으로 즐비한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내 동기는 나머지를 끌고 들어간다. 본인만의 지름길을 자랑하듯 쭉 앞장서더니, 번화가 하나를 시큰둥하게 지나서, 마침내 여기부터가 도착이란다. 다름 아닌 시장. 파라솔들이 불붙듯 펼쳐진. 근처에 새 건물들이 오라 손짓하는 광복동 거리를 놔두고 말이다. 


 동기를 따라 들어선 골목 또한 시장의 수많은 가장자리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여기만큼은 어머님들이 주인이셨는데, 간판이 달린 좌우 상점들 눈치를 보지 않으시고 골목 한복판에 앉아 음식을 팔고 계셨다. 그런데 내 발목 높이에서 손님들한테 버무려 내놓는 음식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메뉴였다. 비빔당면. 삶은 당면 위에 빨간 양념과 채소 몇 가지를 얹어 비며 먹는 메뉴란다. 나는 비빔국수가 아닌 비빔당면을 파는 첫 번째 골목에서 예측했어야만 했다. 여기 시장은 내 고향 경주에도 있는 일반 시장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골목이 골목을 토해내는 과정을 한참동안이나 밟다가, 쿰쿰한 냄새가 가까워오기 시작한다. 음식에서부터 비롯되는 냄새는 아니다. 그때 마침 동기의 발이 멈추었고, 헝클어진 머리처럼 어지럽게 옷들이 걸린 행거 앞이었다. 자기는 시장에 오면 꼭 하는 행사라며 옷 구경을 마치 특별한 것처럼 우리에게 소개한다. 나도 따라서 행거에 걸린 세탁소 옷걸이 몇 개를 들춰보는데, 내 코를 찔렀던 냄새가 바로 이거였다. 


 ‘3000원?’


 아니 행거 위에 적힌 가격이 삼천 원. 동기가 바로 설명해주는데, 여기에 걸린 옷들은 전부 다 구제이며 보물찾기를 하듯 잘 골라보면 삼천 원보다 훨씬 좋은 옷을 건질 수 있단다. 처음과 색깔이 변한 옷, 구김이 생긴 옷, 냄새가 나기도 하는. 그러나 지금부터 계속 만날 구제 옷가게들은 스스로 먼저 구제를 멋있어하고, 사가는 이들은 보물 상자에 담아가듯 소중하게 담아갔다. 남포동 구제 시장. 나를 대단한 곳에 데려가 준다던 동기의 말은 다름 아닌 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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