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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Mar 13. 2022

남포동, 우리들의 평지

오르막, 내리막… 부산의 길은 27번 버스에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손수레를 탄 듯 출렁이는 버스 안에서, 그러나 어지러움을 토해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너무 오래간만에 부산에 온 걸까. 평지를 달리는 듯 평온한 사람들 속에 나는 자꾸 앉은 자세를 고치게 된다. 대학생 때 제법 친하게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오르막, 내리막을 달리는 27번 버스가 조금은 거칠다고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부산에 사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평지가 적은 까닭을 묻지 않았다. 오르막을 걸어야 할 때면 마냥 오르막을 걸었고, 내리막을 밟을 때면 한없이 내리막을 밟았다. 우여곡절이 심했던 대학 생활이 지금 27번 버스의 발아래로 펼쳐진다. 이 출렁거림이 당시엔 왜 하나도 불만이지 않았을까. 나는 앉은 자세를 또다시 고쳐본다. 


남포동에 거의 도착했다. 대연동을 지키며 사는 친구와 함께인데 우리는 그 옛날의 남포동 멤버였다. 발이 가는 대로 걷다 보니까, 자연스레 시장 안에 위치한 구제 옷가게들이었다. 얼마 만에 와보는 건지 모르겠다. 유년 시절에 잘 어울렸던 사촌과 조우한 듯 무척이나 반가운데, 왜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해,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부산에 살면서 그래도 와봤을 내 친구가 따라오라고 해준다. 


그래, 우리는 올 때마다 쇼핑을 하는 순서도 정해져 있었다. 꼭 들러야 했던 빈티지 숍들 중 하나로 들어가 본다. 하지만 오늘은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친구도, 나도 더 이상은 빈티지 옷을 즐겨 입거나 하지 않는다. 미워졌다는 뜻이 아니라, 나이가 점점 들면서 그렇게 돼 버렸다. 스무 살의 우리를 흉내라도 내듯이 우리는 이 옷을 들었다, 저 옷을 들었다, 실없이 평가를 내리기도 해본다. 까닭 모르고 즐거워했던 시절이다. 이제 와서야 셈을 칠 수 있는 그 시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떠올리자, 남포동이란 언제든지 와 돗자리를 깔고 놀다 갈 수 있는 우리들만의 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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